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7일 일.
제헌절이다. 어렸을 때 이런 국경일이면 애국자 모드로 변신하곤 했다. 국기를 보며 기념일 노래를 부르고, ‘착하게,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결심했었다. 그 순진했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전생의 일처럼 까마득하다. 세상 일이 내 의지와는 정말 상관없이 벌어진다는 걸 알고부터, 그만 제대로 비뚤어져 버렸다. 누구를 탓하리오. 앞집에 걸린 태극기를 냉랭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서글프다.
지혜학교 수업, 어제 공식적으로는 끝냈다. 왜 이리 갑작스럽게 중단하느냐고 아우성이다. 예상했던 대로 지난 학기부터 다니기 시작한 수강생이 너무 서운해한다. 이제 막 재미를 붙여서 제대로 읽어보려는데. 이러는 게 어디 있느냐고. 면목이 없다. 집안 일로 휴강도 한 번 했었고. <채식주의자>는 꼭 소개하고 싶기도 해서, 8월에 특강 형식으로 한 번 더 수업을 하겠다고 했다. 그간 들락날락 강좌를 신청한 사람들도 모두 초대해서 작별 인사도 해야 하니까. 그때 자세한 사연을 말하겠으니 조금 참아달라는 부탁을 곁들였다.
처음, 이 강좌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주중 저녁에 수업을 했었다. 그러지 않아도 일에 시달린 사람들이니, 마음먹은 것만으로도 어찌나 기특하게 보이든지. 참고 기다리기의 연속. 그러나 책을 읽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수업이라, 결국 단안을 내렸다. 반드시 선정 도서를 읽어야 수강 가능하다는 조건을 달고, 토요일 오전으로 수업을 옮겼다. 그러자 오히려 수강생이 점점 늘었다.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가 골고루 있어서, 언제나 토론이 활기차다. 전공과 직업도 다양하니, 강사인 내가 오히려 배우는 게 더 많았다. 이렇게 장점이 많은 멤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음 주의 아카데미 수업 마무리가 아직 숙제이다. 수강생에게도 미리 알려야겠지? 너무 정이 들어서 어찌 말할꼬. 헤어지는 일이 이리 어려울 줄은.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부담감으로, 마음의 준비를 미처 못 했다. 마침 <다시, 책은 도끼다>가 출간되어서 그걸 주문했다. 선물하는 것도 나름 의미 있을 듯해서. 토론했던 책 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을 각자 선정해 보라고 할까. 책 속에 손편지라도 써서 넣을까.
그나저나 스스로도 정확히 정리가 안 되니 뭐라 말하지? 질문이 쏟아질 텐데. 전에 사두고 못 읽은 <우리, 독립 책방>을 펼쳤다. 분야가 좀 다르기는 하지만 흥미로운 공간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준비된 문항으로 같은 질문을 던지는 형식이라, 책의 내용이 산만하지 않다. 요점은 콕 집어서, 특색은 또 살려서. 인터뷰를 꼼꼼히 한 티가 난다. 여기 소개된 책방은 독립 출판물을 주로 판매하는 곳이라, 미술 관련 일을 하는 30대 여성이 주 고객이고, 수입은 겨우 현상유지 수준이란다. 책방 운영은 재미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고. 아이디어를 얻을까 했는데, 시름만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