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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Oct 12. 2022

세 번째 젓가락을 가진 사람

Interview l 문화기획자 파랑~


'세 번째 젓가락’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젓가락질할 때마다 ‘걸리는 게 많은’ 감각을 느낀다. 싫다고 해서 뗄 수도 없다. 이 애매하고 더딘 감각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한다. 남들은 당연하고 편하게 두부도, 탕수육도 집는다. 그러나 그가 집을 수 있는 건 오로지 ‘면’ 뿐이다.


하지만 먹고 싶은 게 많으면, 어떡해야 할까? 세 번째 젓가락으로 자신만의 ‘집는 법’을 연습하기로 한 사람이 있다. 박물관과 문화재를 기반으로 다양한 문화 기획을 만드는 파랑~의 이야기다. 그는 다른 사람의 방식대로가 아닌, 나만의 방식으로 제대로 집기로 결심한다.


직장에서 충족감을 느끼지 못할 때는 조직 밖에서 ‘전시 읽는 사람’이 되었다. 인생에서 큰 고립감을 경험했을 때, 홀로 서기 위한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 <전시독후감>과 <반갑잔치>가 그 결과다. 이 모든 건 세 번째 젓가락을 품고도 잘 살기 위한 고군분투다.


결국 그 고군분투가 삶의 의미가 됐다. 세상에 자신을 억지로 맞추지 않자, 자신만의 세계가 생겼다. 그는 말한다. 어쩔 수 없이 제자리걸음을 해야 한다면, 제자리걸음을 제대로 보여주자고.


글 ㅣ 사과집






말을 붙이는 사람, 파랑~입니다


자기소개부터 시작할까요.

명함에 있는 문구대로 소개를 해볼게요. “넓게는 전통, 좁게는 박물관과 문화재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말을 붙이는 기획을 만드는 사람”, 파랑~입니다


활동명인 ‘파랑~’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처음에는 본명을 쓰다가, 일하면서 나를 지켜줄 안전한 페르소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박물관 언저리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 사람인데, 박물관이라는 곳이 좀 좁다고 생각했거든요. ‘파랑~’이라는 이름 덕분에 일을 시작할 때의 두려움을 없앨 수 있었어요. 지금은 혼용해서 쓰긴 합니다.


‘파랑~’이란 단어가 주는 다양한 감각이 좋아요. 파열음과 부드러운 울림소리의 결합이기도 하고요. ‘푸른 빛깔’과 ‘물결, 파도’라는 뜻을 동시에 담고 있기도 하죠.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윤슬’의 이미지를 연상하는 이름을 짓고 싶었어요. 저도 저렇게 다채롭게 빛을 받는 물결처럼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물결(‘~’)까지 합쳐 풀네임입니다. 흔한 이름에 차별화를 주는 포인트이기도 하고요.


파랑~의 로고


하시는 일에 대해 소개해 주신다면요?

일단 미대를 나왔고요. 이론 전공이에요. 근데 지방에 있는 사립대를 나왔거든요. 이론 전공으로 미대를 나왔는데 심지어 지방대다? 이게 참 먹고 살기 참 어려운 조합인 거예요. 최소한 석사는 무조건 해야 하는 거고. 그럴 자신이 없어서 지방에서 NGO 단체에서 2년 정도 근무를 하다가, 그 생활이 너무 맞지 않아서 그만두고 서울에 올라왔죠. 여기서 대학원도 다녔고, 이후 계속 박물관, 미술관 쪽에서 일을 했어요.


근데 한 직장을 꾸준히 다닌 건 아니거든요. 6개월, 10개월, 12개월 뭐 이런 식으로 끊어서 직장을 다녔어요. 현재는 직장에 다니고 있긴 한데, 중간에 제가 직장에 다니지 않는 순간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 끊어지는 순간에는 박물관이라든가 미술관이라든가 예술이라든가... 그게 제게 속해있지 않은 거예요.


나는 이 일을 평생 하고 싶은 사람인데, 조직 밖에서는 저를 아무도 그렇게 읽어주지 않는 거예요. 그러면 기관에 속하지 않아도 박물관, 문화재를 기반으로 한 일들이 나한테 좀 붙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좀 잘하는 방식으로 이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해왔죠.


우선 이 길을 걷기로 선택했으니 전문 분야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또 들어서 현재는 학예사 자격증 공부도 하고 있고요. 여기까지 왔으니 이 자격증까지는 따고 또 다른 일들을 해보자, 그런 상황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전통과 관련된 일을 하시려는 거죠?

네. 처음에는 박물관도, 문화재도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인지 확신하지 못했어요. 어떤 분들한테는 제 경력이 코웃음 치는 경력일지도 몰라요. 10년, 20년 일한 분들 너무 많으니까. 하지만 짧은 인생 동안 나의 ‘일 경험’은 대체로 여기에서 나왔고, 그렇기에 이 일을 계속하기 위한 방식을 고민하는 상태예요. 기관에 속해 있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서 말이죠. 형태는 좀 달라져도 박물관, 문화재 기반으로 계속해서 활동하지 않을까 싶어요. 


‘말을 붙이는 기획을 만드는 사람’이란 소개 문구가 인상 깊었습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박물관에 들어오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은, 이 일이 굉장히 학구적인 일이었다는 거예요. 저는 미술에서 시작해서 박물관으로 들어오게 된 케이스예요. 박물관이 창조적인 일을 하는 조직이라고 상상했는데 생각보다 전통적인 조직이었고, 쓰고 읽고 공부하는 걸 반복적으로 하는 곳이었죠. 그걸 되게 멋있다고 생각하지만, 제게 잘 맞는 옷은 아니더라고요.


‘말을 붙이는’ 일은 그 안에서 그나마 제가 잘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거였어요. 워낙에 뛰어난 사람들이 많은 분야에서 제가 전문가가 될 수 있는 분야를 찾은 거죠. 도슨트와 비교해볼까요? 보통 도슨트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려면 많은 정보를 탐색하고 습득한 상태여야 하는데, 저는 그런 도슨트는 못 되는 사람인 거예요. ‘어떻게 보셨어요?’까지 말은 하겠는데, 후속 질문에 대해 방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대답하는 사람은 못되더라고요. 그리고 그게 좀 부담스럽다고 느껴졌어요.


그러면 그냥 말을 잘하는 게 나의 전문성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제가 대표적으로 기획한 프로그램이 <전시독후감>이거든요. ‘파랑~’이라는 이름으로 조직 밖에서 기획한 프로그램이에요. 이 프로그램은 전시를 두세 번 정도 더 본 제가 전시를 안내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요. 도슨트는 엄청 오랜 시간 공부한 장인 혹은 전문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전시독후감>에서 저의 역할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보고, 잘 익힐 수 있게 도와주는 정도거든요. 그래서 ‘말을 붙인다’란 문장을 썼어요.




전시 관람도 독서 모임처럼, <전시독후감>


<전시독후감>에 대해서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기본적으로 ‘독서 모임’을 생각하시면 이해하기가 쉬워요. 보통 전시장에서 계속 이야기하는 사람은 도슨트 아니면 큐레이터, 조금 더 가면 진행하는 스텝 정도잖아요. 관객들은 듣기만 하고. 일방적인 소통이죠.


근데 독서 모임 같은 경우엔 참여한 모두가 책에 대해 얘기를 나누잖아요. 누구도 책을 쓰거나 편집한 사람이 없더라도,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모두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에요. 전시장에서도 좀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꼭 어떤 직함이나 권한을 갖지 않아도, 보고 읽고 말하는 걸 편안하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콘셉트로 만들어진 전시 프로그램입니다.


저도 작년에 파랑 님이 진행하는 <전시독후감>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저의 일반적인 전시 관람을 떠올려보면, 방대한 전시 지식을 일방적으로 소화하다가 탈진 상태로 마무리되는 루틴이었거든요. 그런데 파랑 님이 진행하는 <전시독후감>은 계속 내 얘기를 할 수 있도록 말을 붙이시더라고요. 그래서 전시와 나의 삶과 밀착해서 내 것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파랑 님은 <전시독후감>을 들은 사람들이 어떤 걸 느꼈으면 좋겠나요?


지금 해주신 이 감상, 너무 좋아요. 제가 원했던 바거든요. 저도 나름대로 전공생이지만 전시장에 갈 때마다 혼란스러움이 정말 컸어요. 두 세 시간씩 머물면서 탈진할 때까지 정보를 읽고, 익히고... 그 과정이 재밌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 버거웠죠. 근데 사람들은 전시를 그렇게 보지도 않고, 그렇게 보지 않아도 된단 말이에요.  그래서 저 같은 망설임을 관객들이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말을 붙이는 것도 있어요.  ‘편하게 봐도 돼요. 다음에 또 보러 와도 되고요’ 이 정도면 너무 좋죠. 전시장에 다시 오게 만들 수 있는 경험을 만드는 게 저의 목표인 것 같아요.


또 조용하고 잘 관리된 전시 공간을 사람들이 잘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전시 공간에 주눅 들거나 부담스러워하는 것 자체가 좀 싫었죠. 이런 문화생활이 모두에게 열려있다고들 얘기하지만, 정작 나는 그 ‘모두’에 속해 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사람이 아직 많거든요. 그런데 아까 후기를 말해주신 것처럼, 내 경험을 얘기하면서 이 전시와 공간이 편안해지고, 친근해지잖아요. 그게 정말 제가 하고 싶었던 일 중에 하나죠.


‘전시독후감’을 진행하는 모습 ㅣ파랑~ 제공



반가운 서른 잔치, <반갑잔치>


파랑 님의 삶에서 강렬한 변곡점이 있다고 들었어요. 쌍둥이 자매와 같이 살다가, 독립하며 은평구에 새롭게 집을 구하게 되셨다고요.

제가 오랫동안 생각하던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거죠. 아주 친밀했던 쌍둥이와의 분리. 자매가 결혼했거든요. 제 삶에 아주 영구적인 분리처럼 느껴지는 이벤트가 생긴 거예요.


쌍둥이로 살았기 때문에 체화되는 감각이라는 게 있어요. 쌍둥이는 제 인생에 가장 큰 부분이었는데, 이제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된 거죠. 여기로 이사 올 때 저를 안쓰러워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주거 환경이 엄청 업그레이드된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홀로 독립하게 된 거니까요. 물론 쌍둥이는 제 인생에서 아주 큰 부분이었어요.


쌍둥이와 결별하면서 ‘고립감’이라는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로 잘 살고 싶으니까. 새로운 공간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살던 곳과 꽤 거리가 떨어진 은평구에 온 이유 중 하나도 그거예요. 제대로 단절하고 새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새로운 집을 구하면서, 서른한 살을 기념하는 <반갑잔치>를 기획하게 됐어요. 결혼은 큰 이벤트잖아요. 결혼기념일, 시부모님도 챙기고, 아이가 출산하면 돌, 학교 입학 등 계속 생애주기별로 이벤트가 생겨나겠죠. 하지만 저는 아마 결혼을 안 할 거 같은데, 그러면 나에게 인생의 이벤트라는 게 거의 없는 거예요. 그래 봤자 내 생일? 그럼 생일을 좀 잘 챙겨야겠다 싶었던 거죠. 하지만 혼자서 의미 부여하는 것을 넘어, 주변인들의 축하가 꼭 동반이 되어야지 ‘고립감’이나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해소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집에 오면서 아예 집을 콘셉츄얼 하게 꾸미고, 친구들도 부르고, 생일을 좀 더 제대로 즐겨보기로 했죠. 그야말로 ‘잔치’죠. 겸사겸사 기획하는 능력을 발휘해보고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지금 집이 이런 꼴로 생기게 된 것 같아요. (웃음)



이 집이 <반갑잔치> 프로젝트를 위한 공간이자 무대인 것 같은데, <반갑잔치>를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소개 한번 해주신다면요?

‘반가운 서른 잔치, 반갑잔치’ 예요. 환갑 잔치는 익숙하잖아요. 60 갑자의 갑이 다시 돌아오는 해, 61세가 되는 해가 환갑이거든요. 작년 31살 생일을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낼까 생각해 보다가, 환갑이 생각난 거예요. 60갑을 마무리하며 61세에 축하를 한다면, 나도 서른을 완성하며 31살에 축하를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래서 ‘환갑’의 절반인 ‘반갑’이고요. ‘반갑다’ 할 때의 그 반갑도 포함해서 반갑잔치예요.


서른 하면 되게 부정적인 이미지 혹은 우울하거나 이런 느낌이 있잖아요. 특히 여성들일수록 더요. 아홉수라는 배경도 있고. 일부러 서른한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잔치 이름을 반갑 ’잔치’로 지었어요. 반갑잔치에서 하는 건 돌잔치와 환갑 잔치와 익히 알고 있는 통과 의례의 풍경들 있잖아요. 그런 거예요. 맛있는 거 푸지게 먹고, 사진 좀 찍고. 그 과정에서 서른을 의미 부여하는 질문을 같이 해보고. 스스로 서른에 매듭짓고 기점을 세우는 거죠.


그러면 파랑 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걸 신청해서 할 수 있나요?

앞으로는 그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쉽지는 않지만, 같이 프로젝트할 동반자도 구하고 있어요. 잘 안된다고 해도 앞으로 계속 반갑잔치를 해볼 예정입니다.



‘반갑잔치’의 모습ㅣ파랑~ 제공



내 삶의 응급조치

파랑~의 원동력


파랑 님의 두 주요 프로젝트가 <반갑잔치>, 그리고 <전시독후감>인데요. 어떤 마음이 이 프로젝트를 하게 만드는 거죠?

안 할 수가 없어서 하는 거예요, 안 할 수가 없어서. 만약 제가 직장에서 충족감을 느끼고, 제 가족과 친구들에게 내 삶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면 굳이 이런 프로젝트를 할 필요가 없었겠죠.


기관에 속하지 않고도 지속 가능한 일을 하고 싶은데, ‘이런 식으로 일하는 건 가능할 것 같아’ 그런 마음으로 만든 게 전시독후감이었죠. 일 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으려면 뭐가 필요할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나 콘텐츠가 있어야 하겠다. 그런 게 다 포함돼서 반갑잔치가 나온 거거든요.


둘 다 만드는 과정은 정말 어려웠어요. 만들고 나니까 속이 좀 후련해요. 이렇게 한 번 만들어두니 이젠 안 할 이유가 없어요. 정말 기계처럼 열심히만 하면 돌아갈 수 있게 스스로 세팅을 해둔 셈이거든요. 두 프로젝트는 제가 꾸준히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두 프로젝트를 통해 바라는 미래의 모습이 있나요? 수익이 생겼으면 좋겠다거나.

세계관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리고 어떤 한 개인은 결국에는 자기 세계관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지금 제 세계관을 구축할 일과 삶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들을 두 프로젝트를 통해 이미 만들어 놔서 아주 좋아요. 이게 돈이 되지 않아도 내 삶을 아주 잘 지탱해 줄 걸 알죠. 물론 돈까지 되면 너무 좋죠. 근데 제가 이것을 수익화하지 못한다고 해도, 시간을 쪼개가면서 할 것 같아요. 이게 내 삶의 의미이고, 원동력이니까.


두 프로젝트와 파랑 님의 일과 삶이 정렬되어 있다는 느낌을 한번 받았어요. 조직에서 얻을 수 없는 효능감을 <전시독후감>을 통해 얻고, 독립의 과정에서 느낀 고독감을 <반갑잔치>를 통해 해소하게 된 거죠. 모두 파랑 님에게 꼭 필요한 일들이네요.

그러니깐요. 그렇게 안 하고 살 수 있었으면 참 좋을 텐데, 걸리는 게 참 많은 삶이어서... 안 할 수가 없었어요.



‘걸리는 게 많은 삶’이 뭐예요?

이게 친구랑 술 먹다가 나온 말인데, ‘세 번째 젓가락 이론’이라는 게 있어요.


남들은 다들 젓가락을 두 개씩 들고 여러 음식을 탐구하잖아요. 근데 저는 젓가락을 들면, 사람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내 손안에 느껴지는 세 번째 젓가락이 있어요. 필요하지도 않은데, 제가 젓가락에 손만 대면 따라붙어요. 젓가락 세 개로 물건을 집는다는 게 참 어렵잖아요. 잘 안 집히겠죠. 저는 제 삶이 스스로에게 그렇게 느껴져요. 남들은 당연하고 편하게 음식을 권해요. 두부도 권하고, 탕수육도 권하는데 제가 집을 수 있는 건 오직 면뿐인 거예요.


제가 뭔가를 집어 먹으려면 더 많은 기술이 필요한 거예요. 처음엔 사람들에게 ‘난 세 번째 젓가락이 있어서 너네가 권한 걸 못 먹어’라고 설명하려고 했는데 나만 이상한 사람이 돼버리는 거죠. 그렇다면 설명하지 말자. 세 번째 젓가락으로 잘 집는 연습을 하자. 식탁에 있는 음식을 계속 맛보고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연습을 하자. 그게 제게 ‘걸리는 삶‘이었어요.


물론 면만 먹으면서 생존만 하는 삶을 살 수도 있었겠죠. 사실 저는 생존하기에 나쁘지 않은 조건들을 가지고 있거든요. 부모님도 그렇고 쌍둥이 친구도 그렇고. 하지만 제가 그 세 명의 양육자에게 빗대는 삶을 사는 건 싫은 거예요. 생존만 하고 사는 건 달갑지 않잖아요.


‘내가 좋아서 살았으면 좋겠어,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어, 효능감을 느끼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제가 벌린 일들은 세 번째 젓가락을 품고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다짐에서 나오는 프로젝트인 것 같아요. 왜 눈물이 날까요.


어떻게 휴지 좀 드릴까요? (못 찾음)

아무래도 저희 집이라... (직접 찾음)


남들은 쉽게 쉽게 선택하며 사는 것 같은데, 그게 파랑 님에겐 쉽지 않은 거죠. 세 번째 젓가락 때문에. 하지만 그 더딘 감각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게 지금 아닐까요? <전시독후감>도 그런 거죠. 굳이 전시를 저렇게 쪼개 보거나, 굳이 사람들과 같이 보지 않아도 되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으면 되게 제대로 하지 않은 거란 감각이 되게 큰 거예요. 제대로, 제대로 하고 싶어서.


결국은 자기의 세계관을 구축한 것으로 보이거든요. 속도가 남들과 다를지언정, 견고한 자기 세계를 스스로 쌓아가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네요.

안 할 이유가 없고 못 할 이유도 없고 그런 것 같아요. 모든 동력이 저로부터 시작을 했기 때문에 헤맬 필요가 없어서 참 좋아요.  아무튼 간 이게 다 내가 선택해서 굴러가고 있다는 감각을 언제나 받고 있어서 지속 가능성이 아주 아주 높은 거죠.


‘안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을 되게 오늘 몇 번 했는데요. 보통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것 같거든요.

세상의 모든 일은 하면 다 좋아요. 그렇지 않아요? 외국어도 하면 좋지 컴퓨터 잘하면 그것도 좋지 여행도 가봐야지 돈도 모아야 되고 뭐도 하고 뭐도 하고.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일을 하지 않는 건, 꼭 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제가 해온 것들은 약간 응급 처치에 가까운 것들이에요. 삶의 응급처치. 이것들은 내 삶이 힘들어질 때 구심점이 되어줄 일들이거든요. 망설일 이유가 없어지니 결국에는 해야하는 것들이 되더라고요. 내 세계관의 중심이 되는 일들이니까. 물론 세계관을 아예 바꾸려고 한다면 모르겠지만요.






제자리걸음을, 제대로 보여주기

파랑~의 다짐


더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나요?

여기 이 흰 책자는 <전시독후감>을 기록으로 남긴 첫 번째 책이거든요. 2019년에 시작해서 사람들 사람들 녹취하고 요약해서 이미지 넣고 책 만들고 하는데 1년 걸렸어요.


너무 뿌듯할 것 같아요. 이렇게 결과물까지 내고.

할 때는 “안 해도 되는 일을 이렇게 까지 하고 있네”라며 이 꽉 깨물고 했어요. 한편으로는 “이걸 지금 안 하면 어떻게 할 건데!” 이런 마음으로 참고 했죠. 사실은 안 해도 될 일이 아니라 아주 응급한 일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안 하는 상태가 더 불행하다는 걸 알았다는 거죠.


자기 효능감이 중요한 사람이라고도 느껴져요.

만들었을 때 당시의 효능감은 크지 않았어요. 당시엔 그냥 ‘완성했다’ 정도였죠. 사실 효능감은 오랜 시간에 지난 후에 왔어요. 만든 지 2년 뒤였죠.


왜 2년 뒤인가요?

이 책자 덕분에 ‘박물관 자문위원단’ 활동을 하게 되었거든요. 제겐 엄청 큰 성과예요. 친구들이 책자를 보고 ‘대단하다’ 했을 때는 그렇게 까지 효능감이 오지 않았어요. 내가 이걸 만들 수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거든요. 친구들이 반응도 짐작했던 반응이고, 어쩌면 인정 욕구가 너무 커서 효능감을 못 느꼈을 수도 있겠죠.


이 책자는 어떻게 보면 청자가 되게 분명한 프로젝트였어요. 그런데 2년 후 정확한 타깃이 나에게 반응한 거예요. 공식적인 기관에서 내가 받고 싶은 피드백을 받은 거니까요. 시간은 좀 걸렸지만. 그게 저한테 되게 중요했어요.


어떻게 자문위원단을 맡게 된 건가요?

다른 분이 이 책자를 본인 블로그에 올리셨는데, 그걸 보고 연락이 왔어요. 책자를 만드는 데도 1년 걸렸고, 그 반응이 오는 데도 2년이 걸린 거죠.


이 인터뷰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 1년이든 1년 반이든 잘 부여잡고 있으면 뭐든 되지 않을까요? (웃음)



박물관 자문위원단의 일을 맡은 게 본인에게 왜 중요했나요?

제가 <전시독후감>을 어떻게 진행할 때 공통적으로 던지는 두 질문이 있어요. 첫 번째는 ‘이 전시에서 기획자가 의도하는 바는 무엇인가?’ 두 번째는 ‘본인 마음에 드는 전시물은 무엇인가?’ 전시독후감을 통해서는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매번 들어요. 근데 첫 번째 질문의 답을 들어본 적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자문위원단을 통해 그 질문을 할 기회가 생긴 거죠.


“기획자들이 본인의 의도대로 이렇게, 저렇게 만들려고 해요. 어떠세요?” 그런 자리에 제가 초대를 받은 거예요. 기획의 마지막 단, 그리고 설치가 된 마지막 단에 기획자의 의도를 듣고,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나 불편한 부분을 말할 자리에 초대된 거죠. 나의 의견으로 박물관이 개선될 수 있겠구나, 그것 자체가 효능감인 거예요. 실제로 반영이 됐는지 안됐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저는 제 의견이 진짜로 반영될 수 있다는 ‘감각’을 확실하게 느꼈으니까요.


박물관에서도 외부의 의견을 들어보려는 첫 시도일 거예요. 보통 교수님들이나 관장님들이 하는 일을 일개 계약직 연구원에게 기회를 준거죠. 어디서 10년, 20년씩 학예사 일을 하는 분들이 제 의견을 귀하게 듣겠다고 자리를 만들어서 해준다는 것에서 엄청난 효능감을 느꼈어요. 기관에서도 받지 못하는 인정과 피드백을 들은 순간이었죠.


‘세 번째 젓가락’ 때문에 파랑 님이 벌린 삶의 응급조치가, 결국 삶의 효능감을 주는 일로도 되돌아온 거네요.

다들 세상에 맞추려고 노력을 하잖아요. 저도 맞추려고 노력해봤는데 제가 잘 맞춰지지 않는 사람이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제자리걸음을 한다면,


미스핏츠(misfits)로 살아야 한다면(웃음)

제자리걸음을 한다면, 제자리걸음을 제대로 보여주자. (끝)






파랑~의 브런치



전시독후감이 궁금하다면? 

반갑잔치가 궁금하다면?




인터뷰이 ㅣ 파랑~

인터뷰어, 촬영 ㅣ 사과집

촬영 장소 | 파랑~의 집

copyright ⓒ 사과집 All Rights Reserved




9월 말, 촬영 연습을 빌미로 파랑~의 집을 방문했다. 가볍게 만난 자리에서 예상 밖의 대화를 나눴다. 그 일부를 이 글에 담았다. 그의 집을 담은 영상도 곧 공개될 예정이다. 이 인터뷰와는 또 다른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담길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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