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의 역사 | 퍼펙트 데이즈

모든 영화에는 부동산이 있다

by 오성범

혹시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안도 타다오, 쿠마 켄고, 시게루 반과 같이 유명한 일본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참여해 도쿄 시부야의 여러 공중화장실을 새로 설계한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일본의 한 비영리 단체가 2021년에 기획했는데, 당시만 해도 공중화장실은 어둡고 더럽고 위험하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만연해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취지였다고 합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숲 속 산책', '도시의 불빛', 'Hi Toilet'과 같이 건축적 메세지를 가진 17곳의 공중화장실이 새로 생겨났고, 독특한 외관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건물의 외관 뿐만 아니라 내부 관리에도 충분히 신경을 썼는데, 공중화장실의 청결한 이미지를 위해서 하루 세 번 이상 청소를 하고 시설에 대한 모니터링을 했다고 합니다. 영화의 주인공 히라야마(배우: 야쿠쇼 쇼지)는 이 화장실을 관리하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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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레 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는 "인류의 역사는 화장실의 역사"라고 말했습니다. 도시 시스템에서 하수도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인데요, 소설의 배경인 19세기 프랑스 파리는 생활 하수를 처리하는 시스템이 없어 하수를 그대로 강으로 흘려보냈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인 중세 유럽에는 더 심했는데, 이때는 하수도 자체가 없어서 마치 쓰레기봉투를 골목에 내놓듯 하수를 그대로 건물 밖에 버렸다고 합니다. 도로가 오물로 가득 차서 이를 피하기 위해 굽이 높은 구두인 하이힐을 신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위고는 "문명은 빛나는 건물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건물에서 나오는 더러운 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수도는 악취나 전염병을 막기 위한 도시의 위생 시스템이기도 하지만, 공중보건, 토목기술, 행정력까지 요구되는 도시문명의 집약체인 것입니다. 위고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하수도의 경제적 가치까지 강조했습니다. 하수도에 쌓인 분뇨를 농업에 비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죠. 실제로 밭농사에는 비료가 필수적이고, 사람을 비롯한 동물의 분뇨는 유기질 비료를 만들기 위한 주된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한국에서도 흔히 '푸세식'이라고 부르는 재래식 화장실에서는 분뇨를 물로 흘려 내보내지 않고 구덩이나 정화조에 쌓아서 활용했었고, 1970년대에는 버스터미널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건물에 여러 사람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대형 철제 소변기가 설치되기도 했는데 제약회사에서 직접 소변기를 설치하고 분뇨를 수거해 활용하기도 했었습니다. 지금도 '스마트 양변기'처럼 분뇨를 의료 등 산업적 목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계속 되고 있고요.


화장실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 만큼 오래되었습니다. 인류가 농업혁명과 함께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화장실은 필수적인 생활공간이었으니까요. 지금은 화장실을 극도로 사적인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과거의 화장실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고 합니다. 고대와 중세의 화장실은 개인화장실보다 공중화장실이, 남여화장실보다 공용화장실이 많았습니다. 배변이 부끄럽거나 감추어야 할 일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드러낼 수 있는 일종의 사교활동으로 인식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문득 한국영화 <광해>에서 임금이 신하들 모두 보는 앞에서 '매화틀'이라는 이동식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보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중세 시대까지만 해도 공용공간이자 사교공간이었던 화장실은 근대 도시의 성장과 함께 개인 공간으로 진화하게 됩니다. 도시 인구가 늘어나면서 더 이상 공중화장실로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죠. 초과 수요상태의 공중화장실은 유료화 되거나 결국 개별 주택 내부로 들어가게 되는데, 건물 내부의 화장실을 위생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수세식 양변기와 하수도 시스템이 이를 뒷받침했습니다.


한국에서도 하수도법은 건축법이 제정된 1962년보다 조금 늦은 1966년입니다. 서울의 생활 하수를 한강으로 흘려보내기 전에 처리하기 위한 하수처리장 역시 1976년에 최초로 준공되었고요. 즉 1970년대 중반 이후에 서야 하수도 보급이 빠르게 증가해 20년이 지난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일정 수준 이상의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화장실의 역사, 생각보다 흥미롭지 않나요?




<퍼펙트 데이즈>

빔 벤더스 감독, 2024


도쿄 시부야의 공공시설 청소부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는 매일 반복되지만 충만한 일상을 살아간다. 오늘도 그는 카세트 테이프로 올드 팝을 듣고, 필름 카메라로 나무 사이에 비치는 햇살을 찍고, 자전거를 타고 단골 식당에 가서 술 한잔을 마시고, 헌책방에서 산 소설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이가 소원한 조카가 찾아오면서 그의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변화가 생긴다.


“예전에 여기가 어땠는지 기억해? 그게 나이를 먹는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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