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노마드가 부러운가요 | 노매드랜드

모든 영화에는 부동산이 있다

by 오성범

노매드(Nomad)는 유목민을 말합니다. 유목민 하면 몽골 같은 중앙아시아의 사막과 초원이 먼저 떠오르는데요, 유목 생활은 기후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사막처럼 비가 적게 내리는 건조한 기후에서는 쌀, 보리, 밀과 같은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에 한곳에 정착할 이유가 없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에서 식량을 확보하려면 양, 염소 같은 가축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이들 초식동물을 키우려면 풀이 무성한 초원이 필요합니다. 초식동물들이 무서운 속도로 풀을 먹어치우고 나면 다른 초원을 찾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유목을 하게 되었을 겁니다. 즉 노매드는 작물재배와 가축사육의 경제성을 비교한 필연적 선택이자 합리적 결과가 됩니다.


유목과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작은 나라 한국에서 노매드가 회자되기 시작한 건 COVID-19 전염병이 유행하며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던 2020년 경입니다. 주로 '디지털 노마드'라고 했는데, 회사 대신 집이나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일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누가 지어냈는지 모르겠지만 참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거대한 오피스를 비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나란히 정렬되어 있는 책상에 앉아 업무를 하고 점심을 먹고 저녁이면 회식을 하는 모습은 옆집의 숫가락 갯수까지 안다는 농경사회의 촌락과 비슷하니까요.


팬데믹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도시의 일상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했습니다. 너무 모여 살지 않아도 도시의 기능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개인의 일상이 오히려 나아지고 편해질 수 있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2023년 팬데믹이 종식되자 한국은 빠르게 원래의 방식으로 돌아갔지만, 사람들의 경험과 생각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미국에서는 팬데믹 이후에도 여전히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직장인과 기업이 많다는 소식도 들렸고요.


물론 한국은 사막과 초원이 있는 건조 기후가 아니고 여름이면 비가 참 많이 내리는 온대 기후입니다. 가축을 사육하기 위해 유목을 하는 것보다 정착하여 농사를 짓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산업화와 도시화를 이루었고요. 즉 노매드를 할 이유도 없고 노매드를 해본 적도 없는 나라라고 할 수 있죠. 정착해 살고(농업사회) 모여 사는(산업사회) 것이 당연한 일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유목하는 일상도 필연적 선택이거나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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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도시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잘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도시는 삶의 여러 방식 중 하나이지만, 그 자체로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도 도시가 그 기능을 잃어버리는 사례는 결코 적지 않습니다. 노매드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풀과 초원을 따라 떠도는 것처럼, 도시인들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자리와 산업을 따라 떠돕니다. 산업이 흔들리고 기업이 폐업하고 일자리를 잃는다면 도시인도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나야하겠죠.


영화의 시작은 미국 네바다주의 작은 공업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석고보드를 만드는 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데, 2008년 경제위기로 건축경기가 악화되자 석고보드 수요가 급감했고 급기야 공장을 폐업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나면서 도시는 한순간에 유령도시가 되고요. 한국에서도 이런 사례는 여럿 찾아볼 수 있습니다. 광산이 폐광된 강원도 태백과 삼척이 그랬고, 자동차 공장이 폐업한 전라북도 군산이 그랬습니다. 명태 어획과 대북 관광이 중단된 강원도 고성이 그랬고, 조선 경기가 악화될 때 경상남도 거제가 그렇습니다.


한국에서도 노매드가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라이프(Life)는 사실 워크 앤 라이프(Work & Life)입니다. 라이프가 목적이라면, 워크는 라이프의 필수조건이죠. 노매드에도 라이프 스타일 이전에, 우선 워크 스타일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노매드랜드> | Nomadland

클로이 자오 감독, 2021


경제적 붕괴로 도시 전체가 무너진 후 홀로 남겨진 펀(프란시스 맥도맨드)은 도시를 떠나 작은 밴을 타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 위의 세상으로 떠난다.

길 위에서 펀은 각자의 사연을 가진 노매드들을 만나게 되고, 광활한 자연과 길 위에서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그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다시 살아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는데…


“The road goes on forever. Sometimes we just have to keep mo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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