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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Dec 17. 2020

[인터뷰] 만약이 없는 비혼 여성으로 살기

두 달 전, 홍익대 졸업 전시를 준비하는 분에게 거부할 수 없는 인터뷰 제안을 받았다. 비혼 여성의 삶을 아카이브 하는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졸업 전시가 드디어 오픈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만약'이라는 '상상의 풍선'을 터트린 사람들의 아카이브, Busrt a balloon, 전시의 제목이다. 정상가족의 모습에서 벗어난 20~40대 비혼 여성의 다양한 삶을 온라인에서 만날 수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 연결되고, 더 구체적인 미래를 함께 그릴 수 있을 것이다. 



프로젝트 웹 →  www.burstaballoon.com/

사과집의 인터뷰 바로가기 →  www.burstaballoon.com/7

인터뷰 전문을 브런치에도 올립니다. 그러나 프로젝트 웹에서 보는 것을 아주 강하게 추천드립니다. 너무 멋있고,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도 가득하기 때문이에요.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90년대생 비혼 페미니스트이자 N잡러에세이스트 사과집입니다


『공채형 인간』을 출간한 에세이스트 사과집입니다. 90년대생 비혼 페미니스트이자 N잡러, 디지털 노마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주로 브런치란 플랫폼에 글을 씁니다. 내년 상반기엔 두 권의 출간을 앞두고 있어요. 밀레니얼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한국 사회 비평 에세이 『싫존주의자 선언』, 아빠의 죽음에 대한 사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에세이 『이것은 애도가 아니다』 입니다. 사과집은 '사소한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기'의 준말이에요.



비혼으로 사는데 그치지 않고,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통해 비혼과 관련된 생각과 경험을 나누게 되신 배경에 대해서 궁금해요.

세상의 이치를 조금 알만하다고 느낄 무렵, 느닷없이 죽음을 마주했어요. 아빠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거든요. 장례식장의 옆 분향소는 자식, 손자, 사위 이름까지 빼곡하게 전광판에 적혀있는데 우리 가족은 엄마, 저, 여동생 딱 세명의 이름만 있어서 엄청 대비가 됐어요. 엄마 이름 옆엔 미망인(未亡人, 남편과 함께 죽었어야 했는데 아직 죽지 못한 사람)이 적혀 있었고, 저는 여자라 상주도 설수 없어 몇년 만에 보는 사촌오빠가 삼베 완장을 찼어요. 오시는 친척들은 다 같은 얘기를 했죠. "집에 남자 형제가 있으면 좋은데”, "사위라도 있어야지”


제가 목격한 장례란 가부장적 정상 가족의 삶을 심판하는 최종 시험장이었어요. 결혼을 전제한 부조리 속에서 비혼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겠단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비혼에 대한 단단한 청사진이 필요했죠. 그렇게 브런치에 <아빠가 죽어도 상주를 못 서는 딸>, <비혼의 할머니가 될 것이다>라는 글도 올리게 됐어요. 제가 경험하고 공부한 것을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여성들과 공유하고 싶었거든요.



나이가 들면 법적인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한 순간들이 올 텐데, 특히 수술 동의서를 작성해 줄 보호자가 없다는 부분이 가장 걱정이 돼요. 이러한 제도와 정책 문제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과, 현재 어떠한 대비를 하고 계신지 듣고 싶어요.


사회복지 시스템이 1인 가구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해요. 물론 남편이 아닌 보호자가 수술 동의서를 작성할 수 있는 '생활동반자법'도 필요하죠. 하지만 파트너 없이 오롯이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여전히 질병과 재난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요. 본질적인 해결책은 혼자 사는 사람도 아프지 않는 사회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1인 가구도 아플 때 바로 의료 서비스와 연결될 수 있고, 질좋은 간병과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하죠.


이건 돌봄 노동을 가정 안에서 해결해온 기존의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야 가능해요. 보통 그 돌봄은 여성에게 치우쳐져 있었죠. 특히 지금같은 팬데믹 시대 더 극대화되었구요. '돌봄의 사회화'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돌봄 노동이 탈젠더/탈가족화되어 지역 공동체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돌봄 체계의 재구성이 필요해요. 이미 우리 사회에도 보호자 없는 병원을 지향하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제도가 시행되고 있죠. 이런 시도가 더 활성화되어야 해요.


한편 수술동의서는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고 병원 자체적으로 시행되는 관행이라고 해요. 의료분쟁이 발생할때 증거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죠. 그 '관행'에서 규정하는 '가족' 역시 기존의 다인 정상가족 중심이라는게 문제겠죠. 이 모든게 바뀌지 않는 이상 혼자만의 대비는 불가능하고요.



<주변의 압박이나 부정적인 사회 인식주변 사람들의 결혼등을 이유로 비혼이라는 선택에 대해 흔들린 적이 있는지 궁금해요그리고 외부 요인으로 인해 흔들림을 겪는 비혼 여성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그러한 불안에 대해 심적인 안정감을 찾는 방법이 있으시다면 듣고 싶어요.


흔들리거나 선택이 바뀔지언정 견해가 있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원래 어떤 견해를 가진다는 건 항상 흔들릴 위험이 있어요. 더 큰 문제는 비혼이다 기혼이다 아무런 기준 없이 살다가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휩쓸리는 것 아닐까요?


저는 비혼을 하는 이유가 확실하기에 남들이 뭐라하든 넘길 수 있어요. '어차피 니들이 하는 말 다 틀린거 알고, 나는 비혼이 가장 나랑 잘 맞아'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러니 중요한 것은 외부 요인보다 내 자신에게 왜 내가 비혼을 선택했는지 답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게 진짜 나랑 잘 맞는걸까?' 계속 고민해야 하고요. 20대는 그걸 알아가는 과정이죠.


그러니 계속해서 구체적인 방향성을 추가하며 내 선택의 정당성을 확보해야나가야 겠죠.



비혼일수록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 ‘비혼이라면~’ ‘여자라면~’ 하는 말들과 시선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어떻게 대처하시는지 궁금해요. (미래에 반드시 외로울 거고, 200 이상 벌지 못하면 굶어죽을 거고노후에는 고독사  것이다저주를 내리듯비혼 여성들에게 겁을 주는 듯한 시선들이 담겨 있다고 느껴지는 말들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사실 자신이 비혼을 선택한 확실한 이유가 있으면 그런 말들과 시선에 별 생각 없어져요. 그 말이 틀린걸 다 아니까요. 남편이 있어도 외로울 수 있고, 월급과 상관없이 누구도 굶어죽지 않는 사회안전망이 필요한거고, 노후 보살핌은 가족이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걸 아는거죠.


사실 주위에는 억지로 저주를 내리는 나쁜 사람들보다, 그런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삶을 상상하지 못하는 나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가족이 대표적이죠. 정상가족 테두리 안에서만 외로움, 의식주, 노후를 다룰 수 있다고 믿기에 더욱 거기에 집착하는 사람들이요. 우리가 대화를 해야 하는 사람들은 먼 곳에서 저주를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이 아닌가 싶어요. 결국 저는 그들과 미래를 같이 살아갈테니까요.



30대, 40대가 되면 외로워질까? 결혼을 하면 덜 외로울까? 비혼으로 살면 더 외로울까? 등 비혼과 외로움은 뗄 수 없는 단어 같다고 느껴질 정도로, 비혼이라고 하면 다들 외로움에 대해서 많이 궁금해해요. 작가님은 외로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살다 보면 한 번씩 오는 큼직한 외로운 순간들을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그리고 20대, 30대에 느끼는 외로움과 그에 대한 생각 변화가 있으셨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우선 저는 외로움을 거의 못느껴요. 못느낀다기보다, 혼자있는 시간에서 가장 큰 충만함을 느끼고 외로움을 즐기는 사람이에요. 이걸 알아가는데 20대 전부를 모두 썼어요. 10년간 홀로 자취했고, 동거 수준으로 타인과 살아보기도 하고, 1년이란 시간동안 타지에서 홀로 여행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저 자신에 대한 확신을 느꼈죠. 나는 나만의 고독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사람이구나. 큼직한 외로움을 느낄 순 있어도 내면의 고독은 오롯이 자신이 다뤄야 하는 사람이구나.


20대는 이렇게 내가 외로움을 어떻게 다루는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이런 저런 방식으로 살아보는 과정이 필요한거죠. 비혼으로 살지라도 나는 파트너가 필요한 사람인지, 연애 방식은 무엇이 맞는지... 수많은 (실패의) 경험을 통해 자신을 잘 알게된 사람이 내 외로움의 형태에 맞는 비혼의 방식을 꿈꿀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20 비혼 여성들을 대상으로 사전 설문조사를 진행했을 , ‘비혼 여성들과 교류를 하고 싶지만비혼 여성들이 어디에 존재하는지어떻게 교류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로 인해외로움을 느끼고 비혼 여성들과의 커뮤니티 형성비혼 여성 문화 구축에 대해 알고 싶다 답변이 여럿 있었습니다작가님께서는 현재 비혼 여성분들과 교류를 하고 계신지하고 계시다면 어떻게 만나게 되었고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시는지 궁금해요덧붙여비혼 커뮤니티나 모임  추천해 주실 만한 것들이있으실까요?


'비혼 여성'만 모이는 모임이 있지는 않아요. 대신 주변에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과 다양한 형태의 관계(1:1, 소모임, 여성 커뮤니티 등)를 맺고 있고, 그런 관계가 많아지다보니 자연스럽게 '비혼'을 정체화하는 사람들을 만날 확률도 높아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 20대에는 완벽하게 나와 비슷한 사람을 찾기 보다는, 비혼/미혼/기혼이든 여성과의 연대를 느슨하게 확장하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우선 만나는 사람이 많아져야 비슷한 사람 만날 확률도 높고, 나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꼭 비혼 여성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만나는 루트는 대부분 직장이었어요. 저는 두 곳의 직장을 거쳤는데 회사마다 여성 롤모델을 만날 수 있었어요. 퇴사하고서도 그분들과 계속 만남을 유지하고 있죠. 온라인을 통해서는 더 다양한 관계 맺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SNS에서 만난 사람들은 학연/지연/혈연에서 탈피되어 만난 관계이기 때문에 오히려 저와 더 유사한 사람을 만나기 좋거든요. 만약 그런 모임이 없다면, 본인이 만들어보는 것도 방법이고요.



비혼과 기혼 상관없이, 사람이라면 외로움을 느낀다고 생각해요. 이 외로움을 ‘극복’해야하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있고, 종종 외로움을 잊게해주는 관계들이 있다면 전 괜찮다고 생각이 들어요. 작가님의 외로움을 잊게해주는 관계나 일, 목표, 야망 등에 대해 듣고싶어요.


외로움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은 외로움을 부정적인, 사라져야 할 존재로 전제하는 건데요. 하지만 우리는 모두 얼마간의 외로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최근에는 새로운 진로를 개척(?)하는 중이라 야망이 그득해서 외로움을 느낄 새가 더 없네요. 비슷한 길을 걷는 동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 같기도 해요.



[K-장녀 현상] 비혼이라는 이유로 ‘돌봄’을 책임지는 게 당연한 일일까 이제는 부모 돌봄의 무게 중심이 비혼에게로 옮겨지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니 아직 몸도 정신도 건강하신 엄마를 두고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이기적일지 모르겠지만, 노부모를 돌보는 책임이 비혼에게 쏠리는 문제는 분명 공론화 할 만하다. 지금 생각하면, 나에게나 그들에게나 "비혼인 내가 돌보는 게 낫다"는 말에 너무 쉽게 동의한 것이 후회된다. "장녀는 가족들을 돌봐야 한다"는 가부장적 억압을 가정 안에서 장녀들에게 씌우고, 장녀들의 희생을 자연스럽게 만든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딸이라는 이유로, 혼자 산다는 이유로, '돌봄'을 책임지는 게 당연한 일일까. 그저 부모님이 치매에 걸리거나 병에 걸리면 그 가족의 불행으로만 여기고, 오롯이 한 개인에게 돌봄을 전가한다면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좀 더 다양한 논의와 해법이 필요하다.
[결혼 압박 끝나니 돌봄 압박...나도 ‘K-장녀’였다 / 20.08.05 신소영기자]


책임질 ‘새로운 가정’을 꾸리지 않은 비혼 여성들이 4, 50대에 접어들게 되면 ‘부모 부양, 부모 돌봄’에 대한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대 비혼 여성들을 대상으로한 설문조사에서도 부모 돌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답변이 여럿 있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현재 비혼 여성의 부모부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앞서 말했듯, 부모 부양 역시 점차 '돌봄의 사회화'가 필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드라마를 보면 치매를 엄청 부정적으로 그리잖아요. 질병 자체에 대한 혐오도 있겠지만, 가족 중 누군가 치매에 걸렸을 때 실제로 가정이 무너지는 경우가 빈번하잖아요. 엄청난 경제적 부담, 정신/육체적 돌봄 노동 등... 그런 사회에서는 여성이 언제나 과중된 부담을 지게 되죠. 비혼 여성은 더욱 그런 요구를 받을 거구요.


저도 물론 부모 부양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엄마는 벌써 조금씩 몸이 아프기 시작하고, 동생은 발달 장애가 있어요. 세 명이 잘 살수 있는 방법에 대해 항상 고민해요. 그런데 이건 제가 기혼이어도 똑같이 했을 고민이었을 거예요. 저는 제가 그들을 부양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상호의존, 즉 연립(interdepence)하는 상대라고 생각하죠. 한때 제가 부모에게 의존했다면, 언젠가 부모가 나에게 의존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하는 거구요. 다만 나의 의지만으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개인적인 고민과 함께 '돌봄의 사회화'가 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목소리를 더 내는 사람이 되려고 해요.


나아가 아픈 몸, 질병에 대한 우리의 시각 자체가 변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늙고 병드는 건 부모 뿐만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니까요. <새벽 세시의 몸들에게>의 공저자인 이지은씨 소개가 무척 인상깊어서 남겨봐요.


"아픈 몸으로 사는 삶, 혹은 아픈 사람을 돌보는 삶이 살아낼 만한, 살아볼 만한, 해볼 만한 것이 될 수 있는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동시에, 그 삶을 잘 살아낼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치매’에 걸릴 준비를 하며 산다."



<좋아하는 것을 잘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는 글 중 ‘당장 생존과 연봉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내가 좋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안다는 것. 나아갈 삶의 가치관이 선명해지고 있으며, 그런 시기를 계속해서 보내고 있다는 확신. “좋아하는 걸 잘하고 있다” 이걸 생각하면 내가 꽤 괜찮은 사람으로 느껴졌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는 문장이 인상 깊어요. 작가님께서 ‘내가 좋아하는것, 그리고 나에 대한 확신’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 듣고 싶어요. 그리고 퇴사 등 나를 위한 선택들을 실행하게 된 원동력에 대해서도 궁금해요.


자잘한 성공에서 비롯된 자신감, 나에게 기회를 주는 관대함. 이 두 가지가 맞물려서 실행의 원동력을 얻었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겪은 이야기를 엮은 『공채형 인간』으로 처음 작가로서 커리어를 시작했어요. 처음엔 SNS에 회사욕 하던 글을 모으면서 시작한 거였는데, 독립출간을 하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개정판을 출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용기를 얻었던 것 같아요. '내가 쓴 글이 나쁘지 않구나, 앞으로 계속 글을 써봐도 되겠구나' 그런 자신감이 쌓이니 '나에게 조금 기회를 더 줘보자'는 관대함도 생기더라구요. 그렇게 퇴사를 하고 1년간 긴 여행을 했구요. 그 전까지는 나에게 관대한 시간을 준적이 없었어요.


여행하는 1년간 글을 쓰는 과정은 또 '자신감'과 '관대함'의 선순환이 이뤄지는 기회였어요. 글을 쓸 시간이 생기니 열심히 썼고, 자신감이 생기고, 결과물이 생기고, 그 결과물이 또 다른 기회를 가져다주는... 그러니 맨 처음에는 좋아하는 것을 두서없이 해보면서 작은 성과를 쌓아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서 돈을 빨리 모아, 집을 먼저 사야 해!’ vs ‘내 커리어와 미래를 위해 공부에 더 투자할 거야, 공백기가 생기더라도 더 많은 걸 경험하고 배우고 싶어!’ 이 두 가지 문제에서 갈등하는 사례들을 보았어요. 비혼이든, 기혼이든 평균적으로 여성들의 경우 돈을 버는 수명이 짧고, 비혼은 혼자서 날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젊을 때 돈을 빨리 벌어서 안정적인 삶을 꾸려가야 할지, 새로운 도전들을 해도 될지에 대한 갈등이 있는 것 같아요. 작가님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안정성을 포기하고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2, 30대 비혼 여성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은지 듣고 싶어요.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결국 중년, 노년까지 지속가능한 경제적 수익을 내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젊은 시절에 투자하는 기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무소속의 상태에서 저널리스트를 준비하는 지금 제 모습이 전형적인 후자로 비춰질 수 있지만, 사실 저는 엄청나게 안정적인 미래를 갈망하고 있어요.


조금 다른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 타의적 이유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못하는 여성분들도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가족의 반대나, 가정 형편이나... 저도 그랬거든요. 근데 당장 내가 원하는 걸 시작하지 못해도, 당장 커리어와 미래를 위해 대단한 돈과 시간을 투자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어요. 최근 이수정 교수의 인터뷰에서 공감하는 구절을 봤어요. "인생이라는 게 정해진 시점에 무슨 일을 하지 못했다고해서 포기해야 되는 건 절대 아니다." 저 역시 첫 번째 직장생활을 나오고 그 직무를 살리지도 않기로 결정하면서 시간을 버린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빠진 적이 있어요. 근데 돌이켜보면 그 회사 생활을 통해 많은 여성 롤모델을 만날 수 있었고, 내가 조직생활을 좋아한다는 중요한 정보도 알게됐어요. 책도 내기도 했구요. 두 가지 선택지에서 무엇을 선택하든, 모든 경험이 기회가 될 수 있을 거에요.



공채형 인간이라는 글에서 <퇴사하는 사원이 임원에게 보낸 메일> 중, 남성적인 문화에 관한 글이 인상깊어요. 여성으로서 커리어를 쌓기 어려운 점이 많은 조직, 300명이 넘는 임원들 속 여성 임원이 3명, 이중 공채 출신이 1명 등 남성적인 문화 속에서 힘들지는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주변에 닮고 싶은, 여성 리더와 롤모델들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고, 또 일하는 여성분들과 어떻게 연결되려 하셨나요? (일하는 여성들과의 직접적인 교류나 모임이 있으셨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교류를 하고 어떤 이야기들을 하는지 등 궁금해요.)


현대자동차에서 3년간 근무한 부서는 HRD (교육 기획 및 운영) 분야였어요. 전사에서 가장 여성 비율이 높은 분야였죠. 그래서 제가 일하던 사업부에는 여성 임원이나 여성 롤모델들이 많았어요. 한 차장님은 제가 신입사원일 때 "이 직장이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일해라"라고 했던게 기억에 남아요. 또 제가 존경하는 팀장님은 제가 퇴사할 때 "하고 싶은거 뭐든 다 해봐. 나도 그러다가 여기까지 왔어"라고 응원해주셨어요. 이런 분들을 만난 건 행운이죠. 회사를 나온 이후에도 계속 연락하는 인생의 롤 모델을 많이 만났어요.


그분들은 남초 회사 속에서 먼저 커리어를 쌓아온 선배 여성분들이라, 앞장서서 여성 후배와 만날 기회를 먼저 만들어주셨어요. 그분들에게 배운 것은, 나도 내 커리어를 쌓게 되면 후배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였죠. 조직 밖으로 나와 무소속이 된 지금은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 '빌라선샤인'에 가입했어요. "나의 일과 삶을 스스로 기획하는 여성들의 커뮤니티"라는 서비스죠. 어느 분야든 그 길을 먼저 걷는 선배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분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용기가 있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에요.



작가님께서도 비혼으로 살면서 현재나 미래에 걱정되는 부분이나 불편한 점이 있으신가요?


불편한 점은 없어요. 제가 비혼을 선택한 것은 결혼 제도에 대한 가치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게 내 삶의 방식과 더 잘 맞기 때문이거든요. 다만 비혼으로 잘 살기 위해서는 나뿐만 아니라 더 좋은 사회가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 내가 항상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는 느껴요. 게으르거나 침묵하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이죠.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비혼 하길 잘했어' 라고 생각할 때도 있으신가요? 자세히 듣고 싶어요.


미래를 자유롭게 상상할 때 가장 큰 행복함을 느껴요.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고, 자유로운 주도권을 쥐고있다는 게 해방감을 줘요. 이를테면 저는 노년이 되면 5년 이상의 긴 여행을 하려고 하거든요. 퓰리처상을 받기도 한 저널리스트 폴 살로펙의 '에덴을 떠나(Out of Eden)'을 보고 받은 영감이에요. 1시간에 3마일의 속도로 하루 20마일씩, 인류가 걸어온 길을 걸으며 공적인 여행을 하는데요. 그가 처음 떠나는 나이가 쉰이에요. 저도 환갑쯤 되었을 때, 내 커리어를 어느정도 쌓았을 때 그처럼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그때까지 돈과 체력, 시대를 바라보는 감각 같은 것도 꾸준히 쌓고 싶고요. 비혼이라 이런 계획을 자유롭게 세울 수 있어서 좋죠.



건강 관리를 위해 꾸준히 하고 있는 운동이나 습관 등에 대해 궁금해요.


없네요.. 이건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보고 제가 좀 배워야 합니다. ..



비혼의 경우, 정부의 부동산 분양 정책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데요. 작가님께서는 20대에 어떻게 주거문제를 해결하셨는지, 그리고 현재 주거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궁금해요.


우선 제 20대 주거 타임라인을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서울소재 학교 기숙사 (반기 60만원대) → 서울 관악구 원룸 하숙집 (보증금 200, 월세 30만원대)→ 서울 은평구 오피스텔 (보증금 3500, 월세 37만원) → 현재 경기도 부모님집 거주. 요컨대 저의 주거문제 해결은 학교, 입사, 퇴사 등 삶의 커다란 변화에 발맞춰 제한된 상황에서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대다수의 청년들도 그럴거라 생각해요. 문제는 이런 상황일수록 내가 사는 집을 '잠깐 머무는 임시적 공간'으로 여기기 쉽다는 거겠죠. '미래에 돈을 벌어 멀끔한 큰 집으로 이사해야지, 그때까지 지금은 버텨내자...'라고 생각하게 되는거죠. 그러나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버티는 것보단, 양보할 수 없는 나만의 조거 조건, 주거 가치관을 미리 20대에 형성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다시 독립을 준비 중인데요. 전세 대출 여부, 모은 돈, 대출 가능한 신용도 ... 등 현실적으로 고려할게 많지만 그것보다 내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하는데 더 포커싱을 두려고 해요. 작업실과 주거공간이 결합된 곳이었으면 좋겠다, 거실이 넓은 형태의 투룸이었으면 좋겠다, 가까운 곳에 무조건 도서관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 등등. 취할 것과 버릴 것을 명확하게 정리하는 거죠.



현재의 가구 형태와 주거 형태그리고 미래에 꿈꾸는 집에 대해서 자세히 듣고 싶어요.


2050년. 30년 후 60살이 된 미래의 집을 상상해볼게. 만약 그때 엄마가 없다면, 나는 두 살 터울의 여동생과 같이 살고 있을거야. 장애를 가진 동생과 함께 산다는 점에서 누군가는 내가 동생을 부양한다고 말할지도 몰라. 하지만 자립(independence)/의존(dependence)의 이분법이 여전히 유효한걸까? 인간은 모두 상호 의존적 존재잖아. 어쩌면 나야말로 동생이 필요한 사람일지 모르겠어. 함께 어울려 서는 연립(inter-dependence)의 자매 생활을 꿈꾸고 있어. 장애인, 노인, 비혼이 내 삶과 밀접한 주제인 이유이기도 해.


 구체적인 주거형태는 독일의 베기넨호프 같았으면 좋겠어. 중세시대 유럽에는 '베기넨'이란 여성 주거 공동체가 있었대.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이 혼자 살면서 종교 활동과 가난하고 병든 자를 돌보는 일에 앞장섰다고 해. 대부분 교사, 간호사, 공예가 등 다양한 직군에서 일하는 여성들이었고, 개인재산을 포기하지 않고 집을 소유했대. 독일의 도시계획가 유타 켐퍼는 이를 본따 독일에도 혼자 사는 여성들을 위한 '베기넨호프'를 만들었어. 나도 다양한 직군에 종사하는 전문성있는 여성들이 사는 아파트먼트를 꿈꿔. 물론 내 공간 자체는 개별적이고 독립적이었으면 좋겠어. 천장도 높고, 채광도 잘되고. 그 곳에는 넓은 원목의 테이블이 있어서 언제든지 글을 쓸 수 있을거야. 매일 아침 내려먹는 커피 잔의 동그란 자국이 테이블에 새겨져 있을수도 있겠지. 철저한 프라이버시를 존중받는 동시에 나는 베기넨호프의 여성들과 연결될 수 있을거야. 층별 공동 아케이드에는 수십가지의 식물들로 가득 채워진 정원이 있고, 우리는 가끔 거기서 차 한잔하며 이야기할 수 있겠지. 서로에게 비상열쇠가 있어서 비상 상황에 힘이 되어줄거야. 켐퍼의 베기넨호프엔 컴퓨터 전문가, 사회학자, 극작가, 의사 등 다양한 직업경험이 있는 여성들이 모여산대. 내가 꿈꾸는 미래의 주거 공동체도 각자의 경력을 공동체에 발휘할 수 있으면 좋겠어. 어쩌면 나는 작가나 기자로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글로 쓸 수도 있겠지.


베기넨호프 기사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읽을 비혼 여성들에게 한 마디 남겨주세요.


어떤 비혼으로 살고 싶은지 명확한 청사진을 갖는게 중요한데요.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떤 실패도 모두 도움이 될테니 여러 시도를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또 비혼으로 잘 사는 사회가 되기 위해, 우리의 목소리가 연결되고 확장되기를 바라요. 이 인터뷰를 통해 연결될 우리의 이야기가 기대되는 이유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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