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는 ’영적 회피’ 입니다.
마음챙김이나 영성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은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자칫 잘못하면 마음챙김이 우리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 회피란 무엇일까?
심리치료사 존 웰우드가 처음 사용한 이 개념은,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고, 영적인 언어와 수행으로 그것을 덮어버리는 태도”를 뜻합니다.
겉으로는 깨달음이나 긍정, 초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속 깊은 상처와 감정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영성을 ‘도피처’로 삼는 것이죠.
이런 모습으로 아래와 같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1. “나는 긍정적인 생각만 해야 해”
-> 부정적인 감정을 ‘비영적’이라 여기며 억누름.
2. “감정은 모두 에고의 환상이야”
-> 분노나 슬픔을 느끼는 자신을 부정하고 죄책감에 빠짐.
3. “나는 이미 고통을 초월했어”
-> 사실은 트라우마가 남아있지만 ‘깨달음’이라는 이름으로 덮어버림.
4. 영적 수행 중독
-> 명상, 기도, 수련을 집착적으로 반복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감정적으로 미성숙한 상태에 머무름.
5. 냉소와 무관심
->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도 “모든 게 완전하다”라는 말로 외면함.
왜 문제일까?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내면 깊은 곳의 상처와 그림자를 직면하지 못하면 성장은 멈춰버립니다.
억눌린 감정은 결국 무의식 속에서 폭발하거나 신체 증상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진짜 영성은 회피가 아니라 통합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1. 자신의 감정과 솔직히 마주하기
-> ‘영적인 언어’ 뒤에 숨은 감정을 알아차리기.
2. 심리적 치유와 병행하기
-> 내면의 상처는 때때로 전문적인 도움을 필요로 함.
3. 영성을 현실에 녹여내기
-> 깨달음을 일상 속 선택과 관계, 책임 속에서 살아내기.
4. 몸과 감정의 지혜 신뢰하기
-> 머리보다 몸과 마음이 전하는 신호에 귀 기울이기.
5.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기
-> 인간으로서의 나를 존중하는 것이 진짜 영성의 시작.
배움의 과정이긴 하지만 불교의 ‘공’ 사상도 통찰없이 이해를 하면 ‘내 몸은 내가 아니다, 내 감정은 내가 아니다’라는 분리의식의 끝판왕에 가까운 잘못된 개념을 만들어 영적 회피에 빠지는 오를 범할 수 있습니다.
절대 현실을 외면하거나 초월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감정을 흘려보내려 해서도 안됩니다. 감정은 귀기울여야 할 마음의 소중한 네비게이션 입니다.
아울러 마음챙김을 한다고 해서 우월한 존재가 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영성은 고통을 외면하는 길이 아니라, 고통을 껴안고 그것을 통과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굳이 이 육체와 함께 태어나 희로애락을 겪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몸, 감정, 에고는 결코 무시하거나 깎아내릴 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소중히 받아들이고, 그 경험에 감사할 때 비로소 영성은 살아있는 것이 됩니다
회피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 지는 것이 자유로 가는 첫 걸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