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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인 Oct 24. 2023

회사 대표님에게 손편지를 썼다

지난주 금요일, 회사 업무를 정리하고, 드디어 퇴사를 했다. 솔직히 잘 실감이 나지는 않았는데 동료들에게 한 명 한 명 퇴사한다고 말을 건네니 그제서야 회사를 떠난다는 사실이 피부로 와닿았다. 처음엔 유일한 나의 동료인 H님과 친했던 동료 몇 분에게만 인사를 나누려고 했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 반, 감사했던 마음 반에 결론적으로 24명의 동료분들에게 따로 인사를 드리게 되었다.


그리고, 회사 대표님에게도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렸다. 아마 대기업에 근무했다면 회사의 대표님을 만나거나 대화하는 자리가 쉽게 마련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스타트업의 특성 상 마음 먹으면 1on1을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 퇴사를 앞두고도 대표님과 실제로 미팅 시간을 가졌을 때, 회사에 근무하는 것에 대한 고민과 고충을 드러내니 시간이 귀하다는 것을 나에게 일러주셨다.


'세상에 회사는 많고, 서비스도 많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서 이게 아니라면 다른 곳에서 일을 해도 좋다'

'젊은 나이에, 뭘 해도 될 수 있는 그 때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시에 이야기를 들었을 땐, 퇴사를 고민하는 나를 꾸짖는 말이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돌아보니 대표님은 나의 눈부신 젊은 날을 믿고 그저 응원해준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퇴사를 준비하면서 감사했던 몇 몇 분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회사 대표님도 포함이 되어있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나의 지난 결정들에 대해 끝맺음을 잘 하고 싶어서'


회사에 입사해서 다사다난했던 시간들의 연속이었지만, 그 이전에 회사에 지원하고 면접을 보면서 감사하고 벅차올랐던 순간이 반드시 있었다. 스타트업 마케터가 되고자 치열하게 준비했고, 부족했던 나를 믿어주고 회사 내에서 성장하고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많은 업무 기회를 준 회사이기에 감사 표현은 반드시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종이를 펼쳐서 대표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하나씩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늘 열정적으로 또 책임감 있게 일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다가오는 30대 그리고 40대의 제가 어떤 모습일지는 감히 예측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나의 일을 하기 위해서 막중한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많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

'훗날 조금 더 크고 높은 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문득 생각해보니, 이 회사 덕에 마케터로서의 경력을 새롭게 쌓아올릴 수 있었고, 여러 회사에 면접을 보고 또 환승이직까지 성공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비록 회사를 다니면서 기대했던 바와 달라 실망하고, 또 팀장님의 무자비한 폭언으로 상처를 받은 적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나를 성장시켜준 회사임은 분명하기에 지난 날의 기억들을 모두 추억으로 담아두려 한다.


예상보다 업무 인수인계가 늦어져 5시 퇴근이었지만 결국 2시간을 넘긴 7시10분쯤 되어서야 회사를 나올 수 있었고, 대표님에게 인사와 함께 내가 쓴 편지를 건넸다.


'대표님, 감사했습니다. 얼굴을 보고 이야기 드리고 싶은데 그 마음을 편지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대표님은 일어서서 나에게 꾸벅 인사를 건네주었다. 차갑고 무섭게만 느껴졌던 분인데 마지막 가는 길을 따뜻하게 배웅해주시는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따뜻해졌다.


대표님은 좋은 마케팅 강의나 아티클이 있으면 늘 슬랙을 통해서 공유해주시곤 했다. 그 때마다 몇 년 뒤에 대표님이 공유해주시는 아티클이 내가 쓴 것이고, 저 마케팅 강사가 나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있다. 아직 부족한 것은 많지만 나아가고자 하는 열정만큼은 가득하기에. 더 높은 곳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만나는 그 날을 기대해본다.



사무실 내 자리
퇴사날 얻어먹은 밥과 커피

⬇️직장인을 위한 서울 현지인 가이드⬇️

https://www.instagram.com/hyunji.i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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