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바다는 매우 힘든 운동이다

내가 쓰던 것을 주는 것은 더 어렵다.

by 사과집

Day18 / Bagan, Burma / 9.7



내게 책을 만드는 걸 도와달라고 한 분이 있는데, 그분이 한 말이, 할말은 많은데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을 정리하는게 너무 힘들다고. 원래 그렇다. 정리하는게 제일 힘들다. 머리 속에 있는 것을 정리해서 글을 쓰는 것도 너무 힘든데, 이렇게 꾸역꾸역 쓴 글도 그냥 묶을 수는 없다. 버릴 건 버리고, 순서에 맞게 배열을 해야 한다. 특히 필요없는 부분을 버리는 것이 가장 어렵다.

정리라는 것은 엄청난 노동이다. 생각 정리는 지적 노동이고, 집 정리는 신체적 노동이다. 정희진 선생님의 책을 읽다 유독 와닿았던 부분은 “두면 고물, 주면 보물”이라는 재활용 단체의 슬로건은 매우 잘못된 말이라는 것이었다. 대개 여성들이 하는 노동을 무시하고 비가시화하는 말이라고 했다.

내가 쓰던 것을 주는 것은 더 어렵다.
정리, 청소, 수선을 필수. 드라이 클리닝, 다림질까지.
남은 음식은 그냥 주기 미안해서 새로 음식을 더하기도 한다.

여행 오기 전에 집에 있는 물건들을 처분하는 프리마켓을 하려고 했지만 곧 내 머리속에서만 이상적인 일임을 알게 되었다. “내게 별로 득이 되지는 않지만 주고 욕먹을 가능성이 더 많은”, 받는 사람이 만족할 정도가 되기 위해선 수많은 가공을 거쳐야 하는 일. 그게 귀찮아서 다들 버리는 것이었다. 정희진 선생님은 자원을 아끼고 나누는 데는 노동이 요구되고, 이 노동이 자본주의를 구제한다고 말했다. “변화는 다른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망가진 세상을 수선하는 일이다.” 귀찮고 힘든 일임을 알면서도 이 물건이 잘 어울리는 사람을 생각하고, 그 사람을 위해서 수선하고, 정리하고, 주는 일.


어쩌면 책을 만들고 글을 쓰는 것도 똑같다. 억지로 새로운 글을 쓰는 것 보다, 이미 쓰여진 나의 글을 다시 수선하고 정리하는 걸로 충분하다. 퇴고가 더 중요하단 말씀!



IMG_1485.JPG 미얀마, 바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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