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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씨 Jun 07. 2018

그들이 몰락을 피하는 방법

그게 무슨 의미가 없을지라도

#1


“아이고… 우리 작가님도 좀 좋은 데로 이사하셔야 할 텐데. 여기 너무 좁지 않아요? 일하고 밥 먹고 자는 데가 이거 한 군데잖아....”


자기 집 안방 들어오듯 자연스럽게 원룸 현관문을 밀고 들어온 성차장은 구석에 밀쳐져 있던 방석 하나를 발로 당기고 그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하… 말만 작가지 뭐 특별한 수입도 없고 해서... 제가 구할 수 있는 게 뭐 이런데 밖에 없네요. “


성차장은 옆구리에 끼고 들어온 재킷 안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아니… 이 건물 금연인데…”


당황한 지원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성차장은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지원이 어제 마시고 미쳐 치우지 않았던 빈 맥주캔에 재를 털었다.


“거 보내드린 메일은 보셨죠? 첨부 파일이랑.”


“네 보긴 했는데… 아직 좀 생각 중이라…”


성차장은 신경질적으로 꽁초를 캔에 비벼 끈 다음 지원의 얼굴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네? 뭘 생각해요? 이런 좋은 기회가 어딨다고? 거 컨셉도 다 나와있고 설정도 다 설명해 놨으니 거 작가님 글빨로 살만 붙이면 된다구요. 대놓고 작가상을 드린다는데 마다하는 사람도 다 있네 참나… 작가님!  뭐가 문제예요?”


“그래도 이건… 제가 원래 쓰려고 했던 내용과 너무 틀려서 말이죠. 좀 너무… 작위적이라고 해야 하나… 미술 전시회장에서 사람을 도살하는 스너프 퍼포먼스도 너무 극단적이라 뭘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아니 뭐가 작위적이에요? 미술과 자본이 에셔의 그림처럼 서로 위치를 바꿔가며 영구기관처럼 가동되는 그 기계적 흐름에! 그 사이에서 효용이 다 한 자본의 대리자가 또 다른 미술 산업의 희생양? 뭐냐 그… 오브제가 되어 미술 퍼포먼스를 완성한다! 이거 진짜 그럴듯하지 않아요? 씨발 우리 기획 회의에서 이 아이디어 나왔을 때 거 분위기를 봤음 그런 얘기 못할 텐데?”


“그래도… 로맹 가리 단편 중에도 사람 죽여서 예술 작품으로 포장하는 글이 있는데… 제목이 아마 ‘몰락’일 거예요… 좀 비슷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로맹 가리는 자연스럽게 내용이라도 풀었지만...”


“하… 우리 작가님 졸라 다독가시네. 책 많이 읽으셔... 그 시간에 베스트셀러나 좀 쓰시지…”


성차장은 히죽 거리며 새로운 담배를 꺼내 물고는 불을 붙였다. 아 젠장 맞을 담배 냄새. 지원은 진심으로 이 남자의 면상을 후려치고 싶었다.


“그런데 뭐 비슷한 스토리 비슷한 플롯이 뭐 한 둘인가? 알만큼 아시는 분이 대체 왜 이러는지 몰라요.”


성차장은 들고 왔던 서류 가방에서 클립으로 철한  A4 서류 뭉치를 지원에게 내밀었다.


“게다가 작가님이 글쓰기 전에 벌써 평론이 나왔다고요. 이 평론이 다음 우리 출판사 비평문학상에서 금상 탈 예정이라는 거 메일에서 읽었죠?”


지원은 눈 앞의 A4 서류 표지에 은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젊은 남자의 프로필 사진을 멀거니 쳐다봤다. 아마도 며칠 전에 메일에 첨부되어 왔던 그 평론 원고의 작가일 것이다. 그 내용을 독자에게 이해시키는 게 목적인지 읽는 사람을 정신 분열증에 빠지게 하는 것이 목적인지 알기 힘들었던 보그 병신체로 쓰인 글에 비교하면 남자의 외모는 꽤나 단정했다.


“음… 소설은 나오지도 않았는데 무슨 비평문이 먼저 나오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요. 무엇보다 이 분이 본문 내용이라고 비평에 인용한 문장들이 죄다 비문들이라…”


“작가님 올해 몇 살이죠?”


“네? 서른여덟...”


“생일 1월이잖아요? 서른아홉 아니에요? 이제 뭐 젊다고 하기도 애매하잖아요? 방송국 패널 나가기도 어렵다고요. 아 여기 뭐 마실 것 없어요? 열 냈더니 목이 마르네 ”


지원은 반사적으로 냉장고로 몸을 돌려 문을 열었다. 반쯤 남아 있는 케첩과 먹다 남아서 넣어 놓고 한 달 넘게 지난 양념 치킨과 맥주 한 캔이 전부였다. 저 무례한 자에게 뭘 먹여야 하나를 고민하는 와중에 지원의 뒤에서 나타난 성차장은 거침없이 겨우 하나 남은 맥주캔을 집어 들어 일말의 고민 없이 들이켰다.


“어… 차장님 차 가져오신 거 아니에요?”


“아 뭐 맥주가 술입니까? 음료수지… 그건 그렇고 작가님 거 문학상 탄게 2007년이에요 8년이에요? 8년이죠?”


“네… “


“그 문학상 수상작 몇 부나 나갔는지 기억해요?”


“...”


성차장은 빈 맥주캔을 탁자 올려놓고 가방과 옷가지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입니다. 저희 기획안대로 글 써서 송고하세요. 이게 우리만 좋자고 하는 일 아니잖아요? 비평가들 말 만들기 좋은 작품 하나 써서 상 받고 강연 나가고 패널 나가고 돈 벌고… 우리도 돈 벌고 잘생긴 새 비평가님도 상 받아서 돈 벌고.”


“그다음에 작가님 쓰고 싶은 글 쓰세요. 뭐 팔릴 만한 글이면 출판 해 드린다니깐요. 뭐 그게 10년 후가 될지 어쩔지 모르겠습니다만… 나 갑니다.”


현관문을 닫으려던 성차장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지원을 돌아봤다.


“아 그리고 작가님 아무리 나이 먹었어도 살도 좀 빼고 피부 관리도 좀 받고 해요. 그래 가지고 수상작품집 프로필 사진 못 찍어요. 뽀샵질도 한계가 있다구요.”


#2


성차장이 나간 후에도 매캐한 담배 연기는 작은 움집 같은 원룸 안에서 빠져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지원은 열린 창가에서 담배 연기가 흩어지길 기다리며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원을 정신을 차리게 한 건 갑작스레 울려대는 인터폰 벨소리였다. 뭐지… 중국집 배달이 잘못 왔나? 스크린을 가득 채운 건 피곤에 눈이 벌겋게 절여진 경비실 남자의 얼굴이었다.


“저기 선생님. 댁내에서 담배 피우셨어요?”


현관문을 열고 나서니 예의 그 경비와 주민으로 보이는 나이 많은 여자와 젊은 여자가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서 있었다. 젊은 여자는 나이 많은 여자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소곤댔다.


“... 뭐야… 여자였어? 그 뭐 베란다에서 봤다던 그 영감 아니네?”


소리 다 들리거든요. 지원은 불쾌감이 뒷골까지 치솟았지만 눈 앞에 사람들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성차장. 


“댁내에서 담배 피우시면 담배연기가 환기구 타고 윗 세대로 다 올라와요. 1층 흡연구역에서 담배 피시라고 몇 번이나 방송으로 말씀드렸잖아요. 아실만한 분이 왜 이럴까 진짜…”


지원은 그저 이 상황이 빨리 연기처럼 흩어지길 애절하게 기도하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지만 이 환장할 짝패들은 담배냄새처럼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젊은 여자는 지원의 외양과 지원의 원룸 안을 부지런하게 관찰하며 나이 많은 여자에게 연신 다 들리는 귓속말을 반복했다.


“백수네 백수…. 봐요 집에서 혼자 담배 피우고 혼자 술 마시고… 혼자 사는 노처녀에 백수잖어. 그니까 개념이 없지…”


순간 간신히 잡고 있던 가느다란 무언가가 지원의 의식 속에서 툭하고 끊어졌다. 누아르 영화를 8배속으로 빠르게 돌린 것 같은 시공을 초월한 감각을 통과하고 나니 지원은 그 젊은 여자의 머리채를 양손으로 틀어쥐고 온 오피스텔 건물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야이 씨발 니가 날 알아? 니가 내가 백순지 노처년지 뭔지 알아? 이런 구질 구질한 원룸 산다고 이 놈이고 저 놈이고 다 무시하니까 너도 날 호군 줄 알아? 나 작가라고! 문학상도 탔던 작가라고! 니네 일자리도 못 구해서 빌빌댈 이십 대에 상탄 작가라고! 꼴랑 겨우 10년 대박 못 터뜨렸다고 어디 병신 같은 게 와서 말 같지도 않은 글을 쓰라 마라야!!! 이 새끼들아 나 글 쓸 수 있어! 내 글 쓸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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