​ 뻔뻔함과 유치함 사이

-대책 회의 2는 없다

세상에 계획대로 되는 일이 얼마나 될까? 첫 번째 대책회의 글을 쓸 때만 하더라도 차근차근 문제점을 짚어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우선 1편을 발표했는데.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긴 것이다. 그 반응이 너무 의외여서 솔직하게 글쓰기가 두려워졌다고 할까? 글이 브런치에 오르면, 최근 상황을 잘 아는 친구들을 제외한, 몇몇으로부터 좀 걱정하는 문자나 전화가 오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분명히 조회수는 오르는데, 왜 이리 조용하지? 살짝 서운하기는 하지만, 내가 좋아서 저지른 일이니. 관심 유발이 안된다고,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지 않은가. 그리고는 곧 잊었다. 글을 올린 사실조차도.


한 일주일이 지나자 지인들이 드문드문 책방을 찾아왔다. 웬일이냐고 물으면 그냥 지나다 들렀다는 것이다. 권하지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책을 제법 사갔고. 고맙다고 인사할라치면 책방이 잘 되어야 자신들의 놀이 공간이 유지된다는 요지의 대답을 하곤 했다. 뭐 관심이 아주 없지는 않구나. 그리고 사실은 그즈음부터 유난히 독서모임 문의 전화가 잦았다. 뒤늦게 참여하고 싶다는 사람도 늘었고. 결정적인 사건은 자문단 친구 그룹의 방문 전화였다. 다음 주면 독서모임이 있는데 급하게 보러 오겠다는 것. 그냥 보고 싶단다.



먹을 것을 잔뜩 사들고 들어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썩 밝지가 않다. 내 예상과는 달리 책방이 걱정되어 긴급 대책회의를 하러 왔다는 것.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오히려 그들이 살짝 서운해한다. 힘들면 진작 말하지 그랬냐는 반응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도울 테니, 음료나 다른 상품 판매 방법을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되었으니. 대책회의 1의 내용은 책방 초기의 고민거리였었다. 점차 책방이 궤도에 오르며, 글 쓸 시간이 없어지자, 고육지책으로 올린 글인데. 오히려 친구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책방을 찾는 분들에게 한 말의 책임을 지느라 한 행위였으니. 브런치에 글 올린다는 안내는 계속했는데, 업 데이터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단순한 글이라도 시간이 필요하지 않는가? 너무 바빠지니 여유가 없어지고, 자꾸 미뤄졌다. 급기야는 어떤 분이 찾아와 요즘 글이 좀 뜸하더라는 언질까지 주니. 다급한 마음에 써 놓았던 글을 올린 것이었다. 마음으로는 제법 야무지게, 곧 2편을 써야겠다 결심했으니. 인생이 언제 계획대로 되더냐 말이다. 많은 경우 결심이란 게, 눈 앞의 과제를 모면해보자는 일종의 자기 암시이지 않은가.


뭐 사실 전혀 슬럼프가 없지는 않았으니. 11월부터 시작된 골목 단장 사건이었다. 흔하디 흔한 멀쩡한 보도블록 교체하기. 알고 보니 책방 개점 전에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무슨 수가 있으리오. 일의 주체인 원청자는 만날 수도 없고, 하청업자인 일꾼들만 봐야 하니. 그들이 무슨 죄인가? 아침부터 시작되는 소음과 먼지. 근 한 달 동안 지속되었으니. 그렇지 않아도 통행자가 많지 않은 한적한 골목인데, 그나마 주 보행자인 동네 주민의 접근까지 거의 봉쇄. 개점휴업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실감했다. 독서모임 회원이 아니면 사람 구경 못하는 기간이었으니. 오죽하면 공사하는 분들이 나를 동정하기까지 했을까? '요새 누가 책을 읽는다고. 책방 해서 월세는 나와요? 대로변에 내도 될까 말까인데'



끝날 것 같지 않은 공사가 완료되자 책방 골목으로 사람들의 방문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간의 한산함을 보상해주기로 약속한 듯이, 책이 잘 팔렸다. 더 기쁜 일은 독서모임에서 일어났으니. 처음에는 대부분의 반이 대여섯 명으로 시작했는데, 한주에 한두 명씩 꾸준히 증가하는 게 아닌가. 그러다 연말쯤에는 거의 성원이 꽉 차는 반이 제법 생겼다. 연이은 성탄절과 연말연시에는 책 선물하는 사람들의 큐레이션 하느라 또 정신이 없었고. 책방이 한가할 때는 도로공사 소음에 정신이 너덜너덜해서 글에 집중이 안되더니. 이번에는 아예 틈이 생기지 않았다. 게으른 사람에게 핑계는 언제나 차고 넘치는 법.


이 자리를 빌려 한마디 해야겠다. 사랑하는 친지 여러분 너무 걱정 마시길. 그렇다고 애정 어린 시선을 아예 싹 거두지는 마시길. 좀 더 빨리, 빚은 지지 않는다고 말하려 했으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고. 그러나 살짝 불쌍함을 연기하며 연민의 시선을 받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연약한 척 보호본능을 유발하는 여자들을 경멸했는데, 내가 아니라 책방에 대한 시선이니 용서되지 않을까? 가만 책방은 무성의 존재이니 더더욱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이미 지난 일이니 또한 어쩌겠는가?


책방을 시작하고 가장 크게 변한 게 있다면 나도 모르게 발현되는 '뻔뻔함'의 극치였으니. 이상하게 책을 소개하거나 판매할 때는 자주 강매 모드가 발동했다. 이 무슨 억지인지? 책은 정신의 소산이니 다른 상품과는 차별성이 있다는 주장인 듯도 한데. 이거야 말로 연구해 봐야 할 문제이다. 한마디 더 보탠다면, 책방 해서 무슨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이 없는, 지극히 소박한 계산으로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일 뿐. 겨우 월세나 스스로 해결하는 정도이다. 그래도 스스로 어찌나 대견한지.


그리고 또 하나의 증세가 있는데, 밝히기도 민망할 정도로 유치하다는 것. 애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말도 안 되는 기싸움 같다고나 할까? 늘 그런 건 아니고, 가끔 내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말이다. 특히 많이 한가한 날 이런 일이다. 모처럼 들어온 손님이니 한 권이라도 팔아볼 욕심으로 이런저런 책을 권하면, 책에는 관심도 없이, 공간만 휘휘 둘러보다가 하는 말. "책방 분위기가 참 좋네요. 나도 이런 거 하나 하는 게 꿈인데. 그런데 이런 거 물어봐도 될라나 모르겠네요. 여기 월세가?" 그러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그럼 묻지 마세요. 아님 책방 주인이 꿈이라면, 최소한 책 한 권은 사고 물어보든지'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럴 때 쓰는 위장전술,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책방이 생각보다 잘되요, 이리 잘 될 줄 몰랐거든요. 신기해 죽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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