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영화에는 부동산이 있다
여러분들이 살고계신 곳은 몇 층 건물인가요? 정부에서 발표하는 건축물통계를 보면, 서울에는 2~4층 높이의 건물이 가장 많습니다(약 65%). 물론 서울을 비롯해 대도시가 아닌 지역을 포함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데, 전국 기준으로는 단층 건물이 가장 많고 전체 건물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약 64%나 됩니다. 대도시의 빌딩숲에서 일상을 보내는 분들이라면 쉽게 예상하지 못한 결과일 겁니다.
시도별 통계를 보면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단층 건물의 비중이 높아집니다. 경기도의 단층 건물 비중은 약 56%이지만 경기도의 남쪽과 동쪽으로 충청북도와 강원도는 약 76~77% 수준이고, 그 다음으로 충청남도, 전라북도, 경상북도는 공교롭게도 약 83%로 같습니다. 단층 건물이 가장 많은 곳은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전라남도로 약 88%였습니다. 바로 옆의 경상남도는 상대적으로 도시 비중이 높아서 그런지 충청북도와 비슷한 약 76%로 나타났습니다.
건물을 높게 지으려면 건물 구조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20층 이상의 높은 건물을 지으려면 철근과 콘크리트를 배합한 철근콘크리트구조가 필요합니다. 철근콘크리트구조는 고층의 하중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지만, 각 층마다 철근을 배열한 후 거푸집을 만들어 콘크리트를 붓고 콘크리트가 굳으면 그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방식이라 초고층에는 잘 활용되지 않습니다. 40층 이상의 초고층 건물에는 철골구조가 활용되거나 두 가지 방식을 결합한 철골철근콘크리트구조가 활용됩니다.
한국에서 철근콘크리트구조의 건물은 100년 전인 일제강점기 때도 지어지긴 했지만, 널리 활용되는 일반적인 건축구조는 아니었습니다. 아파트 같이 고층 건물 중심으로 철근콘크리트구조가 활용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 조성된 1기 신도시 분당이나 일산에 대규모로 지어진 아파트들이 15층 내외이니 대략 그 즈음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굳이 고층으로 지어야 할 필요가 없다면 철근콘크리트구조보다는 나무를 활용한 목구조나 벽돌을 활용한 벽돌구조를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둘 다 철근콘크리트구조만큼 튼튼하지는 않지만, 재료를 구하기 쉬운 만큼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철근이나 콘크리트는 공장에서 생산되지만, 나무, 흙, 돌은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이니까요. 어떤 재료를 활용하느냐는 전적으로 기후에 달려 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비가 충분히 내리는 지역은 나무가 잘 자라기 때문에 목구조의 주택이 많고, 그렇지 못한 지역에서는 흙이나 돌을 활용해야 합니다. 특히 중국 내륙이나 중앙아시아처럼 건조한 지역이라면 나무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로 흙을 활용했고요. 흙으로 지은 집은 낮에는 열을 흡수하고 밤에는 열을 방출하기 때문에 일교차가 큰 사막이나 고원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영화의 배경인 중국 북서부의 간쑤성 농촌 지역은 영화감독(리뤼준)의 실제 고향이라고 합니다. 간쑤성은 몽골과 지리적으도 가깝고 고온건조한 기후도 비슷합니다. 몽골 하면 떠오르는 사막과 초원, 그리고 모래바람이 많은 지역이죠. 영화의 제목 <인루천옌>은 '먼지로 돌아간다'는 뜻인데, 여기서 먼지는 장소적 배경(사막과 초원)이자 공간적 배경(흙집) 그리고 사회적 메세지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발전하면서 도시 대비 농촌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소외되는 도농격차 현상은 모든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인 것 같습니다. 농업은 다른 산업과 달리 자연환경에 대한 의존도가 높습니다. 지리적 위치나 기후는 사람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으니까요. 세계적인 농업 강국인 미국, 중국, 브라질 같은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국토가 넓을 뿐만 아니라 국토가 가로로 길쭉한 형태입니다. 국토가 가로로 길면 어디에서든 기후가 비슷한 만큼 동일한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고, 국토가 크면 기계화 대량생산을 통해서 생산비용은 낮추고 가격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요. 한국의 식량 자급률이 낮은 이유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농업 경쟁력이 높다고 해서 농촌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까지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 현상이 나타나는데, 농업 경쟁력이 높으려면 그만큼 기계화 대량생산을 해야 하는 만큼 일자리 창출이 어렵게 됩니다. '고용유발계수'라는 지표가 있습니다. 특정 산업에서 10억 원의 최종 수요가 발생할 때 해당 산업과 연관된 산업에서 새로 창출되는 고용자 수를 의미하는데, 농업 경쟁력이 높은 식량 수출국의 고용유발계수는 식량 수입국의 1/3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니 농업이 발달하더라도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농촌을 떠나게 되고 인구가 부족한 농촌은 교육, 의료, 서비스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갖추기 어려워지는 것이죠.
농촌이 도시 만큼의 생활 인프라를 갖추려면 기본적으로 인구가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농업이 발달할수록 일자리는 줄어드는 역설 때문에 농촌 인구는 계속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OECD 국가에서 농업 인구의 비율은 5% 내외이고 그마저도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추세라고 합니다. 반면 농업 인구의 비중은 높은 나라는 대부분 산업화가 되지 않은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국가들이고요. 1970년대 한국이 그랬듯,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며 급속도로 산업화 되고 있는 중국이라면 도농격차의 한복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도농격차가 극심했던 1970년대 한국에는 '새마을운동'이 있었습니다. 농촌의 생활 인프라를 개선해보자는 국가 차원의 정책으로, 도로, 상하수도, 주택 등을 정비했죠. 물론 농촌 주민들도 직접 일손을 보탰지만 주요 재원은 국가에서 제공했습니다. 산업화를 통해 도시에서 발생한 소득을 농촌에 재분배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중국에서도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벤치마크한 '신농촌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재는 도시와 농촌의 상생을 목표로 하는 '농촌진흥 5개년 계획'으로 발전했는데, 이 과정에서 중국 농촌의 어두운 현실을 담아낸 영화 <인루천옌>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상영중단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과연 농촌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인루천옌> | 隐入尘烟
리뤼준 감독, 2022
중국 북서부의 한 농촌에 사는 유톄(우런린)는 허름한 집과 당나귀 1마리가 전 재산인 가난한 농부입니다. 유테는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지만 농촌에는 여자가 부족해 노총각으로 늙어가다가 결국 결혼시장에서 200위안(약 4만원)의 지참금을 주고 장애가 있는 여성 구이잉(하이칭)과 결혼합니다.
헐값에 팔려온 구이잉은 좀처럼 유톄에게 마음을 열지 않지만, 남편 유톄가 다정하게 보살펴주며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됩니다. 가난하고 힘든 생활 속에서 둘은 새 흙집을 짓고 서로를 의지하며 소박하게 살아가는데..
“사람이 있으면, 그곳이 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