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을 위한 조건
글을 쓸 때 얼만큼 솔직할 수 있을까. 나를 얼만큼 보여줄 수 있을까. 나의 약점을 얼만큼 공개할 수 있을까는 모두가 항상 고민하는 문제일텐데, 핀치에서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후기를 보면서 예상치 못하게 공감되는 문장을 찾았다.
자발적으로 약점을 노출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1. 약점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자신의 사회적 위치
2. 약점을 문제삼지 않을 사회.
인생의 서러움과 질곡을 드러내면 낼 수록 인정받고 보상을 받기 쉬운 드래그 퀸의 생존경쟁에서는 연약함이 유리함의 정점과도 같다.
슈퍼스타K 같은 리얼리티에 질곡의 가정사를 지닌 사람이 화제가 되는 것을 생각해봐도 그렇다. 리얼리티 예능이라는 무대 위에서는 약점은 불이익이 아니라 발언권을 얻을 수 있는 캐스팅보트가 되어준다.
물론 나는 리얼리티에 출연 중은 아니지만… 세상 모든 사람과 동일한 거리로 떨어져 있는 ‘여행자’라는 신분은 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낼 수 있는, 그러니까 어느 정도 <약점을 문제삼지 않을 위치>로 나를 데려가준다. 이런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 만큼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의 ‘시간차’. 나의 솔직함이 영향을 미칠 ‘누군가’에게 와닿는데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 늦추는 것. (익명의 대상에게 얘기하는 건 차라리 쉽다. 내가 신경쓰는 건 내 글에 쓰여진 ‘그’ 사람이다.) 결국 나의 약점을 털어놓기 위해서는, 그걸 듣는 사람과의 거리감과 시간차가 필요하다. 우리의 좌표가 서로 다른 축에 위치한다는 것을 알때야 난 너에게 나를 보여줄 수 있다.
얼마전 수진쓰와 얘기를 하며, “일간 이슬아”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인 솔직함에는 ‘구독자에게만 먼저 발송하는 시스템’도 한몫 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했다. 어쨌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의 구독자에게만 먼저 글을 보낸다는 거. 내가 지금 말하고 싶어 근질근질한 애정/증오의 스토리가 대중에게 공개되기까지 뜸을 들일 수 있다는거. 적정 시간이 지나면 누가 읽어도 상관 없어질 때가 온다. 나도 내 서사의 객관적인 구독자가 되는 순간이.
그리고 몇년이 지나도 절대로 객관적일 수 없는 이야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