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마이(Chiang Mai)의 코워킹 스페이스
치앙마이에 오면 꼭 해보고 싶었던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코워킹 스페이스 도장찍기를 해보는 것. 디지털 노마드의 천국 치앙마이의 수많은 작업공간을 모두 가보고, 제일 마음에 드는 곳에 출석 도장을 찍겠다는 작은 소망이 있었다. 하지만 처음 간 장소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겨 다른 곳은 얼씬도 하지 않으며 그 꿈은 깨졌다. 님만해민 구석 어딘가에 숨겨져있는 “Addicted to work”는 내가 치앙마이에 머무는 몇 주 동안 매일같이 방문한 코워킹 스페이스다.
어딕티드 투 워크의 분위기는 한적하고, 조용하다. 신발을 벗고 공간에 들어서면 장부에 이름을 적고 도착한 시간과 마시고 싶은 음료를 적는다. 하루 이용료는 음료 1회를 포함하여 120바트. (반나절, 한시간 단위로도 이용할 수 있다.) 애매한 카페를 전전하는 것 보단 이곳에서 주전부리와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면 몸도 편하고 돈도 아낄 수 있다. 채광이 좋아 언제나 햇빛이 실내로 그림같이 내려오고, 다양한 식물이 자라는 화단이 시야를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이 곳은 세련된 카페보단 정갈한 가정집 같은 곳이다. 창가 쪽에 준비된 높은 의자에 앉아도 되고, 편한 의자에 앉아 작업을 해도 된다. 졸릴 때는 스탠드 데스크에서 서서 일하다가, 정 안되겠으면 커다란 빈백에 누워 자도 된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개발자들이다. 이곳에서 몇달간 치앙마이에 머무르며 개발자로 일하는 한국인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매주 목요일마다 이곳에서 개발자 모임을 한다고 했다. 나는 디지털노마드가 가득한 이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유일하게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가져온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사진을 편집하다가 귀찮으면 노트북을 닫고 그림을 그렸다. 조용하고 느리게 가는 이 곳에서 시간을 빈둥빈둥 때우다, 밥시간 때는 핌의 식사 시간에 낑겨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었다. 나는 미얀마와 치앙마이를 거치는 두 달간 일행도 없이 혼자서 여행을 해온지라,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는 이 시간이 무척 반가웠다. 거의 말하고 지내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편하게 말을 터놓고, 자연스럽게 어울려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아마 이곳에 간 첫날, 노비를 만난 덕분에 더 이 곳의 매력에 빠졌는지 모른다. 인도네시아 친구 노비는 여행을 하며 컨설팅 업무를 하는 디지털 노마드다. (여러 국가를 전전하다, 최근엔 한국에 있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갔다.) 함께 점심을 먹으며 내가 한달간 미쳐있던 가지 구이를 소개시켜 준 것도 노비였다. 노비와 함께 그 곳에 간 이후로 나는 매일같이 가서 가지를 먹었다. 혼자 먹다가 노비와 마주쳐서 노비의 친구들과 함께 먹은적도 있었다. 치앙마이에 머무는 동안 나는 정말 가지에 미쳐 있었다.
하지만 가지보다 좋은 것은 어딕티드 투 워크의 살림살이를 맡고 있는 호스트들이다. 언제나 맛있는 태국 채식 홈푸드를 만들어주는 "핌", 항상 부지런히 공간을 가꾸는 "라끼", 수줍지만 웃는 모습이 예쁜 "젠"은 방문할 때마다 모든 사람들을 친절하게 맞아준다. 이 곳의 여주인같은 느낌의 호스트 핌은 언제나 사글사글한 미소와 친화력으로 모든 이들에게 그간의 안부를 묻고 식사 때가 되면 밥그릇을 내민다. 라끼는 훤칠하고 까무잡잡한 남자 호스트인데, 언제나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이며 화단을 가꾼다.
이 곳의 메인 호스트는 핌과 라끼다. (아마도 라끼의 여자친구인) 젠은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하고, 수줍음이 많아 며칠간은 나도 웃으며 싸와디캅 인사를 하는게 전부였다. 언젠가 핌과 라끼가 없을 때, 젠은 내게 아메리카노를 내려주었는데 그것이 그녀의 첫 도전이었다. 걱정스레 나의 맛 후기를 기다리는 젠에게 빨리 맛있다는 리액션을 해주고 싶었던 나는 마음이 급한 나머지 사레에 걸려 켁켁 댔다. 젠이 자기 커피가 맛없어서 그런 줄 알까봐 나는 눈물을 흘리며 딜리셔스를 연발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졌다.
언제나 밝은 해살이 들어오는 열평 남짓한 이 공간에는 따뜻한 자연스러움이 있다. 치앙마이에는 워낙 신식의 편안한 카페와 코워킹 스페이스가 많다보니, 다들 님만해민의 골목 구석에 위치한 이곳 까지는 찾아오지 않아 한적한 편이다. 하지만 한번 온 사람들은 잊지않고 이곳을 다시 찾아온다. 치앙마이에서 홀로 생일은 맞은 날에도 나는 이곳에 왔다. 그래도 생일이니까, 외롭지 않게 마무리하고 싶어서. 호스트들이 부담을 느낄까봐 생일이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나는 핌이 해주는 따뜻한 밥을 한끼 먹고 책을 읽으며 생일을 마무리했다.
누군가 천국의 상태는 호기심이 충족되는 상태라고 했다. 치앙마이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이 많고, 그것을 충분하게 즐길 수 있는 평온하고 안온한 도시다. 그리고 어딕티드 투 워크는 그 시간을 가장 따듯하게 보낼 수 있는 장소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작업을 하며 나는 '좋은 공간'이란 어떤 곳인지 상상했다. 집처럼 편안하면서, 집과는 다르게 설렘과 긴장감을 주는 좋은 관계를 만날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좋은 공간이라고 느낀다.
여행은 이렇게 먼 타지에 '자기만의 방'을 하나씩 늘려가는 일인걸까.
비록 이곳에서 나는 일에 중독되지는 않았지만, 여행에 중독되는 이유는 조금 알것 같았다.
ps. 마지막날 주고 온 그림. 아마 이곳에 가면 저의 그림을 볼 수 있을 거에요.
https://goo.gl/maps/hZgCPjNvv2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