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우쿨렐레와 권태기
매거진 <캐리어 속 우쿨렐레>는 퇴사 후 1년간 낯선 곳을 떠도는 내향적 여행자가 방 밖을 나가기는커녕 우쿨렐레와 제일 친해지는 과정을 담은 삼삼한 여행 에세이입니다. 우쿨렐레 권태기를 지날 즈음, 글쓰기를 핑계로 어려운 주법도 연습하고 완곡 커버로 유튜브 데뷔도 하겠다는 조금은 당찬 포부로 씁니다. 비정기적으로 연재 예정! 첫 번째 화를 보시려면 ☞이 곳으로
위의 소개를 보면 알겠지만 <캐리어 속 우쿨렐레> 매거진의 글은 2018년 여름부터 약 1년간 동남아와 유럽을 떠돌며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못해도 반년은 된 과거를 회상하며 하나씩 차근차근 (꾸역꾸역..) 쓴다. 지나간 일을 잘 반추하기 위해서 그때 쓴 일기와 인스타그램 스토리도 뒤적거려보고, 글에 잘 어울리는 사진을 찾기 위해 앨범을 넘겨본다. 어떤 여행기는 당시의 감상이 휘발되지 않도록 당장에 써 내려가야 하지만, 어떤 종류의 기억은 이렇게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쓰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우쿨렐레와 관련된 기억은 단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마지막 치약까지 짜내고 있지만 실상 요즘은 우쿨렐레를 치고 있지 않아 더 추억에 몰두하는 것 같다. 정확히는 3개월 전, 귀국한 이후로 우쿨렐레에 손도 대지 않고 있다. 더 이상 여행자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 돌아왔기 때문에, 방음이 잘 되지 않는 집에서 가족들과 같이 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취미 생활에 권태기가 닥쳤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권태라는 말이 조금 부끄러운 것이, 우쿨렐레에 미친 듯이 빠진 적도 없어서다. 그래도 다시 우쿨렐레에 대한 애정을 장착해, 매거진 소개에 쓴 바와 같이 "어려운 주법도 연습하고 완곡 커버로 유튜브 데뷔도 하겠다"는 당찬 포부로, 앨런 러스브리저의 『다시, 피아노』를 읽기 시작했다. 이건 최근에 읽은 김연수의 『시절 일기』를 통해 알게 된 책이다.
앨런 러스브리저는 매일 엄청난 사건 속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영국 언론 《가디언》의 편집국장이다. 이 책은 아마추어인 그가 쇼팽의 상징적인 곡인 <발라드 1번 G단조>의 연주를 위해 매일 아침 20분을 연습한 1년 6개월의 기록이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렸을 때 읽기도 전에 주눅이 들었는데, 그건 이렇게 바쁜 워커홀릭이 매일 피아노를 연주한 것도 모자라 일기를 쓰고 6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출간했다는 것에 약간의 위화감과 박탈감.. 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가 <발라드 1번 G단조>를 목표로 연습했던 해는 《가디언》 창립 이래 가장 스펙터클한 한 해였다. 물론 그가 피아노 연주를 다짐할 때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겠지만 말이다. 2010년과 2011년 사이에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가기밀을 세상에 폭로한 위키리스크 사건이 터졌고, 일본 동북부 대지진과 쓰나미, '아랍의 봄', 영국 폭동 사건, 서서히 무너지는 유럽 경제 구조와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 《뉴스 오브 더 월드》의 폐간까지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는 해였다. 만약 그가 이 모든 일을 예상했더라면 감히 피아노 연습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매일 아침 출근 전 20분간 피아노를 쳤고, 결국 <발라드 1번 G단조>를 연주해냈다.
그의 책은 언론 현장의 긴박한 사건들과 피아노 연주가 교차되듯 서술된다. 러스브리저의 피아노 연주를 보며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바쁜 사람이 연주할 시간을 낼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책을 읽으면 깨닫게 된다. 오히려 그가 일에 치열하게 몰두할 수 있었던 이유는 피아노 연주라는 전혀 다른 일에 몰두할 수 여유를 일부러 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는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시간을 냄으로써 삶의 질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업무 압박과 스트레스가 가장 심하던 바로 그때, 자그마한 이스케이프 밸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무언인가에 100퍼센트 전념함으로써 삶이 균형을 되찾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에게 피아노는 벅찬 일상 속의 '이스케이프 밸브' 였다. 그건 현실 도피일 수도 있지만, 일로만 가득 차 일상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장치이자, 이 일상의 주도권을 내가 쥐고 있다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게다가 하루를 시작하는 20분의 몰입은 일에 몰입하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는데, 그는 이를 '신경회로망의 재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연습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면 마치 내 뇌가 ‘안정’된 것처럼 느껴졌고, 앞으로 열두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모두 대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여행지에서 우쿨렐레를 치는 순간은 대개 원고 작업을 하기 싫거나 연락해야 할 사람에게 연락을 미룰 때였다. 바로 닥친 작업을 하기 싫을 때 잠깐 노트북 덮개를 닫고 우쿨렐레를 목에 걸고 어제 체크해둔 코드를 연주하거나, 이미 잘 알고 있는 자신 있는 곡을 연주하면 작업에 대한 스트레스도 곧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렇게 우쿨렐레에 몰입하며 무언가의 도피 욕구를 해소하다 보면 다시 노트북 덮개를 열고 신선한 마음가짐으로 작업을 재개할 상태로 회복됐다. 내게도 우쿨렐레가 '이스케이프 밸브'이자 '신경회로망의 재편'이 되어줄 때가 있었다.
언젠가 트위터에서 비슷한 맥락의 글을 본 적이 있다. 무언가 길이 턱 막히는 상황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는 게 좋은데, 이때 독서나 영화, 음악 감상보다 요리, 악기 연주 따위가 더 도움이 된다는 짤막한 후기였다. 그게 과학적으로 입증이 된 것인지는 몰라도 나는 어렴풋이 동의했다. 독서와 같은 '입력'의 방식으로 머리에 무엇을 주입하는 게 아니라, 재료를 손질하거나 프라이팬을 손목으로 돌리고, 악기를 연주하는 '생산' 내지 '출력'의 방식으로 정신을 고양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방식의 출력 업무, 이를테면 글쓰기나 기획 업무로 전환할 때, 비슷한 방식으로 정신을 고양시켰기 때문에 몰입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않았을까?
이건 순전히 나만의 주관적인 이론일 수 있지만, 겪어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무언가를 배우고 몰두함으로써 새롭게 고양된 정신으로 또 다른 일을 상쾌하게 시작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약간 모범생 같은 비유일지는 몰라도, 수학 공부를 하다 안되면 영어 공부를 하고, 그래도 안되면 사탐 공부를 하고, 이런 식으로 돌아가면서 하는 게 잠깐 쉰다고 트위터를 하는 것보다 낫다는 그런 소리 아닐까... (뭐야 이 쓰레기같은 비유...)
실제로 요즘 내가 작업할 때는 휴식 시간에 여행 때처럼 우쿨렐레를 치기보다는 유튜브를 보거나 트위터를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그런 경우 잠깐의 휴식 시간에 들어온 전혀 다른 정보량이 너무 많아 심신이 안정되기는커녕 카페인을 먹은 듯이 심장이 더 뛰는 경우가 많았다. 내게 필요한 것은 잠깐 숨을 돌리는 것이지 몰입의 회로를 차단시키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다시, 피아노』를 읽으며 나도 '다시, 우쿨렐레'를 칠 마음이 들었다. 우쿨렐레를 치며 일과 삶이 균형되었다는 안정감을 느끼고, 몰입을 자유자재로 전환했던 그때의 경험을 다시 시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러스브리저처럼 위대한 한 곡을 완벽하게 연습해보겠다는 다짐조차 해보지 않았다. 우쿨렐레를 반려 악기로 삼은 이상, 곡 하나에 몰입해 실력을 차근차근 늘리는 경험은 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 지금처럼 간단한 코드를 짚으며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지만 말이야.
결국 그가 내게 알려준 것은 진짜로 무언가를 원한다면 핑계를 대지 말라는 간단한 교훈이었다.
그러니 나도 다시 애정을 붙여봐야지. 멋지고 조금 어려운 곡을 하나 골라봐야지.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고 유튜브를 보며 악보를 찾아봐야지. 틈틈이 몰입해서 완벽히 나의 것으로 만들어봐야지. 내 일상의 순간에 우쿨렐레가 자주 끼어들 수 있도록 항상 곁에 두어야지. 작업과 취미를 뛰어넘으며 정교 해지는 몰입의 감각을 기쁘게 맞이해야지.
한편 <다시, 피아노>의 원제는 Play it again이다.
다분히 나 같은 사람을 위한 범(汎) 취미적 필독서가 아닐 수 없다.
ps. 추천 연주곡이 있다면 알려주세여 :)
pps. 러스브리저처럼 바쁜 것도 아니면 핑계 대지말고 연습하자! 핫챠
ppps. 러스브리저 이름 너무 어려워서 러브리스저, 러스리브저, 러브스리저 .. 등등 난리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