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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클베리 Jul 10. 2023

반 년이 흘러갔다

#인생 #청춘 #도전 #추억 #반년 #개발자 수필

 이곳에 글을 쓴 지도..


 반 년이란 시간은 늘 하찮아 보였다. 일 년이 꽉찬 완전수 같은 느낌이라면, 반 년은 마치 완전수를 구성하는 약수들 중 제일 큰 녀석같은 느낌이랄까. 


 때때로 나의 시간들은 안타깝게 흘러간다. 이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제3자가 되어 바라보는 것이기에, 난 부단히도 내 삶의 수많은 반 년들을 하찮게 넘겨왔다. 그러다보면, 게중 어떤 반 년은 마치 즐거웠던 추억이라도 되는 양 남들에게 떠들어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다

 나에겐 이 말이 참 컸다. 괴롭거나 힘든 반 년을 보내고 있을 때면 늘 이 말을 떠올리며 버텨냈으니까.

 

 이런 걸 '인생격언'이라고 하던가.


 세상엔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수많은 격언들이 있고, 한동안은 나도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란 시에서 인용한 듯한 어떤 문구를 마치 인생격언으로 삼고 사는 척 스스로를 속인적도 있었다. 마치 '도전하는 삶'을 즐기고 있다는 듯. 60세가 되어서도 그렇게 살 사람인 것처럼.


 하지만 오십도 안되어 난 청춘예찬론자이길 포기했다. 도전하는 삶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이젠 혼자일 때보다 열 배는, 도전해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걸 안다. 도전 자체도 너무나 피곤한 일인데, 시도때도 없이 떠오르는 '포기'라는 단어가 마음과 정신을 갉아먹는다. 무엇보다도, 누군가에겐 인생의 방향이 바뀔만한 그 몇 번의 도전을 하면서, 난 몇 번의 성공과 실패 사이엔 그리 큰 차이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얼마나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왔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난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다.'란 말을 떠올리며 인생을 버텨왔다.



 굳이 '넌 어떤 사람이냐' 자문해 보자면, 난 추억을 만들고 싶어 사는 사람이다. 

 '훌륭한 미래'와 '추억하고픈 과거', 굳이 둘 중에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난 분명 후자를 고를 것이다. 그렇게 게으른 인간이다. 


 나는 심지어 세상을 떠나기 전 나의 모습이 어떠할 것인지도 말할 수 있다.

 지금도 쌓여가는 외장 하드디스크의 사진 디렉토리들을 하나 하나 열어, 수십만장이 넘는(아마 그때가 되면 백만장은 족히 넘어 있을) 그 많은 과거들을 들여다보며 내가 죽는 건지 꿈을 꾸는 건지 모른채 히죽거리다 갈게 뻔하다. 

 그게 내가 삶을 사랑하는 방식이니까.


 실은 글도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기억과 생각과 감정들을 박제하듯 글에 담아 이곳저곳 내 삶의 흔적들을 남겨두고 싶었다. 보다 간편하게는 사진을 찍는 방법도 있겠지만 카메라론 과거를 담을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사진보다 글을 선호한다는 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글로도 표현못할 것들, 가뜩이나 안좋은 머리가 온전히 담고 있지 못할 것들을 담아 두기엔 사진만큼 훌륭한 것도 없다.



 엊그제 정체불명의 글을 쓰다가, 문득 수 년전 찍었던 사진들이 떠올랐다. 컴퓨터에 오래된 외장하드를 꼽고 '사진' 디렉토리를 열어 연도별, 월별로 정리해 둔 사진들을 한장 한장 넘겼다.


 웃다가, 눈물을 글썽이다가, 한참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사진을 보다가 깨달았다. 글로 쓰면 한 페이지는 나올거라 생각했던 사진들이 어느덧 작은 울림만을 간직한 채, 화석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그리고 이번 반 년도 한참 후엔 그리될 뻔 했다는 걸.


 어찌보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고 여전히 하찮은 반 년이다. 그럼에도 난 청춘도 아닌 주제에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예전과 차이가 있다면, 이번엔 실패하면 '안타깝네'로 끝나지만은 않을 도전이라는 것. 너무나 피곤해 하루에도 몇번씩은 그만둘까를 고민하는 안타까운 시간들이지만..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니까.


 결과보다는 그 쌓인 시간들에 얼기설기 매달려 있을 추억들이 내겐 훨씬 더 값질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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