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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Sep 13. 2018

순환 열차는 목적지가 없다.

미얀마 양곤(Yangon)의 순환열차

미얀마로 가는 비행기에서 크리스틴 조디스의 <미얀마 산책>을 읽었다. 그는 한국어판 서문에 '스위스 작가이자 여행 작가인 니콜라 부비에가 그린 한국의 정경을 보고 한국을 잘 알지 못하지만 한국을 사랑하게 되었다'라고 했다. 어떤 글을 읽고 알지도 못하는 곳을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내가 미얀마를 첫 번째 나라로 가게 된 것은 조지 오웰의 책 <버마 시절> 때문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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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영국이 버마를 통치하던 시절 경찰로 복무했다. 버마는 미얀마의 다른 이름이다. 제국주의 시대 때 ‘버마’를 식민지로 삼은 영국인들은 국명을 ‘버마’로 했고, 그것이 한동안 공식 국가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군부가 정권을 잡은 이후엔 ‘미얀마’를 정식 국명으로 채택했으나 군정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아직 버마라는 국호를 쓴다. 복잡하고 아픈 역사를 가진 은둔과 미소의 나라 미얀마, 나는 미얀마에 가장 먼저 가고 싶었다.


미얀마 양곤. 건물에 낀 곰팡이와 이끼가 곧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미얀마의 수도인 양곤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축축한 동남아의 기후에 부식된 서양식 건물에 묘한 감흥을 느낄 수 있었다. 양곤의 건물은 대부분 영국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건물이고, 긴 역사와 이끼가 켜켜이 쌓여 낡아있다. 그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타나카를 바르고 다니는 미얀마 여자들이다. 타나카는 자외선 차단과 미용의 목적으로 나무를 돌에 갈아 물에 희석시켜 바르는 나무액이다. 남녀 불문 '론지'라는 전통 치마를 입고 다니는 것도 인상 깊다. 이들의 얼굴은 같은 듯 다른데, 미얀마는 130개의 소수민족이 함께하는 다인종 국가이기 때문이다.


양곤역을 지나다니는 현지인. 남녀 불문 '론지'라는 치마를 입는다.


어느 날은 양곤의 현지를 잘 느낄 수 있다는 순환열차를 타러 양곤역에 갔다. 양곤 전역을 한 바퀴 도는 순환 열차는 한번 순환하는데 3시간 정도 걸린다.  나는 열차 출발 시간을 맞추기 위해 초조하게 걸어 간신히 시간 내에 도착했지만 사람들은 느긋하게만 보였고, 열차는 제시간에 오지 않았다. 그래도 지루하지 않게 열차를 기다릴 자신이 있었다.


열차를 탄 후 세 시간은 금방 갔다. 실컷 사람을 구경하고, 창 밖을 봤다. 머리에 임을 지고 가는 여성들과 코끼리 바지를 입은 서양 여행객, 학교에 가는 듯 책을 읽고 있는 어린 학생... 불현듯 나는 순환 열차 같은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순환 열차는 목적지가 없다. '어디로 가는 게' 목적이 아니라 '가는 게' 목적인 순환열차. 나도 정주와 이동 자체가 목적인 여행을 하고 싶다.


순환 열차의 풍경


양곤역의 전경. 뒷편으로는 사원들의 금색 첨탑이 보인다.
미얀마, 양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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