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존주의자 선언
첫 직장 생활 때 내 호칭은 ‘마지(Margie)’였다(책의 여백에 메모하는 사람을 일컫는 ‘마지널리안’이라는 말에서 따온 이름이다). IT 회사에서 인턴을 시작했을 때다. 사수였던 과장님은 올리브. 워킹 그룹장은 제롬. 팀장도 그냥 제니퍼였다. 직급은 대외적으로만 사용됐을 뿐 실제로 불러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지는 어떻게 생각해?”
회의 때는 인턴에게도 스스럼없이 의견을 묻고 경청했다.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다른 팀이나 처음 만난 사람과 소통할 때도 편하게 태그를 걸었다. 심지어 인턴이 대표한테도 스스럼없이 “마이크~” 하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사회초년생에게 꽤 문화충격이었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라 가능한 호칭 문화였겠지만, 반대로 그 호칭 문화가 수평적인 문화를 조성하는데 큰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서로를 부를 때 내가 계약직이라거나, 대상이 상사라는 사실보다는 서로 ‘동료’라는 것이 더 상기됐다. 일하는 데 직급이나 고용 형태는 중요하지 않았다. 조직은 각자의 일을 수행하는 직원들의 유연하고 수평적인 결합체였다.
두 번째 직장에서의 호칭은 ‘○○○ 사원’이었다. 그런데 일하는 사람의 직급과 친분 정도에 따라 실제 불리는 호칭은 조금씩 달랐다. 직급 상 윗사람은 나를 ‘○○ 씨’로 불렀고 처음 일로 만난 직원은 나를 ‘사원님’으로 부르다가 익숙해지면 ‘○○○ 사원’, 혹은 ‘○○○ 씨’로 바꿔 불렀다. 입사 후배는 고작 반년 차이여도 꼬박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애매한 것은 아직 진급하지 않은 같은 사원끼리의 호칭이었다. 나는 후배들에게 ‘○○ 씨’라고 말하지 않고 언제나 ‘○○ 님’이라고 불렀다. ‘○○ 씨’는 아무런 직급 없는 평사원을 부를 때 쓰이기도 하지만,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를 때 쓰는 뉘앙스가 있기 때문이었다.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으로 들어오는 직원에게 ‘○○ 씨’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그랬다. 나는 그렇게 부르는 게 편했는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그런 호칭을 민망해하거나 불편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두 번째 회사에서는 직급을 ‘올바르게’ 부르는 것이 아주 중요했다. 신입사원 때는 교육 시간에 연단에 선 ‘○○○ 이사대우’를 말 그대로 ‘이사대우’로 소개했다가 혼난 적도 있었다. 사수는 내게 이사대우는 직위의 이름인 ‘직함’이고 부르는 ‘호칭’은 이사라는 것을 알려줬다. 이사대우는 이사는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대우를 해준다는 의미의, 임원 직급 중 가장 낮은 단계였다(당시 내가 회사에 다닐 때 임원 직급은 ‘이사대우-이사-상무-전무-부사장-사장-부회장-회장’ 순이었다)
직함은 회사 내의 서열문화를 가늠하는 강력한 정체성으로서 기능했고, 자신이 직급으로 불리지 않은 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았다. 인사발령 시즌이면 수십 장의 페이지를 모두 인쇄해서 팀 테이블에 올려두고 돌려봤다. 팀과 연관이 많은 인물은 형광펜까지 쳐놓았다. 혹시 전주 공장에 있는 차장님이 부장으로 승진한 것을 까먹고 실수하면 안 되니까. 자유롭게 소통하라는 멍석을 깔아도, 직급으로 서열이 노골적으로 만들어지는 호칭 문화 앞에서 대화의 폭은 좁을 수밖에 없었다.
직장 호칭의 서열문화가 직장 밖으로 확장되는 경우도 많다. 우리말글 전문가 8인이 쓴 책 『나는 이렇게 불리는 것이 불편합니다』에 등장하는 사례는 대표적이다. 기업체 사장인 김지수 씨는 어느 날 번개 모임을 갔다가 자신의 절친한 선배를 따라온 그 회사의 나이 어린 대리 직급의 여성을 처음 만났다. 그 여성이 김 대표를 계속 ‘김지수 씨’라고 부르자, 선배가 왜 대표님이라고 부르지 않냐고 주의를 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의 대답은 이러했다.
“지금 여기는 각자 일과 후 자발적으로 모인 사적 자리인데다가 저분은 저희 회사 또는 제 업무와 연관되지도 않았고, 저희 회사 대표도 아니잖아요?"
순간 싸한 분위기가 흘렀고, 김지수 씨는 집에서 왜 자신이 당혹스러움과 순간적 불쾌함을 느꼈을까 생각해보았다고 한다. 평소 듣던 대표님이란 당연한 호칭을 듣지 못한데다가, ‘대리 직급의, 어린, 여성’이라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남존여비 사고와 지위에 따른 갑을 서열 이데올로기가 체화된 권위주의적 아재 혹은 꼰대’라는 성찰적 결론에 이르렀다.
사람은 모두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러나 인정의 원천이 서열에서만 오는 사회에서는, 사적 자리에서도 공적 호칭으로 불리고 싶은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 개인의 인격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직업과 직함, 때로는 나이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다. 김지수 씨는 “해당 호칭과 관련 있는 공적 자리가 아님에도 자연인 자리에서 대표 호칭 바라는 것은 일종의 지나친 의전을 바라는 일”이라고 말했다.
호칭이 서열이 되는 권위주의적 문화는 직함이 없는 많은 사람을 소외시키기도 한다. 예컨대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중년 여성 직원들을 모두 ‘여사님’으로 부르는 식이다. 그래서 이미 많은 회사가 ‘호칭의 민주화’를 위한 호칭 개혁을 시행하고 있다. 직급 대신 ‘이름+님’이나 닉네임을 호칭으로 부르는 것이다. 내가 일했던 두 번째 회사도 사원부터 부장 사이의 호칭을 ‘매니저’와 ‘책임매니저’로 간단히 이원화했다고 한다. 여전히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매니저’라고 부르고, 반대는 ‘매니저+님’으로 부르는 수직적 서열문화에서 완전히 탈피하진 못했다지만, 아무튼 이런 시도는 서열문화를 바꿔가는 출발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호칭의 불편함과 갈등은 직장보다 사적인 모임에서 더 문제가 된다. 직장에서는 ‘직위’로 간단하게 호칭이 정해진다면, 동호회나 사교 모임처럼 사적이지만 친분이 두텁지 않은 자리는 다양한 맥락을 통해 서로를 파악하고 줄 세우려는 복잡한 정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나이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다. 적절한 호칭을 정하기 위해 타인의 배경을 조사하는 작업도 은밀하게 이뤄지는데, 대놓고 물어보지 않고 2002년 월드컵 당시 학년이라던가 동년배가 알 수 있는 문화적 코드를 던져보는 식이다. 선배-후배의 호칭 질서가 잡히면 ‘존대-반말’의 말 높이와 ‘오빠, 형’ 같은 성별도 자연스럽게 확정된다. 이런 호칭 문화는 서열을 다시 강화한다. 그런데 이 ‘나이에 기초한 서열’은 어떤 방식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인지라 폭력적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이를 먹을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가장 좋아한다. 나이, 성별, 직업을 모르는 모호한 상황에서도 두루두루 쓸 수 있으면서 예의 바른 표현이다. 게다가 이름을 몰라도 쓸 수 있으니 온라인, 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쓰기 편하다. ‘님’자를 뗄 정도로 친해진 동년배들끼리의 사적 자리에서는 ‘○○쓰’라는 호칭을 자주 쓴다. 트위터에서는 동무의 ‘무’를 따 ‘○○무’라고 부르는 것도 봤는데, 이것도 적당히 모호하고 즐거운 호칭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신상 정보나 맥락을 몰라도 상관없는 중립적인 호칭의 존재다.
호칭의 민주화가 이뤄진 사회를 상상한다. 영어식 호칭 문화가 완벽한 문화인지는 또 모르겠지만, 어쨌든 평등한 호칭 문화에 목마른 사람부터 제안하고 다니는 수밖에 없다. 오해의 소지가 적은 호칭을 두루 사용하는 것, 나이를 묻지 않는 게 당연해지는 연습을 하는 것. 이미 호칭이 굳어진 것을 바꾸기 어렵다면, 앞으로 새로 만날 사이에서라도 함께 호칭에 대한 룰을 정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2020년은 실제로 일상에서 호칭의 민주화를 실험해보는 해였다. 취업 스터디를 하며 만난 친구들은 모두 나보다 어렸다. 크게 다섯 살까지 차이가 났다. 스터디를 같이 한 지 몇 개월 후, 나는 그들에게 제안했다. 나를 그냥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우리 서로 말을 놓는 건 어떻겠냐고. 그렇게 우리는 ‘언니’,‘누나’,‘오빠’,‘형’이란 호칭 없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사이가 됐다. 이는 스터디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나이와 상관없이 동등한 동료로서 피드백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스터디원 한 명이 내게 “동년배 같아서 가끔 나이를 잊어”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땐 장난스레 “몇살까지 동년밴데. 나도 간신히 90년대생이야”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조금 기쁜 마음이 들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가 되는 일은 새롭고 특별한 경험이다. 그 이후로 나는 새로 만난 관계에서 종종 먼저 제안하고는 한다.
“우리 그냥 이름 부르는 사이가 될래요?”
※매주 두 번, <싫존주의자 선언>의 글이 브런치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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