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적인 나는 없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 나다

by 사과집

Day 10 / Yangon, Burma / 8.30


DSC02566.JPG 미얀마, 양곤 (2018)



본질적인 나는 없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 나다


분류에 대한 강박이 있다. 이 분류는 서류에 대한 분류, 일정이나 계획에 대한 분류도 있지만 나를 카테고라이징하는 것도 포함된다. 실제로 내가 글을 쓰고 사람을 팔로우 하는 계정은(그게 블로그든, 인스타든, 트위터든..) 매우 여러개다. 나를 매우 잘 아는 사람, 나를 적당히 아는 사람, 회사에서의 나, 회사 밖에서의 나도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매우 분류되어 있고 그런 분리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내가 불안함을 느끼는 경우는 대부분 분명했다. 내가 분류할 수 없을 때. 내가 분류할 수 없는 어떤 상황이나 무언가가 나타났을 때. 단순히 뭉뚱그려버리기엔 너무 일반화되어버리고, 잘게 나누기엔 공간이 충분하지 않을 때.


그런 분류에서 조금 자유로워졌다고 느끼는건 .. 역시 퇴사다. 분기점이 퇴사라고 하기엔 모든게 일반화되는 느낌이지만, 어쨌든 첫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나의 이야기를 나를 아는/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구분 없이 보여줄 수 있게 되고,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살기로 다짐하고, 그간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사람들과 연락을 하고, 끊임없이 혼자가 되는 시간을 갖게된 것이 <퇴사> 이후에 가능해졌으므로 단순하게 퇴사라고 말하겠다. 각각의 방에 살고 있던 내가 서로 만나고, 벽이 허물어지고, 경계가 무너지는 느낌을 받는데 그것이 싫지 않다. 오히려 반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나는 나의 이미지를 정해두고 살았던 건 아닐까, 거기서 좀 자유로워진게 아닐까. “본질적인 나는 없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 나다” 정희진 쌤의 말처럼. 그냥 내가 추구하는게 나다.


여행을 떠나면서 나는 약간 색다른 목표를 하나 가지고 있었다.
그 목표는 바로 내가 된다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풍경의 발견과는 상관 없는 다른 발견들이야말로
내가 이곳저곳 떠돌기 시작할 무렵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개인적인 틀을 강요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나 자신을 온전히 걸 만큼 큰 목표가 될 수 없고 충분치도 않다.
오히려 그 틀을 벗어나는 것이 나의 목표다.

- 크리스틴 조디스, 미얀마 산책”



우리 방소단도 같은 말을 한다구요.

“내 속 안에 몇 십 몇 백 명의 내가 있어! 오늘 또 다른 날 맞이해! 어차피 전부 다 나이기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혼자여도 감당 가능할 수준의 아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