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2일차 일기
Day27/ Chiang Mai, Thailand / 9.16
치앙마이 2일차 일기
1. 오늘은 아침 여섯시에 일어났다. 대부분의 시간을 숙소에서 보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요리를 하고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서 기사를 읽고 글을 쓰고 메일에 답장을 하고, 지겨워질 때쯤 에어컨이 있는 방에 들어가 침대를 뒹굴며 핸드폰을 하고, 노란 소파에 쿠션을 대고 누워 책을 읽고, 배고파질 때 쯤엔 씻고 나가서 밥먹고 들어와 우쿨렐레를 쳤다. 그러다 해가 지고 더위가 가실 때쯤이 되서야 야시장에 갔다. 일요일 올드시티엔 대규모의 선데이 마켓이 열린다. 내일은 좀더 멀리 나가 휘민이랑 갔던 마야몰 근처로 가서 장도보고 린라오 서점과 북스미스에도 갈 것이다.
2. 나는 치앙마이에 하루만에 적응해서 하루만에 사랑에 빠졌다. (원래는 치앙마이 안거치고 바로 빠이에 가려고 했었다.) 미안 미안마. 나는 어쩔 수 없는 도시 사람인가봐. 방문하지 않아도 갈 수 있는 편의 시설이 도처에 깔려 있는 집순이의 삶을 구파발에서도, 치앙마이에서도 실현 중이다.
3. 취미 생활을 할 거실이 있고 작업할 책상이 있고 커피을 만들어 마실 수 있다는거. 무엇보다 개 빵빵한 와이파이가 있다는거.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베스트다. 어짜피 밖에서 사먹는게 훨씬 싸기 때문에 하루에 가벼운 한 두끼는 집에서 먹고 한끼는 나가서 먹는다. 그런데 이렇게 “대충 때울 수 있다”는 것은 주방을 가진 자만의 특권이다. 주방과 기초 재료가 없는 여행자는 대충 때우고 싶어도 씻고 옷갈아입고 밖을 나가야한다.
4. 치앙마이에서 한달 정도 더 살까 생각중이다. 물론 이 방에서 계속 살 순 없겠지만, 내가 원하는 방의 최소 조건을 알았으니, 어떻게 비슷한 방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베스트인 숙소가 뭔지 알아간다. 앞으로 어떤 숙소를 잡아야 될지 감이 잡힌다.
5. 그리고 좋은 숙소에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록, 한국에 돌아가서 집을 구하고 싶은 욕망도 커지고 있다. 나는 1년은 기숙사, 5년은 하숙집에서 살았고 최근 2년 반은 방 하나짜리 오피스텔에서 살았다. 다음 방은.. 투룸이었으면 좋겠다. 잠자는 곳과 작업실을 분리하고 싶다. 거실은 작업실로 사용할 것이다. 채광이 좋은 쪽에 커다란 원목 작업용 책상을 두어야지. 가운데는 내가 누워도 발 공간이 약간 남는 크기의 소파를 둘거다. 도란도란 둘러 앉아서 밥먹기 좋은 테이블도 두어야지. 침실에는 큰 침대를 두고 싶다.
6. 사실 작업실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같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우쿨렐레도 치고. 노래도 내가 원하는 거 틀수 있고 커피랑 술도 있는 그런 작업실. 하지만 우선 내집이나 구해야겠죠. 대출.. 대출을 해야한다.
7. 한국에 가서 또 하고 싶은거. 서울 어디에 살지도 잘 모르겠지만.. 우선 근처에 큰 도서관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북으로 나오지 않아 여기서 읽을 수 없는 책들을 쌓아두고 하루 종일 읽고싶다.
독서 스터디
1. 작년에 트레바리라는 오프라인 독서 모임을 할 때, 모임에서 <쌤통의 심리학>을 읽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책을 읽을 때 철저히 나 자신을 ‘살리에리’에 대입해서 읽었다. 나의 이 열등감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그런데 그 모임의 한 명은 (그 분은 정신과 의사였다) 자신을 ‘모짜르트’에 대입해서 읽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갖는 열등감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초점을 맞춰서 읽었다고. 충격이었다. 와 모짜르트에 대입해서 이걸 읽기도 하는구나.. 자신의 열등감이 아니라 남이 자신에게 투사하는 열등감을 생각할 수도 있구나… 뭔가 되게 자의식이 강한 것 같기도 하지만 신기하긴 하네…
2. 다만 그런 논의의 다양성이 토론의 질로 이어지진 않았다. 각자 자기 이야기만 물 위의 기름 처럼 둥둥 떠다녔고, 그래서 트레바리는 한 시즌만 하고 관뒀다. 모임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특히 꽤나 돈을 지불했을 경우엔 기회비용을 철저히 따지게 되므로….
3. 10월에는 온라인 스터디를 꼭 하고 싶었는데 지금 미뤄둔 게 많아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나는 페미니즘 도서를 읽고 글을 쓰는 스터디고, 하나는 한가지 주제를 던지고 각자 아무 책이나 읽고 글쓰는 스터디를 구상 중이다. 이전 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기 어려울까봐 미루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든 모임의 주기는 끝날 수밖에 없다. 1년을 가든, 한달을 갖든 만나는 기간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크게 상관없다. 모든 사람은 헤어진다. 현재에 집중할 것.
4. 10월에는 꼭.. 아 그 전에 독립출판의 모든 것 포스팅 끝내야 하는데 ..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