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북에서 알려주지 않는 것

고소공포증을 가진 자의 미얀마 바간 투어

by 사과집

Day18 / Bagan, Burma / 9.7

바간에 온지 4일만에 제대로 관광을 하러 나갔다. 호텔에서 이바이크를 빌릴 수 있었는데, 이건 정말 희대의 발명품이다. 스쿠터처럼 처음 타기에 어렵거나 위험하지도 않고, 페달을 안밟아도 쭉쭉 잘나가고… 가장 좋은 점은 고장나도 고물이 안된다는 것이다. 스쿠터처럼 고장나거나 방전되서 꼼짝없이 움직이지도 못하고 견인을 기다려야하는 존재가 아니다. 전기가 안먹히면 그냥 내가 끌고 오면된다! 이런 예비 대책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고장나면 그 순간 바로 고물이 되어버리는 것들…. 예컨대 나의 과거 크레마 리더기…. 이런 것들은 쓰면서도 고장나는게 걱정되서 제대로 쓰지도 못한다.


IMG_1526.JPG 전기자전거는 최고의 발명품


전기자전거 예찬은 이만하고… 시원한 바람을 쐬며 약 20km 의 속도로 바간의 초원과 사원을 보며 달렸다. 올해 초 대만 가오슝에서 전기스쿠터를 탔을때는 진짜… 존나 무서웠는데 여긴 길도 넓고 차도 별로 없어서 편했다. 올드 바간을 달리고 달려 바간의 명물 일몰을 보기 위한 적당한 사원을 찾아 다녔다. 대부분의 사원들은 올라가는게 막혀있었다. 5분에 한번씩 투어리스트들에게 자기만 안다는 시크릿 파고다로 데려다 준다며 호객 행위를 했다. 처음엔 거절하다가, 5시를 넘어가자 초조해진 나는 어떤 귀여운 소녀가 안다는 시크릿 파고다에 따라가기로 했다. 얼마냐고 물어보니까 프리란다. 다만 자기 대나무 기념품만 하나 사면 된다고. 엏게이. 소녀의 이름은 찌진이었다.



찌진이 이끄는 파고다로 가기 위해 이 바이크를 타고 꽤 달렸다. 그리고 한적한 곳에 위치한 파고다로 올라가는데… 그때까지 나는 고소 공포증을 생각하지 못했다. 당연히 일몰을 보려면 어딘가 올라가야 하고, 그곳은 꽤 높은 곳일텐데… 오래 자전거를 타서 엉덩이와 다리가 후들거리고, 오랜만에 렌즈를 껴서 먼 풍경의 초점이 잘 맞지 않았다. 그렇게 사원의 벽돌을 밟고 올라가는데 갑자기 너무 무서웠다. 사원에 앉아 일몰을 기다리며 바간의 풍경에 넋을 잃다가도, 한편으로는 계속 “여기서 떨어져서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같은 사원에 올라온 외국인 여자 한명은 자기는 여기에 못 있겠다며 내려가기도 했다.


여행 후기에 이런건 없었다. 사원이 아름답다. 일몰이 아름답다. 라고만 하지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사원으로 올라가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예슬 언니랑 라오스에 가서 짚라인을 할때가 떠올랐다. 나는 짚라인 체인을 메고 신나게 내려오는 것만 생각했지, 내려오기 위해 수많은 오르막길을 등산해야 한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다.


IMG_1559.JPG 아름답긴 아름다웠던 바간의 일몰


그래서 일몰은 적당히 보고 내려왔다. 너무 어두워지면 더 무서울 것 같았다. 찌진은 마지막으로 기념품을 보여줬는데.. 생각보다 살게 없었고 생각보다 비쌌지만 그냥 하나 샀다. 좋은 사원도 안내하고, 편하게 길잡이도 해주고, 사진도 찍어주고, 같이 노을도 기다려줬으니까. 솔찍히 찌진이 귀엽고 예뻐서 사기도 했다. 그렇게 내 손엔 정체 불명의 작은 캐비닛 다섯개가 남았다. 1년 간 기념품은 안사기로 했는데(짐을 늘리지 않기 위해), 또 ‘고맙거나 미안해서’ 샀다. 소비 자체가 목적이 아닌 소비를 계속 하게 된다.

IMG_1542.JPG 미얀마, 바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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