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독서입니다.
Day47 / Chiang Mai, Thailand / 10.6
백수이자 여행자의 특권은 역시 책을 읽을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을 땐 책 생각도 안나지만, 좋은 책을 읽으면 읽으면서도 더 읽고 싶어서 갈증이 난다.
특히 뭔가 쓸게 없을 때 책을 읽으면 좋다. 책을 통해서 소재를 얻는다기 보단, 저자가 세상으로부터 어떻게 소재를 얻는지 그의 관찰법을 배울 수 있다.
어떤 책은 일상에 활기와 유머를 더해준다. 줄리언 반스의 <연애의 기억>을 읽으면서 언젠가 현실에서 꼭 써먹고 싶은 대사를 메모했다. “이 집에서는 좆같은 펍 기준으로 술을 따르지 않아요” 꼭 집에 사람을 초대하고 술을 잔에 가득 따라주며 이 대사를 써먹을 것이다.
어떤 책은 계속 공부하도록 이끈다. 앤드류 솔로몬의 <부모와 다른 아이들>은 예외적인 정체성을 가진 자녀- 청각장애, 소인증, 다운증후군, 자폐증, 정신분열, 신동, 강간으로 잉태된 아이, 범죄자가 된 아이, 트렌스젠더 등 -를 둔 가족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수많은 인터뷰와 참고 문헌, 강력한 실증으로 장애와 정체성 사이의 미묘한 정치학을 다루는 한편 절대 일반화하지 않는 이 책은 수많은 질문으로 나를 데려간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다시 또 책을 찾아 읽어야 한다.
어떤 책은 행동할 용기를 준다. 정신적 장애인을 형제자매로 둔 청년들의 모임 ‘나는’이 출판한 <나는, 어떤 비장애형제들의 이야기>는 나도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용기를 주고, 나아가 연대하고 실제로 행동할 방안을 고민할 용기를 준다.
사실 아무리 책을 읽자고 해도 막상 그렇게 많이 읽지 않는다. 그래서 벌써 후회된다. 분명히 여행이 끝나면 후회할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많은데 왜 더 읽지 않았어? 이렇게 시간이 많을 때도 책을 읽지 않는다면, 도대체 내 인생에서 언제 책을 원없이 읽겠냔 말이야? (그리고 분명 영어 공부 안한 것도 후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