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깜짝이야
아주 무서운 꿈을 꿨다. 지금은 퇴사한 회사에 대한 꿈이었다. 내가 담당했던 경력사원 입문교육이 월요일 시작인데 준비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는 걸 일요일에 깨닫는 꿈이었다. 수업을 들을 강의장도, 연수원까지 올 버스도, 수업할 강사들도 없다. 심지어 누가 교육생인지도 모른다.
꿈에서 나는 극도로 충격을 먹고 불안해서 이 대형사고를 팀장님에게 바로 연락하지도 못했다. 최소한의 수습은 해야할 것 같아, 교육생 명단이라도 확인하러 일요일에 회사에 갔다. 마침 주말출근을 하는 인사실 동기에게 나에게 교육생 인사정보를 넘기라는 불법적 만행도 저질렀다. 동기는 팀장님이 없어 반출이 안된다고 했다. 나는 교육생이 누군지도 몰라서 취소 문자도 못보낸다면서 벌벌 떨다 팀장님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깼다. 와 씨.. 꿈 속에서 나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공포를 맛봤다. 내가 지금 몇십명의 경력사원을 혼돈에 빠뜨렸으며, 수많은 사람의 시간과 수백의 예산을 날린 것인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구나.. 버스 하나 못구하거나 강사 한명 못구한 정도가 아니라 교육 자체를 잊고 있었던 교육담당자에 대한 꿈이라니 진짜 아직도 등 줄기에 소름이 돋는다. 퇴사한지 200일이 넘는데 이런 꿈을 꾼 이유는 무엇인가.
꿈이란 의식적인 상태에서는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고 있지만 애써 외면하는 무의식이 고스란히 반영된다. 회사 다닐때는 저런 꿈을 많이 꿨다. 보고서 완성본이 다 날라가거나, 재정팀에게 거절당해 교육 운영할 돈이 없거나.. 그 때는 실제로 일어남직할 꿈을 꿨기 때문에 꿈과 현실이 분간이 안가서 더 소스라치게 깼던 기억이 있다. 나는 아직도 회사에서 자유롭지 못한가 보다. 며칠 전에는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죽는 꿈도 꿨다. 에어비앤비의 호스트가 요 며칠간 히터 조심하라고 두 번인가 얘기했는데 그게 또 고스란히 나의 꿈에 반영되었다. 히터에서 나오는 유해 성분으로 자다가 저세상 가는 꿈이었다.
또 선잠에 들때 자주 꾸는 꿈은 내가 자는 사이에 인스타 스토리에 이상한 것이 실수로 올라가는 꿈이다. (도대체 어떤 짤들을 가지고 있길래 스토리에 올라갈까봐 무서워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스토리꿈 전에는 페이스북 꿈을, 그 전에는 카카오톡 꿈을, 그 전에는 싸이월드 꿈을 꿨다. 일명 쪽당하는 꿈. 여기서 알수 있는 나의 공포는 내 사생활, 프라이버시가 붕괴되는 것에 대한 공포다.
언제나 내 무의식이 가진 공포는 꿈으로 와서 대환장 스토리를 만든다. 재미있는 것은 기술이 발전할 수록 꿈이 보여주는 공포의 재현도 다양해진다는 것이다. 지금에야 스토리를 잘못 올리는 정도로 꾸지만, 나중에 사물인터넷이 집 안을 장악하는 스마트 시티 시대가 오면 녹음된 AI 스피커에 사생활이 녹음되어 공개적으로 망신당하는 꿈을 꿀지도 모른다. 언젠가 머릿 속에 생각한 것을 바로 디지털 기기에 옮길 수 있는 기술이 나온다면 스스로 뇌를 제거하는 꿈을 꿀 지도 모르겠다. 나중에는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죽는 정도가 아니라 자율주행차 타다가 자율 주행 안되는 꿈을 꿀수도 있다. 하지만 그 미래에도 경력사원 교육 준비 안해서 망하는 꿈은 여전히 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