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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아, 거울아

인생은 대가의 연속

by APRDEC

젊음의 혈기로 모든 것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제이슨은

곧 닥칠 감사 시즌이 영 버겁지 않다. 충분히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감은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고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여전히 남들보다 앞서 나가길 원했던 그였기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자들을 제거할 궁리를 하고 있었다. 도심이 내려다 보이는 커다란 사무실 안에서

의자에 기대어 깊은 고민에 빠져 식사를 놓친 경우도 다반사다. 따로 비서를 두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스스로 일처리 하는 것을 즐겼고 그 자체가 즐거움의 하나였다.

겉으로 보면 평범하지만 그에겐 특별한 버릇 하나가 있었다.

큰 결정을 하기 전엔 전신거울 앞에서 새 넥타이를 고쳐 메는 버릇이다.

그 의식을 거쳐야만 한 걸음을 띌 수 있었다.


오늘도 역시 그날이다.

새로운 임원을 선출하는 자리에 제이슨은 당당하게 후보 중 한 명으로 지목되었다.

그 자리를 위해 그는 미리 준비한 연설 원고를 훑어 보고 있었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선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일어섰다. 그리고 턱수염을 쓸어내리고 슬며시

전신거울 앞에 섰다.


“ 휴~ 이것만 넘기면 난 더 높은 단계를 밟을 수 있어. 이것만 넘기면…”

비장한 그의 표정이 눈썹 사이 주름으로 나타났다. 긴장되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하지만

통제되지 않은 심장은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눈을 질끈 감고 있는데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내가 도와줄까? ”

눈을 떠보니 거울 속 제이슨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금보다 10년은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게 아닌가.


그는 당황한 나머지 아무 말도 못 하고 크게 뜬 눈으로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10년은 늙어 보이는 자신을.


거울 속 제이슨은 이어서 말한다.

“ 내가 도와줄게. 네가 원하는 기업의 정보, 국제 정세, 심지어 로또 번호까지!”


지금의 제이슨은 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솔깃했다. 이제 몇 분 후면 중요한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이것은 기회라고 생각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했다.

“ 조금 있으면 중요한 회의가 코 앞인데 10년 뒤 유망 사업 정보 좀 알려줘. 지금 그게 가장 필요해! ”

“ 좋아! 그거라면 어렵지 않지. 대신 조건이 있어”

“ 뭔데?? ”

“ 원하는 정보를 전달하는 순간 너의 10년은 내가 가져갈 거야. “

“ 뭐? 그게 무슨 말인데? ”

“ 지금은 이해가 안돼도 곧 알게 될 거야. 아무튼 공정한 거래라고 생각하면 돼.”


지금의 제이슨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거울 속 자신이 환영인지 무엇인지 알 순 없지만

그 정보만 얻는 다면 미래는 탄탄대로 일 것 같았다. 좋아, 머 나쁘기야 하겠어? 제이슨은 씨익 웃었다.

“ 좋아. 거래하지! 유망 사업에 대한 정보를 알려줘.”


거울 속 제이슨은 마른기침을 하고 손짓을 한다.

그리고 두 명의 제이슨은 귓속말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약 1시간 후.

회의장 문이 열리고 임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제이슨은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빠져나왔다. 여기저기서 그에게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건넸다.


일주일 후 제이슨은 부사장 전용 사무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전보다 더 넓고 쾌적한 공간을 바라보며 미소를 감출 수 없었고

비서의 보고를 받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전신 거울을 바라봤다.

“ 탁월한 선택이었어…”


“ 부사장님, 곧 다음 미팅 준비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

“ 그래?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

제이슨은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새롭게 맞춘 정장 재킷을 걸치고

전신거울 앞에 섰다.


‘ 응? 이게 뭐지? ’

제이슨은 머리를 정리하다 정수리 쪽 흰색 머리카락을 발견했다.

‘ 흠, 지난주엔 이렇게 많지 않았었는데? ’

손가락으로 쓱쓱 머리를 정리하려는데 거울 속 제이슨이 나타났다.

“ 좋아 보이는데? 내 정보가 도움이 됐어? ”

“ 깜짝이야! 아, 고마워. 덕분에 이렇게 승진했네! 이거 고마워서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은데… 어쩌지? “

부사장 제이슨은 너스레를 떨며 대답했다.


이내 거울 속 제이슨이 능청 떨며 답한다.

“ 하하, 그런 건 걱정 말라고 넌 나에게 보답했잖아. 너의 10년 ”

“ 그… 그랬지. 하하. 근데 그거 어떻게 되는 건데?? “

부사장 제이슨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거울 속 제이슨은 씨익 웃더니 조용하게 말한다.

“ 이미 진행되고 있어. 너도 알잖아. 흰머리 조금 있으면 지금보다 더 빨리 자라날 거야.

10년의 압축된 시간만큼 노화가 진행될 거야. 그러니까 너무 당황하지 마.

그 대신 넌 강력한 위치를 얻었잖아? “


부사장은 전신거울에서 뒷걸음치며 자신을 바라봤다.

정수리에 모여있던 흰머리가 점점 사방으로 퍼지고 있었고

공포로 일그러진 얼굴엔 미세한 주름이 생겨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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