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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묫자리는 왜 보러가요

“나는 화장시켜 줘”

by 사과집

1.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외할머니댁으로 내려가는 날, 나는 차 안에서 엄마의 말에 굳을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랑 할아버지 묫자리가 엄청 예뻐. 보러가자. 저번에 이모랑 갔었는데 엄청 좋았어”


흠, 묫자리라 … 지금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러가는 고속도로 위에서 듣기에는 굉장히 미래의 일로 느껴졌다. 전 정정하게 살아계신 조부모님을 뵈러 가고 싶은데요. 그리고, 예쁘다고? 묫자리가 예쁘면 무엇이 좋지? 묫자리 보러가는게 좋을 것 까지 있나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할머니 집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 앞에서도 묫자리 얘기를 꺼내는 엄마에게 기함을 했다.


“이따가 밥먹고 할머니랑 묫자리 보러 가자”


심지어 이번에는 할머니랑 같이 가자는 얘기를 했다. 나는 눈을 크게 뜨며 엄마에게 몰래 “엄마! 할머니 앞에서 묫자리 얘기 하면 어떡합니까!” 속삭이며 눈치를 봤다. 그러나 엄마,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모두 괘념치 않아 보였다. 엄마는 “뭐 어때” 정도로만 내 말에 반응했다. 그 자리에서 불편한 것은 오로지 나 뿐이었다.



2.

계속 말하는데 안갈 순 없어서 엄마랑 같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묫자리를 보러 갔다. 안동 추모공원은 할머니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안동 추모공원


묫자리는, 과연 좋았다…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묫자리는 산 굴곡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나는 엄마가 왜 계속 나에게 묫자리를 구경가자고 한 이유를 바로 알게 되었다. 목 좋고, 집과 가까운 이 곳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묻힌다고 생각하니 안심이 됐다. 집처럼 느껴질 것 같아 당신들도 마음이 편하실 것 같고, 또 근처 사는 가족이 오기도 좋을 것 같다. 햇빛도 따스히 잘 들었다.


묫자리는 이미 한참 전에 할아버지가 사두신 것이라 했다. 자식들에게 폐 끼치기 싫어서 미리 사두신 것이라고. 묫자리 하나에 600만원 정도 하는 것은 처음 알았다. 부부의 묫자리니 족히 천만원은 넘어갔다. 자신의 죽음을 정갈히 준비하는 노인의 이야기는 책 속에서는 많이 들었지만, 나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느낌이 이상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자리 옆에는 빈 자리가 두곳 더 있었다. 오래 알고 지낸 이웃의 묫자리도 사이좋게 옆에 샀다. 나는 묫자리의 위치를 외우며 메모장에 적어 두었다. A3, 231,233….


엄마는 할아버지가 이 추모공원에 가끔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에 아직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정정하신 분이다. 아직 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여기에 묻히게 될 날을 상상할 수 없다. 다만 가시게 될 그 날에는 당신이 생에 좋은 일만 했다는 기쁨만을 가지고 떠나길 바랄 뿐이다.


생각보다 묫자리 투어(?)는 쾌활한 분위기였다. 눈 언덕에서 미끄러진 엄마를 삿대질하며 불효녀처럼 한참 웃기도 했고, B612를 키고 엄마와 셀카를 찍었다. 추모 공원에 온다고 우중충하게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았다.



3.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엄마의 묫자리에 대해 얘기했다.


“너 엄마는 어떻게 장례하라고 했는지 기억나?”
“엄마가 언제 말했음?”
“너 초등학생 때 내가 말했잖아. 그걸 기억을 못해? 엄마는 무조건 화장시켜.”
“초등학생한테 엄마 화장하라는 얘기를 했다고? 애한테 너무한 거 아니야?"


엄마는 화장해서 납골당에 묻으라고 얘기했다. 니가 사는 가까운 곳에 안치하라면서. 자주 오라는 얘기겠지.


“아빠가 금산에 묘 사놨어. 근데 아빠 먼저 죽으면 어느 묘 갈지 지가 어떻게 알거여. 거긴 너무 멀어.”


오늘 유독 처음 알게 되는 것이 많다. 금산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묻힌 곳이다. 본적이지만 요즘엔 친인척 중에서 그곳에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조부모의 묫자리도 험한 산골 아주 깊은 곳에 있어서 풀숲을 헤치기 위한 낫을 필수로 지참해야 한다. 부모들은 모두 각자의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자식들에게 그 계획을 조금씩 흘리는 것이다.


부모의 죽음, 부모의 부모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최대한 미루고 싶은 일이다. 하지만 외조부모님의 묫자리 탐방과, 엄마가 원하는 장례 타입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미뤄온 일을 끝냈을 때의 후련한 해방감을 이상하게 맛보았다. 가족의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만으로 남은 생에 내가 할 일을 다시 깨닫게 된다.



4.

돌아오는 길에는 농협에 들렸다. 돈도 못버는 백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드릴 용돈 이십만원을 뽑았다. 돌아가니 할아버지는 아궁이에 감자를 구워 놓으셨다. 나오기 전에 감자를 먹고 싶다고 말한 나 때문이었다.



할아버지가 구워준 맛있는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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