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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Jan 02. 2020

사연에는 후배가 없다

엄마와 등산한 날의 기록

엄마와 등산을 했다. 최근 취미를 붙인 등산에 엄마를 데려오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건강하게 오래 살자"며 산에 가자고 꼬셔도 엄마는 “평생 습관 못 바꿔. 그냥 이렇게 살다 죽으련다”같은 갑갑한 소리를 해댔다. 자주 다툰 끝에 처음으로 올라온 산이었다. 선선한 날씨, 그늘진 산길, 견딜 만한 경사, 부연설명 없이 아름답게 푸르기만 한 녹음 …. 산을 오르는 엄마도 상쾌하고 즐거워 보였다. 거봐, 좋지?라고 생색을 내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더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니까. 나도 손에 꼽는 저질 체력이지만 이 집안에서는 운동 코치인 듯 행세하는 요즘이다. 


등산 도중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친한 회사 동료였다. 수화기 너머로 “딸이 산에 끌고 갔어?”라고 묻는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어지간히 운동 때문에 “지랄”한다고 욕하고 다닌 모양이었다. 사실은 건강을 챙겨주고 코치해주는 딸의 존재를 투덜대는 척 자랑하는 식의 화법이다. 모든 엄마들의 화법은 이런 걸까? 다들 진심을 말하는 방법을 모르고 살아온 것처럼 말한다. 좋은 것은 싫다고, 싫은 것은 괜찮다고 한다.


그런 말투는 자주 엄마와 나의 사이를 악화시켰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그런 말투를 쓰게 된 지난한 삶, 타인에게 벽을 치고 곁을 내주지 않게 된 복잡한 사건들에 대해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이제 같은 발언에 두 번 정도 참을 인을 그린다. 여기서 싸워봤자 나아질 게 없다는 걸 알뿐더러, 장례식 이후 전우애 비슷한 감정이 지붕 아래 비무장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언젠가 대놓고 말한 적도 있다.


“옷이 깜찍하네?”

“내가 살쪘는데 작은 옷을 입어서 깜찍하다고 돌려 말하는 거면 내 기분이 안 좋고 섭섭해요”


엄마는 그날 저녁 나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듣고 말하는 걸 고쳐야겠다고 생각했어”라고 말했다. 뒤늦게야 서로 상처 주지 않는 말하기를 배운다. 좋은 것은 바로 좋다고 말하는 습관도 필요하다." 엄마랑 산에 와서 너무 좋아. 맨날 오고 싶어요.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지." 그렇게 말하면 엄마도 쑥스러운 지 몇 초간 말이 없다가 이내 자기도 좋다고 한다. 우리 둘 모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건 직장 동료는 이틀 전 전남편이 죽었다고 했다. 전화의 목적은 술. 기분이 울적하니 오늘 일 끝나고 술 한 잔 하고 싶은데, 휴무일인 엄마에게 나올 수 있냐는 연락이었다. 


“무슨 엄마 쉬는 날에 술 먹으러 나오라는 거야?”

 “전남편이 죽었는데 뭔 사정이 있어서 장례식에 못갔나봐. 그래서 우울해서 같이 술 먹자는 거지”

 “왜 못 갔대? 우린 아빠 현여친도 오는 판에”

 “거기 부인이 뭐라 그랬나.. 하여튼 뭔 사연이 있나 봐”

 “아니 그렇다고 엄마 쉬는 날에 엄마를 불러? 전남편 죽은 것보다 현 남편 죽은 사람이 더 힘든 거 아니야?”


나는 주위 등산객이 지나간 틈을 타 ‘전남편’과 ‘현여친’을 비교하며 역성을 들었다. 엄마 친구의 무신경함에 대해 흥분한 척, 나름대로 엄마 편을 들려는 애교였다. 엄마는 “이것도 내 사생활이다”이라며 대화 주제를 돌렸다. 나는 전남편과 헤어진 지 14년이 지난 후에도 장례식조차 갈 수 없는 그분의 사연에 대해 생각했다. 14년 떨어져 산 전남편의 죽음과 전날까지 같이 산 현남편의 죽음을 비교하고 고통의 점수를 매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잠깐 부끄러워졌다. 아픔에는 선배도 없고, 사연에는 후배가 없다. 


고통에도 등급이 있다는 생각은 자주 나를 괴롭게 했다. 정신의학 전문의 정혜신의 책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은 참사, 죽음, 재난 등 고통스러운 시간 이후를 보내는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책에는 자신보다 더 힘든 고통을 가진 사람들과 내 고통을 비교하며, 자신의 고통을 억누르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이 없던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도 조용한데, 가족을 잃은 고통을 내가 함부로 말해도 되는 걸까?’와 같은 식이다. 그러나 정혜신은 말한다.


고통을 줄 세우는 시선은 뜻밖에 자기 상처를 덧나게 하고 타인의 고통에 소금을 부리기도 합니다.
모든 고통은 개별적이고 주관적입니다. 그 생각만으로도 고통을 견디고 치유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아빠가 죽었으면서도 더 어린 나이에 아빠를 잃은 사람, 더 억울하게 가족을 잃은 사람이 있는데 내 고통을 말해도 되는 걸까?라는 자기 검열이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그 탓에 고통에 대해 발화하기가 주저스러웠다. 남의 고통에는 쉽게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정이입을 하면서 내 고통은 멀찌감치 떨어져 자기 객관화를 하려고 애썼다. 그러는 사이 나는 앞으로 가는 방법도, 뒤로 눕는 방법도 잊어버리고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그러니 내게 필요한 것은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내 고통’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게 내 고통을 말하고, 서로의 고통을 공유하다 보면, 언젠가 다시 잘 걸을 수 있지 않을까. 엄마 말대로 위로(주)는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사생활이다.




추모공원에 들릴까 했으나 하산 시간이 애매해서 가지 않기로 했다. 엄마는 그곳에 누가 다녀갔는지 궁금해서 가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누가 왔는지 어떻게 알어? 방문록을 적는 것도 아닌데.”

“그 여자라면 꽃이라도 달지 않았겠냐”


나는 장례식장에서 그 여자, 그러니까 아빠의 ‘여친’이 왔을 때도 '여친'인지 몰랐다. 그 사람은 아빠와 오래 알고 지낸, 우리 가족과도 일면식이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모부의 관계는 아주 오래전부터 허울뿐이었기에 상처 받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장례식 때 그 여자의 손을 잡고 울었던 게 엄마에 대한 배신 행위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입관식에도 들어온 걸 보면서도 ‘어지간히 친했나 보다’라고 생각한 내 눈치 없음이 분할뿐이었다. 죽고 나서 까발려지는 사생활을 직면하고, ‘역시 미리 잘 준비(?)해야겠다’는 묘한 목표의식이 생긴 것은 덤이었다.


엄마 말을 듣고 나는 그 여자가 아빠의 봉안당에 꽃을 달았을까 궁금해졌다. 그 사람이 꽃을 달 걸 생각하니... 신경이 쓰였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조화를 고르고 손질하며, 톤과 배치를 고려해 설치했는데....' 추모공원에서 파는, 시뻘겋고 촌스러운 원색의 꽃을 상상하면 화가 났다. 그러니까 내가 신경 쓰였던 것은 누군가 내 미적 성취를 방해하는 것이었지 '여친'의 존재 자체가 아니었다. 


엄마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그 여자가 추모공원에 와도 상관없었다. 누구라도 아빠를 기억하고 방문한다면 아빠에겐 좋은 일 아닌가. 어쩌면 아빠가 죽기 전, 가장 친한 사람은 나도 엄마도 아니고 그 여자였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가장 위로가 필요한 사람은 그 여자가 아닐까? 사연에는 서열이 없지만, 굳이 순위를 매긴다면 현재진행형으로 사랑하고 있던 그 사연이야말로 잴 수 없는 슬픔이 아닌가. 그 사연에 위로(주)까지 건네는 건 내 역할에서 벗어나는 일이지만.



(2019.7)





글을 쓰다가 다른 글을 읽고 싶을 때가 있다. 좋아하는 분의 블로그에서 마음을 울리는 문장을 발견해 가져와본다.


“한 사회에는 거기 몸담은 한 인간의 감정이 옅지만 넓게 희석되어 있다. 한 인간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린 슬픔은 이 세상의 역사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믿어야 할 일이다. 한 인간의 고뇌가 세상의 고통이며, 세상의 불행이 한 인간의 슬픔이다”   - 황현산 <사소한 부탁> 중에서

슬픔 가운데 가장 큰 슬픔은 어쩌면 어디로도 가 닿지 못하는 슬픔일 것이다. 그러니 기쁨도 슬픔도 더 많이 오고 갈 수 있기를. 통로가 될 좋은 이야기들이 더 많아지기를.
 - 무루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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