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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Dec 28. 2018

프리랜서가 명함을 만드는 것은

철저한 자기인식의 과정이다

친한 친구 한 명이 결혼한다


예쁘고, 능력있고, 학벌 좋고, 곧 남편이 될 사람도 그렇다(예쁜 건 모르겠지만). 집안 수준도 비슷하게 좋다. 남자친구 아버지가 S대 교수라고 했나. 아주 능력있는 친구가 벌써 결혼을 한다는게 아쉬운 한편, 결혼이란 결국 비슷한 집안들끼리 인수합병이라는 것이 상기됐다. 마치 스카이캐슬처럼, 상류·중산층의 결혼과 재산 소유를 통한 “계급 현상 유지”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친구와 만나고 돌아온 후 미묘하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내 주위에는 비슷한 부류의 사람만 있다. 좋은 학교 나와서 좋은 조직에 들어가고 좋은 사람을 만나서 곧 좋은 결혼을 할 사람들. 물론 이런 삶을 위해 기를 쓰고 공부하고 학교를 가고 취업을 했다. 이런 집단 안에서 내가 얼마나 타인의 삶에 눈을 돌릴 수 있을까. 공부하고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모르는 삶들의 총체가 가늠도 안될 때는 무지한 상태로 죽을까봐 두려워진다. 나의 좁은 시야, 기득권적인 시야에서 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사회를 제대로 보기 위해선 안과 밖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조감도[bird's-eye view, 鳥瞰圖]의 시각, 새의 눈이 필요하다. 안에도 들어가보고, 밖에도 나가보는게 가장 좋다. 하지만 언제든지 기득권을 박차고 나갈 수 있는 그런 용기가 내게는 있는가.



조감도의 가장 끝에 서자


최근 일터에서 여성들이 겪는 성차별을 다룬 <젠더갑질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를 읽었다. 조사 참여 단위에는 기아차 화성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들도 포함되었다. 나는 화성 공장에 몇번이나 갔으면서도 그 곳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과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 브런치에 여성의 직장 내 성차별에 대한 글을 연재하곤 있지만, 나는 여성 리더가 유독 많은 직무에서, 불합리함을 큰 소리로 외치는 멋진 선배들과 여성 롤모델들이 있는 곳에서 정규직∙공채 출신으로 일을 했다. 나와 같은 공채 출신이더라도 공장에 발령받은 여자 동기는 나보다 더 많은 일상적인 성차별을 겪었다. 내가 초대졸 졸업의 비서직이나 서무직 등 회사 내 비정규직의 성차별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은 그들과 친해지고 난 이후였다. 이젠 누군가와 친해지지 않더라도 먼저 고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이너리티(소수자)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접해있는 마이너리티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마이너리티의 범주를 조금씩 확장하고 연대하는 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하고 확실한 길이다. 웬만하면 조감도의 가장 끝의 입장에서 그들을 대변하자. 그건 급진적인 것이 아니다. 옳은 것이 우리에게 너무 멀리 있어서 속도를 낸 것 뿐이다.  


언제나 철저한 자기 인식이 필요하다. 난 언제든지 기득권인 동시에 소수자가 될 수 있다. 기득권의 경계는 가변적이다. 그리고 그 이분법은 경계 밖 소수자의 배제를 기반으로 한다. 언제나 나의 위치를 확인하기를. 내게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제도권의 안팎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시야를 가지는 사람이 되기를. 조감도의 가장 끝에 서는 사람이 되기를.



명함을 만드는 과정은 자기인식의 과정이다


최근에 명함을 새로 만들었다. 퇴사 전까지 두 곳의 조직에 속해 있었고, 네 장의 명함이 나를 거쳐갔다. 하지만 이제 프리랜서로써, 온전히 나만을 설명하고 싶었다. 회사 이름 대신 나의 가치관을, 조직 부서 대신 내 미션을, 직급 대신 지금 내 생계를 책임지는 직업을. 남들에게 소개할 필요도 있지만, 우선 나 자신에게 나를 타당하게 소개하고 싶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리브랜딩(Rebranding)이 필요했다.


내 필명인 사과집은 ‘사소한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기’의 준말이다. 대학생 때는 신변 잡기하는 글만 쓰는 나를 자조하는 의미로 사용했다. 별로 교훈도, 철학도 없이 구구절절한 나의 글들이 딱 사소한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꼴로 보였다. 영어로는 이런 사람을 Trivialist(잡학자)라고 한다. 하지만 이젠 그 이상이 되기를 바란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시작은 사소한 것이라고 믿는다. 이제 그 사소한 것minor things을 통해 소수minority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명함에 적었다. Minor things and beyond.




디자이너인 친구는 이걸 멋지게 시각화 했다. 사과집을 어떻게 표현할 지 고민이었는데, 디자이너는 무려 떨어지는 사과, 즉 만유인력을 통해 사과집을 표현했다. 처음에 디자인 초안을 보고 띵했다. 왜 난 이 생각을 못했지? 사소한 것을 통해 그 이상을 찾아낸 은유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사과랑 집을 같이 그리는 것 밖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과집을 중력의 발견에 빗대다니, 어찌보면 이 작은 명함 하나에 참 거창한 포부가 담겨있다.


프리랜서가 명함을 만드는 것은 철저한 자기인식의 과정이다.

이 작은 종이 하나가 주는 무게감을 느낀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다짐과 함께.

 




사소한 이야기로 소수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

내게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제도권의 안팎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시야를 가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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