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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클베리 Jul 10. 2023

아빠는 화가야!

#화가라는 말 #만 나이 #사회적 나이 #마트료시카 #다시오지않을순간

 지난 달 말인 6월 28일부터, 우리나라도 '세는 나이(날짜와 상관없이 태어난 해를 1살로 시작해 매해 새해 첫날이 되면 한 살씩 더해 나이를 세는 방법)'가 아닌 '만 나이'를 사회적 나이로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보편적으로 기억되는 상징적인 나이라 할 수 있는 초등학교 1학년 나이가 여덟 살이 아닌 일곱 살이 되는 것이다. 


 오늘 아침, 그렇게 두 딸 아이의 나이를 만 나이로 바꿔보던 중이었다. 시간을 세기에도 뭐한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머리속으로 두 아이의 어릴 적 모습들이 휙휙 스쳐갔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던 장면부터 배꼽 빠지던 장면 그리고 마음 아팠던 장면들까지, 아빠로서 두고두고 잘했다 좋았다 추억하며 살 몇몇 장면들이 떠올라 행복했다. 


 이 글은 그 중에서도 내년이면 벌써 초등학교 1학년이 될 둘째가 만들어 준 한 장면에 관한 이야기다. 모자란 아빠로서 웃음이 나면서도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하기도 한 복잡한 심경이랄까.


 아무튼 이 이야기는 둘째가 만 나이로 세 살이 된지 얼마 안 된 어느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집 냉장고는 흔히 양문형이라고 부르는 모양의 냉장고다. 그리고 오른쪽 문엔 릴리즈 버튼이 있어 그걸 누르면 음료칸만 '딸칵' 하고 튕기듯 열리는 십년 전 모델이다.

 그게 재밌었는지, 둘째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게로 와 안아달라고 조르곤 했다. 사실 손 닿는 곳에 누를 수 있는 수 많은 버튼들이 있었음에도 왜 그렇게 냉장고 버튼을 누르려 한 건지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른다. 

 지금도 아빠에게 안기는 걸 좋아하고 자주 안아주긴 하지만, 냉장고 버튼은 이제 의식하지도 않는 걸 보면 그저 재미없어졌구나 할 뿐이다. 아마도 당시 둘째는 자신의 작은 힘으로 커다란 냉장고 문을 열었다는 성취감을 맛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다.


 아무튼 난 그 당시 둘째를 안고 있을 때의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딱 그만큼 조그맣고 여리여리한 몸뚱아리를 품에 안았을 때의 그 뭐랄까, 이보다 딱 맞을 순 없겠는데 싶게 내 몸에 촥 감기는 그런 느낌? 역시 글로는 그 느낌의 십분의 일도 표현할 수가 없다. 

 '더 많이, 하루종일 안고 있을 걸..' 딸 아이를 키워본 아빠, 아니 부모라면 이 아쉬움이 뭔지 잘 알거라 생각한다.

 물론 지금도 아이가 안겨오면 행복한 건 마찬가지다. 아침마다 발로 걷어차이면서도 굳이 엄마 대신 침대로 가 아일 깨우고 싶어하는 아빠의 마음도 그대로다. 하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몸이 조그마하던 그때가, 안았을 때의 느낌 역시 가장 좋았지 싶어 아쉬울 뿐이다. 그리고 그 아쉬움은 이제 '아빠는 화가야!'라며 토라져 버렸던 세살배기 둘째의 모습과 함께 미련이 되어가고 있다. 

 그날도 어김없이 냉장고 버튼을 누르고 열린 문을 닫기를 반복하던 둘째는 내가 '이제 그만.' 하면서 바닥에 내려놓자 '또!', '또!' 해가며 내 다리에 매달렸다. 그리고 난 '안돼, 이제 그만. 아빠가 그만하면 그만하는거야.' 하면서 아이를 떼어냈다. 

 안타깝게도 우리 아이들은 자신들의 삶 곳곳에서 그런 아빠의 모습을 자주 보았을 게 분명하다. 똑같이 신나게 노는 건데 왜 그만하라고 하는 걸까에 대한 충분한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어느 순간 아빠가 '이제 그만.'하면 멈추길 강요받았을 거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더 이상 계속하는게 좋지 않다는 것도 순전히 아빠의 생각과 기준이었을 뿐, 그 시점에 난 아이들에게 있어 자신들의 즐거운 놀이를 못하게 막는 존재이지 않았을까 싶다. 


아빠는 화가야!

 처음 둘째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 난 그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어? 아빤 화가 아니고 개발잔데?" 이러면서.


 드로잉이나 수채화 그리기 같은 걸 취미삼아 가끔 하던 날 보더니 아빠를 화가라 생각하나보다 그랬다. 

한편으론 '세 살밖에 안된 녀석이 벌써 '화가'를 아네.' 하며 기특해 했더랬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빠는 화가라며 소리치는 둘째의 표정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거다.

그런 내 대답에 '아냐! 아빠는 화가야!'라며 재차 소리치고는 방문을 닫아버린 둘째와 날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아내가 그랬다.


 "의그, 화가가 그 화가가 아니예요 이 아빠야. 화내는 사람이라는 뜻이지."


 '아......'

 

 그랬다. 그리고 그 후로도 몇 번은 더 들었던 거 같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거나 아빠가 맘에 안들 때. 



 엊그제가 생일이었던 둘째는 만 나이로 여섯 살이 되었다. 

 그동안 일곱 살로 생각해 왔는데.. 제법 또박또박 말하고 행동하길래 다섯 살로 보아주진 못했다. 생각해보니 그 전에도 더 더 전에도 난 그런 아빠였구나 싶다.


 이제 둘째는 냉장고 버튼을 누르는 대신 야채칸을 뒤져 복숭아며 자두같은 과일도 혼자 척척 꺼내 씻어 먹는다. 

 아빠가 '이제 그만.' 해도 '아빠는 화가야!'라고 하지 않고 '내 맘이야! 아빠 싫어!' 라고 분명하게 의사를 표현한다.

 아직은 토라졌다가도 아빠가 팔을 벌리면 냉큼 달려와 안기긴 하지만.. 이것도 얼마 안 남았다는 걸 나나 아내나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둘째의 기억 속엔, 이미 삼년 전 냉장고 버튼 누르겠다고 아빠에게 안아달라 보채던 자신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화가였던 나는 그때 그 장면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내 어깨와 양 팔에 남아있는 그 느낌도.

 

 그때 한 번이라도 더 안아줄 걸.. 버튼 그게 뭐라고 몇 번이고 눌러보게 해줄 걸...

 엊그제 생일 아침 둘째는 어디서 구했는지 마트료시카 사진을 보여주며 생일선물로 러시아인형을 갖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난 커다란 마트료시카를 양팔로 안아들고 귀가했다. 


 "아빠 이거 또 빼줘.", "아빠 이거 다시 끼워줘." 엄마랑 외출해 화상통화를 하는 동안에도 10단이나 되는 마트료시카를 다 빼라고 했다가는 다시 다 끼우라며 요구하는 통에 지난 사흘동안 몇 번이나 마트료시카를 뺐다 끼웠다 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화가였던 난 이것이 의미없는 동작의 반복일지라도 감사하다. 어쩌면 둘째가 다시 한 번 아빠에게 화가가 아닐 기회를 주고 있는 건지 모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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