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도 똑똑한 사람이 잘한다?
얼마 전 Mnet에서 고등래퍼 시즌3이 시작했다. 특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건 자퇴한 남자 청소년들과 대비되는 교복입은 여학생들의 어른스러운 모습이었다.
“뼈해장국이 힙합이지”, “힙합은 넥타이를 풀어야 한다”, “너 자퇴 안했어? 수학여행 안갔다왔어? 그럼 넌 힙합이 아니네” 남자 청소년들의 무논리에 “하하하 나 힙합 다시배워야겠다" 해탈한 듯이 웃는 이영지의 모습은 그 자체로 웃음을 자아냈다. 하선호는 그들에게 “힙합을 잘못 알고있는 것 같다”며 멋있게 한방 먹이기도 했다. 확실히 남자 청소년들보다, 교복을 입고 할말은 하는 이영지와 하선호가 훨씬 성숙해보였고 나 역시 단숨에 이영지와 하선호의 팬이 됐다.
인터넷에 이영지와 하선호에게 ‘걸크러쉬’ 당했다는 찬양이 쏟아지는 한편, 자퇴한 청소년들에 대한 반응은 엇비슷했다. “역시 자퇴하고 랩한다는 전형적인 ‘힙찔이’들이네.” 이들에 대한 조롱은 하선호가 서울외국어고등학교 재학중이라는 것과 대비되며 더 심해졌다. 힙합한다고 학교 나가서 탈색이나 하는 ‘힙찔이’들과 단정히 교복을 입은 ‘외고생’의 대비라는 새로운 구도가 생겨난 것이다. 내가 그럴줄 알았어. 학교 나가봤자 외고생 발끝에도 못미치는구나! 여기엔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고정관념이 담겨있다.
고등래퍼의 참가 대상은 재학 여부와 상관없지만, 프로그램명 자체에는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배제와 차별이 포함되어 있다. ‘학교 밖 청소년’은 청소년 기본법에 기술된 법적 용어로, 초/중/고 또는 이와 동일한 과정을 교육하는 학교에 진학하지 않거나 자퇴/제적/퇴학 상태인 청소년을 말한다.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법률’에서는 이들에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예방해야할 국가와 지자체의의무를 제시하고 있다. 멀리 갈 필요없이 이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은 고등래퍼3의 ‘자퇴한 힙찔이’을 통해 알 수 있다.
요즘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힘든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공부 안하고 자퇴하고 랩한다는 남학생들이많기 때문이란다. 국어 시간에 교과서는 안읽고 이상한 욕 투성이의 랩만 쓰고 있다고. 그러나 그게 비단 요즘만의 일인가. 언제나 대중문화의 유행에 따라 아이들의 진로는 갈대같이 변했다. 의사, 아이돌, 요리사, 피디…. 지금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힙합이 유행일 뿐이고, 그들이 종종 이해할수 없는 선택을 한다고 해서 학교밖 청소년들에 대한 혐오 표현을 해서는 안된다. 학벌주의 사회에서 제도권 밖의 그들은 언제나 차별받기 쉬운 소수자이기 때문이다.
이틀 전에는 빅히트 방시혁 대표가 모교 서울대에서 축사로 나섰다. 서울대 미학과 출신인 방시혁은 모교의 연단에 서서 사회로 나가는 졸업생들을 위한 조언을 전했다. 축사는 좋았다. 여기서 방시혁의 축사가 얼마나 좋았는 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겠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방시혁의 축사에 관한 대중의 반응이다.
“학벌로 사람 가리긴 싫지만.. 확실히 배움이 짧은 사람들은..”, “가방끈 긴 엔터테이너는 이런 느낌”, “가방끈 짧은 공부 안한 딴따라와 엘리트 엔터테이너의 차이”…. 나아가 딴따라 힙합 찌질이들이 돈을 버니 아이들 미래가 없다는 댓글까지. 요점은 하나다. 음악도 똑똑한 사람이 해야한다는 것이다. 방시혁 봐라. 유희열 봐라. 이수만 봐라! 학벌이 좋은 사람은 음악을 해도 철학이 있고 뭔가 다르지 않느냐!
힙합도, 음악도 똑똑한 사람이 해야한다는 말이 맞을 수도 있다. ‘똑똑함’의 의미가 세상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사유하며, 자신의 답을 찾아 사람들에게 감응을 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의미라면 똑똑한 사람이 음악도 잘하고 힙합도 잘할 것이다. 라임을 떠올리고, 세계관을 갖춘 아이돌을 기획하는 것은 보통 똑똑한 사람이 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똑똑함이 제도권 안에서 교육 받은 사람만을 의미한다면 그건 그저 학벌주의일 뿐이다.
“가방끈 긴 사람이 음악도 잘한다”라는 반응은 방시혁이 축사를 통해 전달한 메세지와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기도 했다. 방시혁은 불공정한 관습과 관행에 분노하고, 선택의 순간이 왔을때 남이 정한 기준이 아닌 자신의 일관된 기준을 따르라고 강조했다. 방시혁이 처음 직접 기획한 아이돌 방탄소년단의 데뷔곡 “No more dream”에도 기득권에 맞서 세상의 편견과 싸우라는 10대의 목소리가 담겨있다.“대학은 걱정마 멀리라도 갈꺼니까… 억압만 받던 인생 네 삶의 주어가 되어봐” 가방끈 길이로 사람을 재단하는 것이야 말로 방시혁이 말한 불공정한 관행이자 분노해야할 무사안일의 태도다.
대학은 걱정 마 멀리라도 갈 거니까
알았어 엄마 지금 독서실 간다니까
지겨운 same day, 반복되는 매일에
어른들과 부모님은 틀에 박힌 꿈을 주입해
장래희망 넘버원... 공무원?
강요된 꿈은 아냐, 9회말 구원투수
시간 낭비인 야자에 돌직구를 날려
지옥 같은 사회에 반항해, 꿈을 특별 사면
자신에게 물어봐 네 꿈의 profile
억압만 받던 인생 네 삶의 주어가 되어봐
- 방탄소년단 'No more dream'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아도, 대학을 가지 않아도, 학벌이 좋지 않아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구축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런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찾아 수면 위로 올리는 것이다. 이미 학벌좋은 사람들이 이 세상를 지배하고 있는데, 굳이 엔터테인먼트 업계까지 학벌을 강요할 필요가 있을까. 좌우지간 어느 산업이던간에 학벌과 배경이 다양한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
한편 방탄소년단에서 현재 대졸자는 건국대를 졸업한 진 뿐이다. 진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모두 글로벌사이버대학 방송연예학과에 재학 중이다. 학교의 형태와 종류에 상관 없이 방탄소년단은 충분히 본인 삶의 주어가 된 모습을 보여줬다. 랩 한다고 자퇴하고 탈색한다는 학생들을 부추기자는 것이 아니다. 그런 학생들이 많아질수록, 제도권 안에서도 다양한 진로를 꿈꿀 수 있도록 성장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다만, 이제 기승전 가방끈 찬양은 그만하자. <스카이캐슬>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또 외고생, 서울대생 찬양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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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탈색을 하면 왜 안되는지?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서울 내 학생들이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편한 교복을 입을 수 있도록 권고 했고, 염색/파마를 포함한 두발 자유화를 공론화했다. 청소년이 자기가 하고 싶은 스타일을 찾아가며 개성을 표출하는 것은 건강하며 더욱 권장해야할 사항이다. 탈색했다고 발랑까진 딴따라를 떠올린다면, 교복을 줄이지 않고 질끈 묶은 머리에 수수한 얼굴을 한 학생만이 '진정한 학생다움'의 모습이라 생각한다면, 본인이 꼰대가 아닌지 진지하게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