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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좋았던 딱 그만큼

여행 조각 모음

by 사과집

내게 좋았던 딱 그만큼


여행을 오기 전, 나의 모든 옷을 집으로 부쳤다. 그런데 오늘은 사진이 하나 왔다. 엄마가 에버랜드에서 내 옷을 입고 내 가방을 들고 찍은 사진이었다. 한국에서 내 가을옷이 잘 사용되고 있구나… 마음이 뿌듯해졌다.


내가 남기고온, 빌려주고 온, 맡기고온 물건들은 지금 잘 쓰여지고 있을까. 엄마에게 남기고 온 수많은 옷들, 예슬언니에게 주고 온 정장, 경지에게 주고온 그릇, 휘민이네 집에 있는 고무 나무, 나연쓰에게 맡긴 엘피 등… 잘안쓰여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어쨌든 내 손을 떠난 순간부터 내 것이 아니니까… 그래도 엄마가 보낸 에버랜드 사진처럼 어떻게 내 과거가 타인의 현재에 녹아든걸 보면 새삼스러운 기분이 든다. 나한테 좋았던 딱 그만큼이라도 남들에게도 좋았으면 좋겠다.



습관화된 의전모드


오늘 숙소 사장님이랑 게스트 한명과 같이 세 명이서 아침을 먹으러 갔다. 두 분이 먼저 컵과 얼음을 가지러 갔길래,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젓가락을 꺼내 올려놨다. 그걸 본 사장님 말씀이, 태국에서는 보통 젓가락을 먼저 꺼내지 않고, 음식이 나와야 꺼낸다고 했다. 위생 때문인건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 어쨌든 나의 습관화된 의전(?) 모드를 자각할 수 있었다. 진짜 필요한 행위여서가 아니라, 혼자 몸을 가만히 두기 민망해서 하는 것들, 엉덩이를 가만히 붙이고 있기 힘든 만성화된 신입사원 모드… 불필요한 긴장에서 벗어나자.


간이 카포 졸업


간이 카포를 졸업했다. 키를 바꿔서 노래를 부르고 싶은데 카포가 절실해서, 젓가락과 고무줄을 사용한 간이카포를 만들어 며칠간 사용해왔다. 그러다 오늘 야시장에서 우연히 악기점을 발견해서 우쿨렐레용 카포를 살 수 있었다. 치앙마이에서 사지 못해서 아쉬웠던 차에 딱 만난 카포가 그렇게 반가웠다.


역시 진짜 카포는 달랐다. 음정도 더 잘맞고 깔끔한 소리가 났다. 요즘 우쿨렐레를 자주 치긴 하지만 우쿨렐레 실력은 별로 늘지 않고 오히려 노래가 조금 느는것 같다. 계속 녹음하고 내 목소리를 들으니 별로인 점들이 잘 들린다. 나의 노래를 녹음하면 네 마디 이상 마음에 들기가 쉽지 않다. 인스타 스토리야 15초밖에 안되니까 마음에 드는 부분만 잘라서 올릴 수 있는데, 1분간 내가 부른 노래를 듣고 있으면 가관이다. 우쿨렐레의 박자, 음정 안맞는건 둘째치고, 느끼한 호흡법이나 바이브레이션, 고구마막힌 목소리 때문에 수없이 녹음을 반복해도 1절 이상 마음에 들기 쉽지 않다…


뭐어쩌겠나.. 연습해야지. 적어도 한 곡을 내 마음에 들게 완벽하게 연주할 수 있게 될 때, 그때 아무도 없는 길거리에서라도 꼭 한번쯤 쳐보고 싶다. 내년에 유럽에 갔을 때 한번 쯤 해보고 싶다는 로망을 품어본다… 왠지.. 그때는 내가 우쿨렐레랑 노래도 완벽하게 하고 영어도 완벽하게 하고 살도 빠져있을 것 같고 그러네요… 물론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을 안다…





우주를 떠도는 메시지

핸드폰을 정지하고 여행을 왔다. 가끔은 내 정지된 폰으로 어떤 문자들이 왔을지 궁금하다. 내가 꼭 확인해야 하는 문자는 없을지. 누군가 내게 카톡으로 하기 어려운 말을 문자로 보내지는 않았을지. 평생 이진법의 데이터 세상에 가둬진 메시지가 있지는 않을지. 불현듯 마종기의 시 '전화'가 떠오른다.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물론 나는 대체로 화자의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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