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빚 내서 집사는 게 어때서
2002년 6월 George W. Bush 대통령은 저소득 미국인, 특히 소수민족의 자가점유율을 늘리는 정부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Georgia주 Atlanta를 방문했다. 대통령은 백인 미국인의 75%가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있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히스패닉의 자가점유율은 50% 미만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국가를 위해 이런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 Bush 행정부는 550만 명의 저소득 또는 소수민족 가정이 주택을 구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들이 주택을 구입할 때 필요한 10~20%의 계약금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의회에 $200억약 2,400억 원 규모의 “아메리칸 드림 기금”을 만들어 가구당 최대 $10,000(약 1,200만 원)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또한, 저가 주택이 부족하다는 점도 강조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동산 개발회사가 소외된 지역에도 저가 주택을 건설할 수 있도록 $2.4억(약 2조 8,000억 원) 규모의 세금 감면안도 의회에 제안했다. 부의 재분배, 막대한 정부지원, 정부의 시장개입까지, 정책만 들었을 때는 George W. Bush 대통령이 아닌 Barak Obama 대통령의 정책인 것 같기도 하다. Bush대통령이 발표한 정책은 보수적인 공화당원들에게 혼란스러울 정도로 진보적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미국 주택 문제의 특징이다. 역사적으로 주택 만큼은 미국에서 초당파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미국을 세운 연방주의자, 공화당원 모두 주택 소유를 지향하며, 이것을 자유, 독립, 민주시민의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1800년대 초, Thomas Jefferson 대통령은 일반 시민의 재산권이 "공화국 정부의 진정한 기반"이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영토가 확장되자 미국 정부는 원주민에게 약탈한 토지를 개발해 이주민들에게 나눠주었다. 1930년대 수천만 명에게 주택 대출을 지원했던 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은 "주택 소유자의 국가는 결코 정복당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그는 채무자의 담보대출금 상환을 정부가 보증하는 방식으로 수백만 명의 참전 군인에게 주택을 제공했다.
1992년 의회는 담보대출기관인 Fannie Mae와 Freddie Mac이 저소득 및 소수민족에게도 충분한 담보대출을 제공하도록 의무화 해 주택 소유기회를 확대하려고 했다. 이에 따라 저소득층의 담보대출 비중은 전체의 30%에서 50%로 증가했는데, 모두 주택 자가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었다. 1994년 Bill Clinton 대통령이 미국의 주택 자가점유율을 역사적 평균인 64%에서 2000년까지 67.5%로 높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주택 소유를 늘려 경제를 강화되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중산층을 구축하려고 했다. 그러니 Bush대통령이 전임 대통령들의 발자취를 따라 주택 자가점유율을 확대하려고 했던 것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2003년 당시 모두 이 정책에 찬성했으며, 의회도 관련 법령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주택 소유는 정당을 떠나 모든 국회의원들이 지지할 만큼 인기 있는 정책이었다.
미국은 이런 정책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으로는 주택 자가점유율이 낮은 편에 속한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의 주택 자가점유율은 65% 안팎인데, 다른 서구 국가 대비 많이 낮은 수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택시장에는 거품이 터졌고 세계 경제도 마찬가지였다. Bush 대통령이 도우려 했던 많은 사람들은 결국 심각한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Darrin West에게 일어난 일을 살펴보자. Darrin은 2002년 Bush 대통령의 연설에 참석한 Atlanta 경찰이었다. 그는 대통령을 보호하려고 연설에 참석한 것이 아니라, 연설을 듣기 위해 참석한 것이었다. Darrin은 Atlanta개발청이 건설 중이었던 타운하우스를 분양 받았는데, 분양가는 $130,000(약 1.5억 원)이었고, 시에서 계약금 $20,000를 대출받았다. 사실, Bush 대통령은 연설 전에 이 타운하우스를 둘러봤는데, 연설 중에 이 타운하우스 사례를 언급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실천이 미국에서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미국 전역에서 수십만 명의 Darrin이 주택을 구입했다. 집을 산다는 흥분과 집값에 대한 낙관주의가 지배적이던 시기였다. 하지만 2008년 ≪New York Times≫의 취재결과, 수십만 명의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Darrin 역시 그 집을 소유하지도, 살고 있지도 않았다.
미국 정부가 주택시장의 데이터를 제대로 이해했더라면, 어쩌면 Darrin과 같은 저소득 주택 소유자들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과거 20년 동안 주택가격을 분석해보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저소득 가정이, 저소득 지역에서, 저가 주택을 구입하도록 지원하는 보조금은, 결과적으로 그들이 도우려 했던 바로 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이다. 이런 정책으로는 부와 기회 창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집을 사는 것 자체가 일종의 게임이다. 한 곳에서 수십 년 동안 계속 산다는 것, 앞으로 계속 담보대출 원리금을 갚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게임과 같다는 것이다. 월급쟁이들은 이런 게임을 할 여유가 없다. 담보대출의 노예로 사느니, 대신 앞으로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사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여러분들이 Cleveland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고, 직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샀다고 해보자. 경기가 나빠지고 일자리를 잃게 되어 수입이 줄어들어도 그 도시에 묶여 있어야 한다. 물론 Cleveland에서 새 일자리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차라리 일자리가 있는 지역으로 이사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더구나 통장 잔고가 넉넉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한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집을 소유하고 있으면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가 어렵다. 갑자기 아이가 아파서 $10,000약 1,000만 원 이상의 병원비가 필요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출을 줄여야 한다. 세입자라면 월세가 저렴한 곳으로 이사를 가면 쉽게 해결할 수 있겠지만, 집을 소유하고 있다면 매월 고정적으로 나가는 대출원리금을 줄일 수 없다.
집값이 대출원금보다 더 떨어지면 저소득층에게는 치명적인 재앙이 된다. 집을 팔아도 대출원금을 모두 갚을 수 없으니, 팔 수도 없는 집에 살면서 매월 대출금을 갚아 나가야 한다. 집이 안정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정적 안정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저소득층의 주택 구매는 집값이 오르더라도 좋은 투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집값의 상승과 하락은 그 지역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부유한 지역일수록 수익률이 더 높고 안정적이며, 그렇지 못한 지역에서는 수익률이 낮을 뿐만 아니라 변동성이 더 컸다. Colorado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이자 Zillow의 기술자문을 맡고 있는 Thomans Thibodeau 는 저소득 가정이 저소득 지역에 투자한다고 해서 이익이 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주택 구매는 오히려 그들을 빈곤의 악순환에 빠뜨릴 뿐이었다.
미국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로 큰 대도시인 Los Angeles와 Chicago를 살펴보자. 이 대도시에는 수십 개의 지역이 있으니, 충분한 표본이 될 것이다. 인구 데이터를 Zillow의 주택 데이터와 결합해, 고소득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의 주택가치를 시계열로 분석했다.
Los Angeles에서는 지난 17년 동안 3개의 지역만 집값이 3% 내외로 하락했는데, 인구 데이터에 따르면 이 지역은 모두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반면, 같은 기간 Los Angeles에서 가장 부유한 23개 지역의 평균 수익률은 6.5%였다. 주택가격이 가장 많이 하락한 지역은 평균 소득이 $42,770약 5,000만 원 수준이었던 Hawaiian Gardens였고, 가장 많이 오른 지역은 평균 소득이 $101,324였던 Newport Beach 였다. 이런 패턴은 Chicago, Windy City 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96년 이후 Chicago에서 집값이 가장 떨어진 지역은 80%가 도시 평균보다 소득이 낮은 지역이었고, 집값이 오른 지역은 모두 소득이 높은 지역이었다.
주택 소유와 관련해, 미국의 부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고 있다. 고소득 지역이 그렇지 못한 지역보다 수익률이 높은 것은 상당히 일반적이고 지속적인 패턴이다. 수익률의 격차도 평균적으로 60%에 달한다. 부유한 사람들일수록 더 빨리 부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주택가격의 변동성은 저소득 지역에서 더 컸다. 고소득 지역에서는 주택가격도 안정적이었지만, 그렇지 못한 지역에서는 변동이 심했다. 저소득층은 낮은 수익률과 높은 변동성 모두를 갖춘 잘못된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투자라면 일반 경제법칙으로는 채택하기 어려운 비합리적 투자이다.
다시 Atlanta로 돌아와, Bush 대통령은 청중에게 주택 소유가 아메리칸 드림의 일부라고 말한다. “정부는 국민들의 꿈을 키우고 미국의 모든 이웃이 꿈을 꿀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것이 곧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물론, 좋은 말이다. Bush 대통령의 진심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생각은 미국의 법률, 가치, 문화에 깊이 박혀 있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이기도 하다. 비록 연구 결과와 다를지라도, 우리는 주택의 소유가 더 나은 시민권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주택 소유가 저소득층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따지는 것조차 어려워 보인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신화는 그 이유의 하나일 뿐이다. 집을 사는 것이 부를 늘리고, 빈부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은 아주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진실은 그 반대에 있었다. 이것은 우리의 주관적인 의견이 아니라, 데이터에 의한 객관적인 결론이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주택 소유를 아메리칸 드림과 동일시하는 정책은 실패로 끝날 것이다. 우리 모두 미국의 빈부격차와 불평등에 대해 알고 있고 그것을 걱정한다.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경제 성장은 저해된다. 우리 국민과 대통령이 국가가 더 평등하기를 바라는 것은 단순한 소망을 넘어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주택 소유가 아니라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택 소유를 늘려 불평등을 줄이려는 정책은, 오히려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은 저소득 가정이 수익도 낮고 위험한 주택을 사게 만들고, 장기 담보대출의 노예로 생활비 조차 감당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오히려 무이자 학자금 대출, 대학 등록금 인하, 근로소득 세액공제 확대 같은 정책들은 저소득 및 소수민족의 경제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실질적인 소득을 늘려 사람들 스스로 소비하고 저축, 투자할 수 있도록 한다. 저가 주택에 대한 민간 투자를 장려하기 위한 세액공제도 성공적인 주택 정책이다. 하지만, 주택 소유 만큼은 그렇지 않다. 집에 대한 우리의 정서적 반응은 무척 강하다. 하지만 국가정책이라면, 본능보다 데이터를 신뢰해야 한다.
다른 생각도 함께 읽어봐요 : 정수연 교수의 부동산 정책 오해와 진실(12) 빚내서 집 사는 게 어때서?
https://jmagazine.joins.com/monthly/view/339221
※ <질로우 토크> (박영사, 2023)에 실려있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