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지름길을 선사하는 하나의 완벽한 길
Day19 / Bagan, Burma / 9.8
어제 휘민이랑 전화할때 내가 “우쿨렐레 연습 많이해서 많이 쳐도 안아파”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벌써 굳은살이 박혔나? 그래도 연습하니까 익숙해졌긴 한가보네 하면서 한껏 우쭐했다. 그리고 휘민이한테 “내 인생 평생 이렇게 뭔가 열심히 해본적이 있었나 싶다”고 까지 이빨을 털었는데 오늘 보니까 그게 아니었다. 그냥 손톱을 깎고, 손거스러미를 잘라서 연주하기가 편해졌던거였다. 그리고 소리가 잘 안나면 제대로된 스트로크 방식으로 연주하지 않고 소리가 날 수밖에 없게 개세게 내리쳤다. 나는 그걸 보고 “아 벌써 굳은살이 박혀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연습을 열심히 했구나”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드로잉을 할 때도 그랬다. 드로잉을 하려면 우선 충분히 관찰을 해야하고, 내가 그리고 싶은 부분을 펜으로 조심히 그리고(드로잉은 연필이 아니라 펜으로 한다. 지울 수 없다는 걸 알아야 더 유심히 관찰하기 때문이다), 적당한 색을 섞어 만든 수채화 물감에 물을 묻혀 레이아웃을 채워야 한다. 수채화를 덧칠할 땐 이전에 덧칠한 것이 마를 때가지 기다려야 한다. 나는 이 레이아웃 안에 물감을 채우고 기다리는 과정이 너무 지루했다. 물이 마르기까지 기다리는 것도 귀찮고, 레이아웃 안을 꼼꼼하게 채우는 것도 번거로워서 마르지 않은 캔버스에 물감을 덧칠했다. 그렇게 완성한 내 그림을 보고 드로잉 선생님은 말했다. “세희씨는 이렇게 그리는게 매력이긴 한데... 조금 더 선 안을 꼼꼼히 채워 그려보세요. 그럼 더 예쁠 거에요.” 실제로 선생님 말을 따라 한 그림은 훨씬 내 마음에 들었다. 완성도 있다는 느낌이었다.
완성도가 없는 것을 나의 ‘화풍’으로 둘러댄 시간들. 대충하는 것을 성격이나 개성탓 해온 나날들. 취미 생활을 할 때도 나는 그렇게 나를 속여왔다. 딱 한번 정말 미친듯이 몰입했었을 때가 있었는데, 피아노 학원에서 어떤 곡을 연습했던 때였다. 나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 나오는 ‘Bravissimo maestro’를 너무 치고 싶어서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되었고, 그 곡을 완벽하게 치기 위해 어느날은 피아노 학원에서 7시간 동안 그 한 곡만 연주했다. 좋아하는 일에 그렇게 오래 집중해본 적은 난생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곡은 아직도 악보 없이도 저절로 나오는 단 하나의 곡이다.
완성도가 없는 것을 나의 ‘화풍’으로 둘러댄 시간들.
대충하는 것을 성격이나 개성탓 해온 나날들.
취미 생활을 할 때도 나는 그렇게 나를 속여왔다
살면서 모든 것에 완성도를 추구할 필요는 없다. 그런 건 딱 하나만 있어도 된다. 내가 자신있게 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만 있어도 자신감이 생긴다. 단 하나의 연주곡, 단 하나의 드로잉, 단 하나의 우쿨렐레 곡. 그거면 충분하다. 신기한 것은, 제대로 가는 길을 하나만 알면 지름길을 알기도 더 쉬워진다는 것이다. 지름길에만 만족하면 절대로 원래의 길을 알 수 없지만, 단 하나의 완벽한 길은 수많은 지름길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