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54 / Chiang Mai, Thailand / 10.13
1.
드로잉을 되게 오랜만에 했다. 미얀마에서 파고다를 그리려다가 디테일에 패망하고 자괴감을 느끼고 포기한 이후 처음 그렸다. 오히려 여행와서는 그림보다는 우쿨렐레를 더 많이 친다.
나는 그림을 많이 그릴 줄 알고 수채화가 가능한 200g 종이의 드로잉북도 사이즈별로 두 권 사왔다. 생각해보니까 이 드로잉북이 굉장히 본격적이라 안그리는 거 같기도 하다. 잘못 그려도 찢지도 못하고, 이상한 채로 계속 가지고 다녀야한다. 검은 밴딩의 고급스러운 그레이의 드로잉북이 오히려 내 기를 바싹 죽인다. 오늘은 낱장의 종이에 그려서 그런 부담이 덜했다. 망치면 그냥 버리면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면 오히려 안망친다. 멘탈 케어를 하지 못하는 나는 어쩌면 나는 모든 취미에서 만년 습작생일 것이다.
2.
오늘 그린 그림은 나의 단골 코워킹 스페이스, Addicted to work 사장님에게 줬다. 그림을 주며 다음엔 여기를 그려준다고 했다. 왜 나는 맨날 이렇게 이빨을 터는가? 그냥 그리고 나서 주는게 더 낫잖아…평생 쿨함이라고는 없을 사람. 츤데레의 정석은 생색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인데 나는 심지어 아무것도 안하고 생색부터 내는 사람이다. 존나 언쿨. 개안쿨해 ..
어쨌든 내가 머무는 곳, 특히 내가 좋아하는 곳에 내 흔적이 하나씩 남는게 좋다. 이것도 드로잉북이 아닌 뜯을 수 있는 종이에 그려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 선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