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컨텐츠 홍수의 시대, 다음을 생각하다
이 글은 우연히 트위터에서 나의 책이자 위클리 매거진으로 연재 중인 <공채형 인간>에 대한 어떤 비평(?)을 접하고 쓰게 되었다. 설명하기 어려우니 아이디를 가려 캡쳐로 대신한다. 불펌했지만 내 욕이 확실해 보이니 주저없이 가져오겠다.
직접 검색한 것도 아니다. 어쩌다가 내 타임라인으로 타고 흘러 들어왔다. 책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내가 브런치에 쓴 글에 대한 트윗이라는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대기업에서/고작 3년 일하고/갭이어를 갖는다며 여행을 떠나고/브런치에 글써서 작가소리 듣고/취준생 후리는 책 제목을 쓴다] 나잖아..! 아이엠그라운드 자기소개하기..! 물론 정정하자면 나는 취준생이 아니라 직장인 쪽을 후리고 싶었다.
실상 책의 내용은 회사 부적응자의 자조적 성찰이기에, 내 책에 대해 잘 모르고 남긴 의견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그래도 약간 상처가 되기는 했다. 나는 퇴사 후 고작 3년 일한 회사에 대해 다 아는 듯이 쓰지 않았을 뿐더러, 혹시 다 아는 듯 쓴다고 해도 그에 걸맞는 적절한 연차라는게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5년차나 10년차 정도 됐으면 내 책의 내용을 “인정”했을까? 각자의 시기에 쓸 수 있는 글이 있지 않을까? 고작 3년 일하고 인내심 없이 퇴사한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적응 못해도 꾸역꾸역 회사에 다니는 삶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책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접하는 것이 무플보다야 낫다. 사실 이번 기회로 범람하는 퇴사 컨텐츠의 미래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보게 되었다. 이 트위터리안이 내 글을 보게 된 계기는 2주 전부터 <공채형 인간> 위클리 매거진 연재를 시작하면서 갑자기 온라인 노출이 많아진 탓일 것이다. 원래 내 브런치의 하루 조회수는 100~200 수준이었는데, 다음 메인에 노출되며 글당 조회수가 1~2만을 찍고 있다. 물 들어올 때 노젓는다고 홍보 욕심에 자극적인 제목으로 글을 대충 버무리려 하지 않았는지 반성도 해본다.
모든 사람이 충분한 시간을 들여 내 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은 책을 요약한 짧은 소개문과 소제목들을 보고 내 글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한가하지 않다. 이럴수록 내가 글에 담으려는 메세지가 핵심을 빗겨가지 않는 선에서 마케팅되고 있는지, 본질에서 벗어나거나 과장된 점이 있는지, 왜곡될 소지가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내가 이때까지 책에 대한 좋은 얘기만 들었던 것은 나랑 취향과 경험이 비슷한 소수의 사람들이 읽어줬기 때문은 아닐까. 이제 나와 다른 사람의 반응을 더 많이 들을 때다. 그 것이 이미 출간한 책이든, 앞으로 내가 쓸 글이든 말이다. 그 반응이 취향에 대한 것이라면 존중하고, 내용의 올바름에 대한 것이라면 수용하고, 글 자체의 가치와 위치성, 시류에 대한 글이라면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 내가 별로라는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이런 트윗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무뎌지겠지.
더 나아가 나에게 묻는다. <공채형 인간>이라는 책은 이 세상에 필요한가? 솔직히 말하자면 굳이, 꼭 필요한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왜 책을 냈는가?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종이책을 내고 기성출판을 한다는 것은 꽤 멋진 일이라?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어딘가에 그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독자가 있다지만, 누군가 왜 굳이 이런 흔한 퇴사 소재로 책을 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곧 말문을 잃을 것 같다. 나 역시 보통 때는 비슷한 책이 범람하는 출판 시장을 비판하는 혹독한 독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야기, 각자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명제는 아주 당연하고 타당하다. 하지만 어떤 글의 가치가 ‘다양하다’ 이상의 의미가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라고도 생각한다. “어쩌면 이 글을 누군가는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어쩌면에 기대서 책을 내는 건 종이 낭비가 아닐까? 내 글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좁쌀만큼이라도 ‘다양함’ 이상의 함의가 있는 글일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아무리 고귀한 이유로 책을 냈든 간에 다수가 이 글을 “취준생 후리는 사회초년생의 멋모르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이 책의 정체성이 될 수 있다. 물론 나는 전혀 아니라고,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독자들은 시장의 흐름에 예민한 사람이고, 내 삶이 나에겐 스페셜하더라도 그들에겐 약간의 변주가 가미된 흔한 각본일수 있다. 이 책이 어디에 위치하는 지에 대한 감각은 저자보다 독자들이 더 탁월하다.
퇴사 컨텐츠를 생산하려는 사람들은 내 이야기가 차별화되는 지점은 무엇인지, 내 이야기의 위치성을 철저하게 고려해야 한다. 내가 글을 쓰며 가진 의문은 "왜 퇴사 이야기는 끊이질 않을까", "왜 다수가 힘들게 들어간 회사를 퇴사할까, 수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루면서까지…" 였다. 서른이 가까운 나이에 다시 직업을 찾겠다며 뒤늦은 갭이어를 갖는 청년들이 많아지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다. 그 이상을 건드리고 싶었지만 그럴 깜냥은 안되었고. 공채 시스템의 구조적인 한계를 경험한 한 사람의 이야기로 마무리했다. <공채형 인간>은 2~3년전 쯤, 상시 채용이 조금씩 시작되던 시절 나오면 딱이었을 것 같다. 지금은 약간 타이밍이 늦었다. 위치성과 시기에 관해서라면 독립출판물이라는 정체성이 더 어울리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자아 성찰은 이쯤하고, 그래서 퇴사 컨텐츠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아마 더 많아질 것이다. 퇴사는 요즘 젊은이들의 유행이 아니다. 일에 대한 관점의 변화,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은 오래된 공채 시스템, 소진과 마모가 반복되는 조직문화, 다양한 방식으로 일하기 원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복합적인 화약작용의 산물이며 시대의 흐름이다. 사회적 구조와 퇴사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퇴사하는 젊은이들은 계속해서 늘어갈 것이다.
누구도 쉽게 퇴사하지 않는다. 누구도 재미로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다. 요즘 것들은 끊임없이 고민한 끝에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하고 무모해 보이는 선택을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퇴사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짜피 모두가 퇴사에 대해 고민한다면, 더 나은 일에 대해 토론의 장을 만드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N잡, 프리랜서, 리모트 워크, 디지털노마드, ‘지속가능한 반백수’와 같은 개념들은 모두 일의 의미가 전환되는 요즘 시대의 욕망을 보여준다. “3년 다니고 인내심 없이 퇴사하다니”과 같은 철지난 태도로는 지속가능한 일터를 만들 수 없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트윗을 남겨준 트위터리안에게는, 그의 말을 똑같이 빌려 돌려드리겠다.
좀 넓은 생각으로
다른 삶도 수용하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