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영화에는 부동산이 있다
한 국가의 국토 전체를 그린 지도를 '전도(全圖)'라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네이버나 카카오의 지도 서비스를 이용하듯 조선시대에도 '팔도도'(이회), '동국지도'(정척 양성지) 같은 지도가 있었지만, 지도를 만드는 사람과 활용하는 목적이 지금과는 달랐습니다.
지도는 기본적으로 이동을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인데, 조선시대 같은 농업 중심 사회에서는 인구의 이동이 그리 많지 않았을테니 평범한 백성들은 굳이 지도가 필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마치 우리가 여행도 다니지 않고 친구도 만나지 않고 집과 회사만 왔다갔다 한다면 지도 없이도 일상생활이 가능한 것처럼 말이죠. 본격적으로 인구가 이동하고 지도가 필요해 진 건 상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형성된 조선 후기라고 봐야겠죠.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가 활동했던 시기가 조선 후기인 순조 시대부터 고종 시대까지인 점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 시절 지도가 필요했던 이들은 통치자들이었습니다. 주로 행정이나 군사 목적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행정과 군사를 통합해서 운영했고 전국 8도 아래에 부, 목, 군, 현을 두었는데, 이 지도가 세종 시대에 완성된 '신찬팔도지리지'입니다. 세종 시대 김종서 장군을 앞세워 북쪽으로 4군 6진을 개척할 때도 지도가 중요한 역할을 했고요.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조선 전기의 지도가 바로 '동국지도'입니다. 즉 지도는 그 시작부터 행정비책이자 군사비밀이었던 것이죠. 실제로 당시에는 일반 백성들이 지도를 소유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다고 합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1861년(철종 22년)에 목판본 22첩으로 완성됩니다. 대동여지도는 이전의 조선 지도처럼 특수한 목적을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며 지도 자체의 정확성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통상 지도에 함께 표시되던 설명을 없애는 대신 정교한 기호를 사용했고, 휴대의 편의성을 위해 목판본으로 제작한 것이죠. 22첩으로 된 대동여지도 외에도 한 장으로 압축된 '대동여지전도'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살았던 19세기는 세계 지도까지 어느 정도 완성된 시대였습니다. 15세기 신대륙의 발견과 세계일주로 시작된 '대항해시대'가 지도를 만드는 시대였다면, 17세기 '식민지시대'는 지도를 활용하는 시대였다고 할까요. 외국의 배가 동방의 작은 나라까지 닿을 정도이니 당시 지도의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대동여지도는 조선 개항을 둘러싼 권력 다툼의 수단이 됩니다. 영화가 어느 정도의 상상과 허구를 반영했는지는 모르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지도가 권력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용하는 네이버나 카카오의 지도 서비스 역시 단순히 자동차나 대중교통에 대한 길찾기 정보에 그치지 않고, 음식점, 카페, 호텔, 팝업스토어 등에 대한 정보가 함께 표시됩니다. 지도가 하나의 경제 생태계를 담고 있는 것이죠.
기업에서도 영업활동에 지도 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은행, 편의점을 비롯해 F&B 프랜차이즈 기업들은 상권을 분석하고 점포를 출점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는 데 지도를 활용하고, 신문이나 건강음료 같은 구독형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들도 지도를 활용해 지역별 판매량과 점유율을 집계합니다. 2015년에는 전국의 건축물대장 정보가 민간에 공개되면서 호갱노노, 직방처럼 프롭테크(Proptech, Property+Technology)라고 불리는 지도 기반의 부동산 서비스들이 대거 출시되기도 했습니다.
과거 소수 권력자들의 통치수단이었던 지도는 도시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인구 이동과 함께 다수의 이동수단으로 민주화되었고, 이제는 모두의 경제활동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전국에서 COVID-19 전염병이 유행할 때는 공적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는 약국을 알려주는 '마스크 지도'가 만들어졌고, 서울 곳곳에서 잔혹한 묻지마 범죄가 일어날 때는 지역별 범죄 발생수를 알려주는 '생활안전지도'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가히 지도의 한계는 사용하는 사람의 상상력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여러분들은 지도를 이용하고 계신가요, 아니면 활용하고 계신가요? 지도에는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생존과 욕망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동산만 보더라도 <돈의 지도>, <소액토지투자 지도>, <재건축 재개발 지도>, <상가투자 지도> 같은 책들이 참 많으니까요.
<고산자 대동여지도>
강우석 감독, 2016
조선의 지도를 만들기 위해 전국 팔도를 누비는 고산자(古山子) 김정호(차승원). 나라가 독점한 지도를 백성들과 나누고자 하는 일념으로 대동여지도의 완성과 목판 제작에 혼신을 다한다.
하지만 안동 김씨 문중과 대립하던 흥선대원군(유준상)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손에 넣어 권력을 장악하려고 하는데…
"지도는 무릇 나라의 것. 함부로 백성들에게 배포해선 아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