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기억이다(2024년을 보내며)

by 이재근

1.

10살 때 척수에 종양이 생겨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있던 그 4개월은

우습지만 나에게는 천국과 같았다.


학교를 가지 않아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고,

경미라는 이름을 가진 간호사 누나는 10살 꼬맹이랑 너무 잘 놀아주었으며,

호랑이 부모님들은 어디로 갔는지 더 이상 나를 혼내지 않으셨고,

몇 시간을 바닥에 누워 뒹굴며 눈물을 쏙 빼고 나서야 겨우 하나 얻을 수 있었던 장난감도

사달라는 대로 그대로 다 사주셨다.


2.


걷지 못해서 불편하기는 했지만

휠체어를 밀고 병원 구석구석을 다니는 일도

마치 운전기사가 된 것 같아서 즐거웠다.


걷지 못한다는 것 빼곤 모든 게 완벽했다.


실은 '걷지 못한다는 것 빼곤'이라는 표현을 굳이 쓰기엔

걷는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걱정도 고민할 필요도 없었던,


몰래 우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도 고개를 갸우뚱했던,

철없던 꼬마, 나의 10살은 그야말로 완벽했고,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3.

수술 후 한동안은 침대에서 꼼짝을 할 수 없었는데,

아빠가 사준 셜록홈즈 전집은 닳도록 읽어도 짜릿했다.

병실 불끄는 시간 책을 읽을 수 없을 때는

역시 나의 천사 아빠가 사준 대우 요요카세트에 들어있던 견본테이프를 들었다.


A면의 Air Supply -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은 내내 최애곡이다.

어릴땐 노래 그 자체로 참 좋았고,

지금은 10살 병원 시절, 생각 없이 즐거웠던 시절을 떠올리게 해줘서 좋다.


노래는 기억이다.


4.


30년이 지나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1988년처럼,

올해, 2024년을 그렇게 기억할 수 있을까?

감사하게도 그럴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로, 또 어떤 노래로 기억이 될까?


몇가지가 미소와 함께 떠오른다.

분량의 제약으로 굳이 여기에 적지는 않겠다 :)


5.


모두에게 2024년이 기억되기를.


되도록 즐거운 기억이 남기를.

힘든 기억이 함께 남는다면

그땐 그랬지 하며 웃을 수 있기를.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빠랑 다니면 연예인이랑 다니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