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0살 때 척수에 종양이 생겨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있던 그 4개월은
우습지만 나에게는 천국과 같았다.
학교를 가지 않아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고,
경미라는 이름을 가진 간호사 누나는 10살 꼬맹이랑 너무 잘 놀아주었으며,
호랑이 부모님들은 어디로 갔는지 더 이상 나를 혼내지 않으셨고,
몇 시간을 바닥에 누워 뒹굴며 눈물을 쏙 빼고 나서야 겨우 하나 얻을 수 있었던 장난감도
사달라는 대로 그대로 다 사주셨다.
2.
걷지 못해서 불편하기는 했지만
휠체어를 밀고 병원 구석구석을 다니는 일도
마치 운전기사가 된 것 같아서 즐거웠다.
걷지 못한다는 것 빼곤 모든 게 완벽했다.
실은 '걷지 못한다는 것 빼곤'이라는 표현을 굳이 쓰기엔
못 걷는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걱정도 고민할 필요도 없었던,
몰래 우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도 고개를 갸우뚱했던,
철없던 꼬마, 나의 10살은 그야말로 완벽했고,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3.
수술 후 한동안은 침대에서 꼼짝을 할 수 없었는데,
아빠가 사준 셜록홈즈 전집은 닳도록 읽어도 짜릿했다.
병실 불끄는 시간 책을 읽을 수 없을 때는
역시 나의 천사 아빠가 사준 대우 요요카세트에 들어있던 견본테이프를 들었다.
A면의 Air Supply -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은 내내 최애곡이다.
어릴땐 노래 그 자체로 참 좋았고,
지금은 10살 병원 시절, 생각 없이 즐거웠던 시절을 떠올리게 해줘서 좋다.
노래는 기억이다.
4.
30년이 지나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1988년처럼,
올해, 2024년을 그렇게 기억할 수 있을까?
감사하게도 그럴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로, 또 어떤 노래로 기억이 될까?
몇가지가 미소와 함께 떠오른다.
분량의 제약으로 굳이 여기에 적지는 않겠다 :)
5.
모두에게 2024년이 기억되기를.
되도록 즐거운 기억이 남기를.
힘든 기억이 함께 남는다면
그땐 그랬지 하며 웃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