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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ricot 프로젝트 Aug 17. 2021

서울 지하철에서는 무슨 소리가 날까?

매일을 이루는 사운드 디자인

'연두색 2호선. 7번 출구로 들어가 역 가장 안쪽까지 걸어가, 10-3번 칸 앞에 서기.'


대학 입학으로 지방에서 올라와 두리번거리며 노선을 살피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환승역과 내려야 할 문 방향까지 꿰고 있는 것은 기본, 출근을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지하철이 몸에 익숙해졌다.

오늘도 물론 지하철을 탔다. 잠시 눈을 감고 오늘의 여정을 생각해 보자. 언제나처럼 2호선에서 환승, 오른쪽을 보고 서서 내릴 준비를 한다.

그렇다면 역에 도착해 문이 열리기 전, 어떤 소리가 났지?

...

오늘만 해도 수십 번을 들었을 소리, 환승역이 국악 멜로디인 건 알겠는데 일반역은 무슨 소리더라... 확신을 담아 대답하기가 힘들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지하철 도착 안내음이 개성 있게 튄다면 하루에 수십, 수백 번씩 듣다가 이골이 나 버릴 것이다. 또는 기억에 남는 중독적인 멜로디라면 출근해서 하루 일과에 집중할 수 없을 것이다. 

짧은 순간 동안 정확한 역할을 다하고 공기 속으로 사라지는 것 - 그것이 공공시설 안내 사운드의 소명이다.


청각 인지는 시각 인지보다 기억에 덜 남고, 더 빠르게 휘발된다. 그러나 시각 안내에 비해 결코 덜 중요하다고는 할 수 없다. 지하철이 안내음이나 경고음 없이 완전한 무음으로 달린다면, 사람들 틈에 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아침 출근철에서 제대로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언제 문이 닫힐지 몰라 조마조마하며 있다가 탈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작은 존재감을 지녔지만 시민의 발이 안전하고 원활하게 운행하도록 매일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지하철 안내음 디자인에 대한 재미있는 아티클을 읽어 공유해보려 한다. 세계 여러 도시들의 지하철 안내음을 비교하고, 분석한 글이다.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21/08/13/arts/subway-train-sounds.html


위 아티클은 담긴 내용도 재미있지만 정보의 전달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사운드에 대한 글인 만큼 텍스트를 읽는 동시에 안내음을 눌러 들어볼 수 있고 소리의 높낮이와 길이를 컬러 도트로 시각화해 보여 준다. 사운드와 그래픽, 텍스트의 3박자가 맞아떨어져 정보가 훨씬 잘 와닿는다. 


정리하자면 이 기사는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지하철 안내음들을 소개한다. 뉴욕과 몬트리올, 홍콩, 도쿄, 리우 데 자네이루와 파리까지. "출발합니다, 문이 닫히니 조심하세요."와 함께 흘러나오는 안내음들은 하나같이 뚜뚜뚜뚜 하고 단순하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단순한 안내음이지만 음역대와 리듬, 템포는 국가별, 도시별로 가지각색이라는 점이다. 높은음에서 낮은음으로 흘러가는 경우도, 그 반대로 흘러가는 경우도 있다. 잔잔히 수면에 파문이 이는 것 같은 소리가 있는가하면 짧고 반복적인 안내음도 있다.


도시나 문화권의 개성을 담은 안내음들도 있다. 일본의 시부야 역은 긴 오르막을 따라 노선이 나 있다는 지리적인 특징을 살려 '산을 오르는 듯한 소리'를 내고, '우주소년 아톰'의 고향인 다카다노바바 역에서는 아톰 주제곡 일부를 따서 만든 소리가 난다. 오사카 역은 지역에서 사랑받는 전통가요의 멜로디가 열차 출발 신호음으로 울려 퍼진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브라질 리우의 지하철은 2초 남짓한 짧은 안내음에도 보사노바의 선율을 담았다. 문이 열리면 푸른 해변가일 것만 같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오래 살았던 도시의 알림음을 다시 들으면 물씬 향수가 일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지하철 문이 열리고 닫히는 영상만 쭉 모아져 있는 이 3분 40초짜리 영상은 2백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지하철 안내음이야말로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한 사용자 경험 설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도시의 하루하루를 움직이게 하는 소리는 누가, 어떻게 디자인하는 것일까?

일본의 작곡가 무카이야 미노루는 혼자 무려 170개가 넘는 지하철 안내음을 만들었다고 하고, 서울 지하철 환승역에서 울리는 국악 안내음은 서울교통공사가 2007년 국립국악원에 의뢰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매일 듣는 시민들에게는 내릴 준비를 하라는 경쾌한 시그널로, 한국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아이덴티티로서 기억에 남는 인사이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하철 안내음이야말로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한 사용자 경험 설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 어디에서 온 누구든지 바로 인지할 수 있는 직관적인 형태의 설계이자, 통화를 하거나 음악을 듣는 등 다른 행동 중에도 바로 인지할 수 있는 정보로서의 사운드 디자인. 매일 우리의 하루 속에서 제 역할을 다힌다는 점에서 그 어떤 소리보다도 우리와 밀접한 사운드 디자인이다.


사진_게티이미지뱅크


제각각인듯 들리는 지하철 안내음들이지만 공통적으로 따르고 있는 기준들이 있다.

첫째는 적합한 길이. 출발 안내음의 목적은 승하차 인원을 빠르게 분산시켜 열차 출발의 지연을 막는 것이다. 너무 길면 사람들이 느긋하게 움직여 이동속도가 늘어지고, 너무 짧으면 타거나 내릴 찰나를 놓칠 수도 있다.

상황에 적합한 톤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지나치게 부드럽고 편안한 안내음은 주의 환기에 적합하지 않고, 경쾌한 장조의 빠른 출발 음악은 열차를 놓쳐 다음 차량을 기다리는 승객을 불쾌하게 들릴 수도 있다. 너무 날카로운 소리는 매일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듣기에 불편할 것이다. 그 외에도 문이 열리기 몇 초 전 안내음을 제공할지, 닫히기 전 타이밍을 어떻게 맞출지도 고려해야 할 요소이다.


이런 요소들은 구글에서 2019년부터 제공하고 있는 사운드 가이드라인 (Material Sound Guideline)과도 맞닿아 있다. 위 가이드라인에서는 좋은 사운드 디자인이 갖춰야 할 요소를 세 가지로 정의한다.


Informative (실용성)

사운드는 직관적이고, 실용적이고,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Honest (정직함)

제품이나 브랜드를 위해 사용되는 경우, 아이덴티티와 톤을 반영한 것이어야 한다.

Reassuring (안정감)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며, 꼭 필요한 경우에만 행동을 유도하는 데 쓰이도록 해야 한다.


직관적이고, 때로는 서울의 이미지를 담으며, 필요한 순간 바로 고개를 들어 내릴 순간을 찾게 해 주는 고마운 안내음. 내일도, 모레도, 스쳐가듯이 듣고 내릴 때쯤에는 잊게 될 소리. 세계 곳곳에서 비슷하지만 다른 안내음들이 성실하게 뚜뚜뚜뚜, 하고 울리며 달려가는 생각을 하니 조금 더 정겹다.


*참고로,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출발 안내음은 이러하다.  


By 에디터 Chip


참고한 글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21/08/13/arts/subway-train-sound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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