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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Aug 27. 2019

인스타그램 시대의 우쿨렐레 연주법

4. 우쿨렐레와 인스타 스토리

보여주기란

신경 쓰이는 일이다


특히 못하면 못할수록 더.


그럼에도 여행지에서 우쿨렐레를 치고 노래 한 곡을 가까스로 부르게 되자 누구에게라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음날 다시 들으면 부끄러워지는 정도의 짧은 실력이었지만, 어쩐지 짧은 소절이라도 노랫말을 부르고 녹음을 하면 근사하게 들렸고 (근사한 부분이 나올 때까지 반복해서 찍었기 때문이지만) SNS에 올리고 자랑하고 ('내가 이렇게 여행도 하고 음악도 즐기는 멀티 태스킹 배짱이어라!') 싶었다. 용기 없는 자가 선택한 과시 수단은 인스타그램 스토리였다.


24시간 후에 사라지는 스토리는 인스타그램 타임라인이나 유튜브에 박제되는 것보다 부담이 덜했다. 게다가 동영상의 최대 길이가 15초니(물론 연달아서 올릴 수 있다) 잘된 부분만 잘라서 올리기도 좋았다. 무엇보다, 스토리는 내가 올린 콘텐츠를 누가 보는지 확인이 가능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비록 동남아의 후미진 숙소 어드메에서 홀로 우쿨렐레를 치고 있지만 스토리 조회 명단에 뜬 사이버 친구들의 존재는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 아 내가 정말 21세기에 살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마 이 것이 인터랙티브(interactive)지 다른 게 인터랙티브냐...


물론 그들은 그저 대충 보고 터치로 스토리를 넘겼을지라도, 내가 그들을 일종의 관객처럼 느끼고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누군가 보고 있다는 걸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홀로 여행하는 소심한 관종에게는 쏠쏠한 재미였다. 가끔 친구들은 하트나 박수 스티커를 보내 주거나, 다이렉트 메시지로 내 연주를 칭찬해줬다. 잘해서라기보단, 내가 너무 올리니까 한 번쯤 격려 차원에서 주는 당근 같았다. 알게 뭐야. 모든 당근이 소중했다.


언제는 인스타그램에 서툰 S가 메시지를 보냈다.


“야 너 목소리 좋다. 이거 음성 되는지 모르고 맨날 끄고 들었거든? 그래서 솔직히 나 얘는 소리도 안 나오는걸 올리나 했는데”


'야 올린 지 꽤 오래되었는데..'  내가 음소거로 우쿨렐레 치는 영상을 올리는 줄 알았다던 S의 메시지에 빵 터졌다. 나는 그 메시지까지 캡처해서 스토리로 올리는 궁극의 인스타그래머였다. 그러나 팔로우가 늘지 않는 인스타그래머.


우쿨렐레를 치던 어느 날



그냥 하면,

어떻게든 된다


처음엔 민망함을 이겨내는 게 필요했다. 나는 자의식이 강하고 자아가 자주 비대해지며 그 탓에 수치스러움도 자주 느끼는 귀찮은 성격이었지만, 24시간의 민망함은 어떻게 버틸만했다. 사실 모든 사람이 신경 쓰인다기보다는 내 인스타 팔로워에 있는 '뮤지션'들이 신경 쓰였다... 우쿨렐레 안치는 사람은 몰라도, 뮤지션들은 내가 얼마나 기본 코드와 주법을 우려먹으며 더디게 연습하는지 한눈에 알 테니까.


비결은 허접함을 계속 생산하는 것이다. 민망한 작업물 A에 대한 부끄러움은 덜 민망한 작업물 B를 올리면 사라진다. 그렇게 C, D... Z까지 올리다 보면, 1% 씩이라도 나아지다 보면 민망함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허접한 것을 조금씩 자주 많이 올리는 편이 내 마음에 드는 완벽한 연주를 올리는 것보다 현실적이었다. 왜냐면 아무리 마음에 든 게 나온다고 해도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다 구리게 보이는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로 #우쿨렐레를 검색하면 많은 사람들의 연주가 나온다. 기타리스트 뺨치는 연주를 보여주는 엄청난 실력자들도 많다. 그들을 신경 쓴다면, "나는 간신히 코드나 잡는 주제에 감히 SNS에 올려도 될까?" 생각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올리지 못한다. 그렇다고 나보다 못하는 사람들의 영상을 보면서 얘보단 잘하겠다, 하고 올리는 것도 장기적으로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사실 말처럼 쉽지 않다. 소셜미디어에서 열등감이나 우월감 같은 비교 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모두가 나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기 ^^!


그래도 나의 경험에 빗대 보자면, 그런 열등감과 우열감은 '그냥 업로드'하면서 조금씩 사라졌다. 어느 순간 남이 중요하지 않고 당장 내 연주가 중요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냥 하면, 어떻게든 된다. 


오히려 내가 의식했던 뮤지션 친구들은 내게 꼭 필요한 조언을 진지하게 해 줬다. "자세를 좀 바꿔보는 건 어때?", "속도가 뒤로 갈수록 빨라지는 것 같아. 박자를 신경 쓰면서 연주해봐!", "남들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계속 연주해"  뮤지션들이 내 스토리를 이래저래 판단할 거란 생각도 자의식 과잉 여행자의 착각일 뿐이었다. 사실 기억해야 할 단 하나의 진실은 이것이다. 그들이 내 연주가 구리다고 생각한다고 해도, 내 귀에만 안 들어오면 그만 아니냐고.




인스타그램 시대의

우쿨렐레 연주


언젠가 우쿨렐레 버스킹을 하기를 꿈꿨다. 그러나 여행을 하면 할수록, 귀국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을수록, 매일 같은 곡만 반복하는 나를 떠올릴수록, 내가 생각보다 더 내향적이고 사람 만나기를 꺼린다는 사실을 알아차릴수록, 남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상상했던 것처럼 우쿨렐레 케이스를 열고 동전 몇 닢을 받는 그런 그림은 내 현실에 없을지라도,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소셜미디어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더라도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들어주는 누군가의 실재를 떠올리면 외롭지 않은 기분이 든다. 나같이 소심한 사람은 곧 사라질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 이건 내가 낼 수 있는 한 뼘의 용기다.


누가 보면 내 팔로워가 한 몇천 명은 될 것이라 착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한 두명만 있어도 가느다란 연결의 감각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가끔 거의 연락 안 하고 지낸 동창생에게 "00야 너의 목소리는 누구와 어울리는 것 같아. 이 노래도 연주해줄래?"라는 다이렉트 메시지를 받으면 가끔 찡해진다. 대화가 나눌 일이 없었던 우리 사이를 연결해준 어떤 가는 선을 생각하면.. (이렇게 감정이 급작스럽게 고양되고 찡해지는 것은 내가 혼자 여행하기 때문인 걸까..) 어쨌든 그냥 나 홀로 연주하는 것보다 훨씬 즐겁다.


고양이와 같이 연주하면 즐겁죠


언젠가 태국 시골 마을 빠이에 머물 때가 떠오른다. 그 날은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부부가 나에게 고양이 두 마리와 게스트하우스를 맡기고 치앙마이에 간 날이었다. 1박 동안 숙소 안에서 고양이를 보호하는 임무를 갖게 된 나는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신청곡을 받았다. 스토리 '질문하기' 기능을 이용해 신청곡을 받으면, 구글에 코드를 검색해서 후렴구 부분을 연습한 후, 15초 정도로 올리는 방식이었다.


누군가는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며 백예린의 love you on christmas를 신청했다. 나는 그렇게 백예린을 연주하고, 롤러코스터와 혁오를 어설프게 불렀다. 짓궂은 사이버 친구의 선곡에 동방신기 라이징 선 코드를 찾던 어느 날의 무료하고 한적한 오후는 유독 선명히 기억에 남는다. 사장님들이 없어 소파에서 엉덩이를 뗄 때마다 나를 따라다니던 고양이들, 신청곡을 연주하면서도 그대로 녹음된 야옹 소리,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던 무더위의 동남아. 그런 것들을 어플만 키면 지금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도 21세기 여행자의 소소한 특권이지 싶다.


디지털 시대 노마드의 연주법은 확실히 *인스타그래머블하다.  






* 매일경제용어사전에 따르면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이란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이란 뜻이며, SNS를 통한 과시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소비문화와 이를 노리는 기업의 최신 마케팅 트렌드를 보여주는 용어라고 하네여. 설명충.


매거진 <캐리어 속 우쿨렐레>는 퇴사 후 1년간 낯선 곳을 떠도는 내향적 여행자가 방 밖을 나가기는커녕 우쿨렐레와 제일 친해지는 과정을 담은 삼삼한 여행 에세이입니다. 우쿨렐레 권태기를 지날 즈음, 글쓰기를 핑계로 어려운 주법도 연습하고 완곡 커버로 유튜브 데뷔도 하겠다는 조금은 당찬 포부로 씁니다. 비정기적으로 연재 예정! 첫 번째 화를 보시려면 ☞이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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