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notic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과집 Dec 17. 2020

[인터뷰] '더 나은 삶'을 위해 글을 쓰다

빌라선샤인에서 나눈 이야기

올해 4분기에는 일하는 여성을 위한 커뮤니티 빌라선샤인 시즌6와 함께했다. 모든 소회는 시즌이 다 끝나고 하기로 한다. 좋은 기회로 빌라선샤인의 뉴스레터 '프롬뉴먼'의 뉴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주하 커뮤니티 매니저의 좋은 질문 덕분에 나도 내 커리어를 돌아볼 수 있었다. 분량상 뉴스레터에 담기지 못한 질문과 답변을 포함해 인터뷰 전문을 브런치에 올린다. 


※이 인터뷰는 빌라선샤인 유료 멤버십에게 발송되는 뉴스레터 프롬뉴먼을 통해 진행되었습니다. 빌라선샤인의 동의를 구한 후 게재합니다.



자기소개를 부탁할게요. 사과집이란 필명으로 활동하는 에세이스트 양세희입니다. 90년대생 비혼 페미니스트이자 N잡러, 프로불편러, 디지털 노마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주로 브런치란 플랫폼에 글을 쓰고 있어요. 현재는 기자를 준비하는 취준생이기도 합니다. 이제까지 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써왔는데, 앞으로는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에세이스트와 저널리스트의 경계에서 평생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할 수도 있겠네요.


과거에는 대기업에서 HRD(기업교육) 업무를 3년간 맡았어요. 재미있는 일이긴 했지만, 회사가 정해준 직무였습니다. 저 자신도 직무에 대한 고민 없이 연봉만 생각하고 취업 준비를 하기도 했어요. 한국 특유의 공채 제도 아래에서는 모두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해요. 회사는 핵심 인재를 선발하지 못하고, 적성과 관계없이 배치된 신입사원은 퇴사하고, 사회 구조적으로는 공채에 수많은 젊은이가 매달려 정작 다양한 일자리에 적절한 인재가 매칭되지 않죠. 공채는 정규직 출신 안팎으로의 선을 긋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계급제로도 작동해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18년 독립출판물 『공채형 인간』을 엮었고 정식출간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두 권의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밀레니얼 시야로 바라본 한국 사회 <마이너리티 리포트(가제)>과 아빠의 죽음을 다룬 <이것은 애도가 아니다(가제)>입니다. 책들의 주제가 순서대로 더 나은 일,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죽음인데요. 결국 저는 '더 나은 삶'에 대해 계속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네요.



각종 브런치북, 독립출판 등 꾸준히 글을 기반으로 한 활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런 꾸준한 글쓰기 활동이 다른 기회로 이어지기도 했나요? 남들이 보이는 곳에서 떠들어야 한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브런치라는 공개적인 곳에 글을 올리다 보니 기회가 많이 왔어요. 2018년 퇴사하고 프리랜서 작가로 글을 쓰며 세 번의 출간 계약이 있었는데요. <공채형 인간>은 동네서점에서 제 독립출판물을 본 출판사의 제안이었고, 내년 상반기에 나올 두 권의 책은 브런치에 올린 얼마 안 되는 글을 보고 준 제안이었어요. 확실히 공개된 곳에 꾸준히 글을 올리면, "어디서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최근에는 초등학교에서 "좋아하는 것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란 주제로 진로 강연을 하고 있어요. 이건 정말 예상하지 못하게 연결된 일이라 재밌는데요. 퇴사 후 1년간 여행하고 한국에 돌아온 뒤, 네이버에 '참가 모집'을 검색했어요. 뭐라도 다 해보겠단 마음으로요. 그렇게 상해 여행 프로그램에 취재 기자로 동행한 적이 있어요. 독립유공자 후손과 익산 이리남초 학생들과 함께했는데, 학생들이 저한테 "기자님은 직업이 뭐예요?"라고 묻길래 제가 장난스레 "저는 이렇게 여행하면서 돈 벌어요. 짱이죠."라고 답했거든요. 그걸 옆에서 들은 교장 선생님이 세희 씨의 이야기가 아이들 진로에 신선한 레퍼런스가 될 수 있겠다면서 진로 강연을 제안해주셨어요. 그렇게 익산에서 강연을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전북의 다른 지역으로 강연이 이어졌고요.


이제껏 재미있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난번 효진님의 모뉴클(모닝뉴먼스클럽-빌라선샤인 프로그램)에서 "나에게 다가온 우연에는 다 이유가 있다"라는 말을 듣고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뭐든지 해보겠다는 열린 마음이 이끌어준 기회인 거죠. 시도의 기준은 "이 경험이 나를 성장시키는가?" 입니다. 
    


꾸준히 보이는 곳에 글을 쓰기 위해 다양한 작업을 하고 계신 것 같은데, 마감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사이드 프로젝트도 그런 의미로 시작했을 것 같아요. 이 모임에 관해서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온라인 글쓰기 모임 '마기슬'은 매주 한 편의 글을 마감하는 모임입니다. 제가 인스타그램의 스토리로 모집하며 시작했어요. 서로 아는 건 이름, 필명, 인스타그램 정도였죠. 글의 주제와 업로드하는 플랫폼은 다 달라요. 구글의 스프레드시트와 카카오톡으로 피드백과 대화를 나눠요. 가끔은 글보다 긴 피드백을 달기도 합니다. 어디서도 하지 못했던 말들을 털어놓으며, 가장 친밀한 글쓰기 동료가 되었어요. 그렇게 글을 쓴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갑니다.


마기슬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어요. 반장 제도와 휴학 제도 입니다. 10주 시즌제로 진행되는데, 돌아가면서 반장을 해요. 모두가 모임에 애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참여하죠. 글쓰기 협동조합 같아요. 글쓰기가 힘든 시즌이라면(취업, 공부 등) 휴학도 가능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가늘고 길게 글을 쓰는 거니까요. 그리고 저희는 서로를 '이름+무'라고 불러요. 이를테면 '사과무'. 동무의 '무'를 딴 건데요. 신상정보나 맥락을 몰라도 상관없는 즐겁고 중립적인 호칭이라고 생각해요. '님'보다 더 친밀한 느낌도 들구요.


온라인 상에서도 오프라인 못지않은 우정을 맺을 수 있구나를 알려준 모임이에요. 코로나 시대에 적응한 밀레니얼의 비대면 커뮤니티가 아닐까 싶습니다. 바라는 것은 앞으로도 오래 글을 쓰는 것입니다.



조직에 소속되지 않고 준비, 혹은 탐구하는 이 시기를 ‘좋아하는 것을 잘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표현한 점이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세희님의 가치관도 엿볼 수 있었고요. 그래도 시기가 시기인 만큼 막연함과 불안함도 느껴질 것 같은데,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자잘한 성공에서 비롯된 자신감, 나에게 기회를 주는 관대함. 이 두 가지가 맞물리며 불안한 와중에도 확신이 생겼어요. 내가 좋아하는게 무엇인지에 대한 확신이요. 1년간 여행하며 원없이 글을 쓰는 과정은 '자신감'과 '관대함'의 선순환이 이뤄지는 기회였어요. 글을 쓸 시간이 생기니 열심히 썼고, 자신감이 생기고, 결과물이 생기고, 그 결과물이 또 다른 기회를 가져다주는... 생각해보니 그 전까지는 나에게 관대한 시간을 준적이 없었어요. 그러니 좋아하는게 뭔지도 모를 수밖에요.


앤 라몬트 <쓰기의 감각>에서 좋아하는 문장이 있어요. “소설 쓰기는 한 밤중에 운전하는 것과 비슷하다. 당신은 오로지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만큼만 볼 수 있지만, 그런 방법으로 여행지까지 다다를수 있다.” 소설쓰기 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한 통찰력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내 삶의 간격은 짧지만 그렇다고 해서 길이 막힌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저도 언제나 불안하지만, 그냥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영역 안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려고요.



세희 님이 위에서 소개해주신 <공채형 인간>을 읽으며 저와 제 주변의 친구들이 많이 떠올랐어요. 조직의 규모, 이름과 상관없이 밀레니얼 세대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하고요. 앞으로 세희 님이 일하고 싶은 형태나 모양은 어떤 모습일까요? 또, 시기가 시기인 만큼 다시 취업 준비를 하며 막연함과 불안함도 느껴질 것 같은데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에세이스트 사과집과 저널리스트 양세희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싶어요. 그 사이에서 즐겁게 방황하며 나만의 맥락을 만들고 싶고요. 평생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만큼, 조직이나 직장보다 중요한 건 어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느냐 같아요. 최근에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도 가장 공들인 부분이 '비전'을 작성하는 부분이었어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추상적인 가치 같은 거죠. 아마 앞으로 커리어를 쌓는 과정에서 여러 선택의 순간에 놓일 거예요. 산업환경, 조직문화 등 여러 가지를 고민하겠지만, 제가 세운 비전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하길 바라요. 



세희 님이 브런치에 쓰신 다양한 글을 보며, “동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를 발굴하고, 제작하고,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소개 글에 맞는 사람이라고 느껴졌어요. 지금껏 쓰신 글 중에 가장 좋아하는 글과 앞으로 써보고 싶은 글을 알려주세요.  <비혼의 할머니가 될 것이다> 이라는 글을 특히 좋아합니다. 비혼인 저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글이라서요.


세상의 이치를 조금 알만하다고 느낄 무렵, 느닷없이 죽음을 마주했어요. 아빠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거든요. 장례식장의 옆 분향소는 자식, 손자, 사위 이름까지 빼곡하게 전광판에 적혀있는데 우리 가족은 엄마, 저, 여동생 딱 세 명의 이름만 있어서 엄청나게 대비됐어요. 엄마 이름 옆엔 미망인(未亡人, 남편과 함께 죽었어야 했는데 아직 죽지 못한 사람)이 적혀 있었고, 저는 여자라 상주도 설 수 없어 몇 년 만에 보는 사촌오빠가 삼베 완장을 찼어요. 오시는 친척들은 다 같은 얘기를 했죠. "집에 남자 형제가 있으면 좋은데”, "사위라도 있어야지.”

제가 목격한 장례란 가부장적 정상 가족의 삶을 심판하는 최종 시험장이었어요. 결혼을 전제한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비혼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겠단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쓸데없는 말들에 휩쓸리지 않게 비혼에 대한 단단한 청사진이 필요했죠. 그렇게 브런치에 <아빠가 죽어도 상주를 못 서는 딸>,<비혼의 할머니가 될 것이다>라는 글도 올리게 됐어요. 제가 경험하고 공부한 것을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여성들과 공유하고 싶었거든요.


앞으로는 은퇴를 앞두고 제2의 삶을 준비하는 여성들을 인터뷰해보고 싶어요. 위에서도 잠깐 언급한, 이리남초의 교장 선생님을 만나고 한 생각이에요. 선생님은 대안적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지역 사회에서 혁신적인 시도를 멈추지 않는 분이세요. 내년에 은퇴 예정이신데, 은퇴 교육은 예나 지금이나 노후 준비와 유산 상속 방법 정도가 전부라 당황하셨다고 해요. 은퇴하고도 일하고 싶은 여성의 욕망을 다루는 콘텐츠가 사회에 부족한 거죠.



소개해주신 <비혼의 할머니가 될 것이다>를 읽으며 어느 이름 모를 공항에서 혼자 글을 쓰며 여행하는 할머니가 된 멋진 세희 님을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지키고 싶은 가치관과 세희 님이 생각하는 미래의 모습에 대해 듣고 싶어요. 2050년, 60살이 된 저를 상상해본 적이 있어요. 만약 그때 엄마가 없다면, 저는 두 살 터울의 여동생과 같이 살고 있을 거예요. 발달장애가 있는 동생과 함께 산다는 점에서 누군가는 제가 동생을 부양한다고 말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자립(independence)과 의존(dependence)의 이분법이 여전히 유효한 걸까요? 인간은 모두 상호 의존적 존재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저야말로 동생이 필요한 사람일지 모르겠어요. 함께 어울려 서는 연립(inter-dependence)의 자매 생활을 꿈꿔요. 장애인, 노인, 비혼이 제 삶과 밀접한 주제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연립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항상 고민하며 살고 싶습니다.  



브런치 소개글에도, 포트폴리오에도 좋아하는 소개 문구라고 알려주신 ‘내가 밝힌 만큼만 알고 계신 겁니다.’라는 소개글는 어떤 의미일까요? "쓸데 없는 말을 하는 건 아닐까?", "말이 너무 많은 거 아닐까?"하고 나를 검열하게 될 때 제게 용기를 주는 말입니다. 어차피 사람들은 내가 밝힌 만큼만 아는거고, 제 삶의 편집권은 저에게 있다는 주체성을 일깨우는 문장이거든요. 독자가 글을 읽고 저를 멋대로 해석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건 그들의 자유니까요. 대신 저도 그저 쓰고 싶은 걸 쓰고, 공개하고 싶은 만큼만 공개해요.


근데 이건 에세이스트에게 필요한 용기인것 같고,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선 반대의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이를테면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밝힐겁니다" 같은 거죠.



브런치처럼, 1차로 완성한 글을 언제든지 수정하거나 덧붙일 수 있는 매체의 장점을 잘 살리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의 마지막에 짧지만 굵게 덧붙여지는 2차 사족들이 세희님의 글을 현재의 의미까지 더해 완성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예시 : 이것은 애도가 아니다 5화) 매체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글을 유기적으로 만들어가는 밀레니얼 작가의 면모라고 느껴졌어요. 혹시 이런 것을 의도하고 글을 쓰시기도 하는지, 이 부분이 아니더라도 글을 쓰며 신경쓰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재밌네요. 확실히 온라인 매체에 글쓰는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언제나 편하게 쓸 수 있고, 수정할 수 있고 삭제할 수 있다는 것. 각주를 달며 수정하고 확장할 수 있죠. 뭔가 글을 쓸 때, 완성된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이 많잖아요. 근데 저는 '어차피 수정할거니까 대충 쓰고 올리자'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요. 글쓰기의 린스타트업? 



필명 ‘사과집'은 사소한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기의 줄임말이라고 표현한 것이 재미있었는데요, 혹시 요즘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는 사소한 것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어떻게 잘 늙고 잘 죽을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아요. 관련된 콘텐츠 두개를 추천할게요.  


[책] 일레인 카스켓 <디지털 시대의 사후세계> : "디지털 시대는 어떻게 죽음의 의미를 바꾸었나?"는 부제를 가진 책입니다. 심리학, 사회학, 법학, 윤리학을 넘나드는 사례로 온라인 상에서 만나는 죽음과 삶의 교차점에 대해 나눠요. 디지털 시대의 프라이버시, 사후 자기결정권 등 다양한 주제를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에요. 


[테드 영상] 케이틀린 도티, A burial practice that nurishes the planet : 진보적 장의사라고 불리는 케이틀린 도티가 친환경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장례 문화에 대해 제안해요. 그것도 너무 재밌게요. 그가 제시하는 미래의 장례방법은 시신이 자연스럽게 부패하고 세포분열하여 뼈로, 흙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방식이에요. 올해 출간된 도티의 책 두 권을 같이 보면 더 재밌어요.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좋은 시체가 되겠지만>



앞으로 세희 님이 만들어갈 삶이 기대되고, 힘껏 응원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세희 님이 닮고 싶은 인생 롤모델이 있을까요? 몇십 년  후, 폴 살로펙(Paul Salopek)의 프로젝트를 오마주하려고요. 두 번의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 폴 살로펙은 '에덴을 떠나(Out of Eden)' 프로젝트를 기획했어요. 하루의 20마일씩, 인류가 걸어온 길을 천천히 다시 걷는 대장정이에요. 2013년 쉰의 나이로 여행을 떠난 살로펙은 지금도 여행 중이에요. 특파원 때는 갑자기 현장에 긴박하게 뛰어들었다면, 지금은 일반 사람들이 살아가는 속도에 맞춰서 걸으며 세상을 천천히 들여다보죠. 직접 찍은 사진과 영상, 인터뷰를 인터넷(웹사이트, 인스타그램)에 올려 전 세계인과 소통하기도 해요. 저도 제 커리어를 어느 정도 쌓았을 때 그처럼 공적인 여행을 길게 떠나고 싶어요. 그러려면 지금부터 돈과 체력, 언어 능력, 시대를 바라보는 감각을 꾸준히 쌓아야겠죠. 






좋은 질문은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지! 

매거진의 이전글 절친과 회사 동료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