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조심해야 할지 모르지만 조심하기

성추행을 당했다.

by 사과집

성추행을 당했다. 순환열차에서 내려 New zero art space로 이동하려는 참이었다. 현지인 남자 한 명이 말을 걸었다. 이 곳 사람들은 혼자 다니는 여행자들에게 영어로 말을 잘 건다. 잡상인이든, 대학생이든, 같은 여행자든간에. 몇번 이런 대화를 했기 때문에 나는 또 뭘 파려나? 싶어 대충 대꾸했다. 현지 여행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알려주길래 정보를 알려줘서 고맙다고 얘기를 하며 걸어갔다. 그러다 갈림길이 나와서 나는 이쪽으로 가겠다고 했더니 자기는 오늘 오프 데이라며 내 팔뚝을 잡고 같이 가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내 몸을 터치한 것에 매우 불쾌해져서 팔을 어깨 쪽으로 들고 혼자 가겠다고 했더니 그 사람은 팔뚝과 옆 가슴을 찌르듯 만졌다. 나는 팔을 훽 빼고 연신 혼자 가겠다고, 정보를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그 곳을 빠져나오기 위해 무척 빠르게 걸었다.

후회됐다. 왜 돈 터치라고 말하지 못했지? 뭐가 좋다고 고맙다고 한거야? 그 때의 나의 최대 목표는 그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성추행을 당해도. 여기는 심지어 외국이니까. 한국보다 더 위험할 수 있으니까.



오늘 페이스북에선 모교 사회대의 2층 여자 화장실에 몰카 설치범을 잡았다는 포스팅을 봤다. 그 포스팅에는 “2층 여자 화장실 사용을 당분간 삼가해달라”고 적혀있었다. 그러자 어떤 학우는 ‘왜 삼가해야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게 부적절하다고 느껴진다’고 댓글을 달았다.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그냥 삼가해달라는 말은, 피할 수 없는 불법촬영의 위협을 알아서 피할 것으로 당부하는 맥락으로 읽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들 내게 여자 혼자 여행하는 것을 조심하라고 한다.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고. 나도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고있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을 조심해야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조심해야할게 뭔지 모르고 조심하는 삶이란 어두운 길을 맨발로 걷는 것과 같다. 걷긴 걷는데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밟을지도 모른다. 그럼 발 하나를 떼는데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조심할 게 많은 삶이란 제약이 많은 삶이다. 덜 조심해도 되는.. 그런 사람의 삶이 궁금하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을 조심해야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DSC02331.JPG 미얀마, 양곤 (2018)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도 디지털 노마드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