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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견해

by 하늘담

‘죽음’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는 게 많이 조심스럽습니다.

이야기해서는 안 될 주제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몇 번이고 글을 쓰는 것을 망설였습니다.

주제 자체가 매우 민감한 부분이고 과학적으로 증명도 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단어를 미화하거나 두려움의 대상으로 표현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이 두려움의 대상인 이유는 죽음의 과정과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견해에 따라 현재 살아가는 삶을 대하는 태도는 많이 달라질 거라 생각합니다.

이번생의 육체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즐거움과 쾌락을 최고의 가치로 여길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당연한 본능일 것입니다.

어쩌면 죽음 이후의 삶을 믿기에 인류의 윤리, 양심 체계가 유지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이 두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물질적인 육체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고 영혼의 존재도 믿지 않는 견해입니다. 현대의 뇌과학이나 신경과학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견해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육체가 생명을 다하면 영혼이 분리된다는 견해입니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 삶이 있다고 믿는 견해는 다음과 같이 세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죽음 이후 영혼이 신의 심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간다고 믿는 기독교적인 견해입니다.

두 번째는 죽음 이후 사람마다 고유하고 순수한 영혼이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윤회한다고 믿는 힌두교적인 아트만 사상입니다.

세 번째는 기억과 같은 ‘정보’가 생에서 생으로 계승된다는 견해입니다.

위의 견해들 대부분은 다들 일반적으로 아는 이야기이지만, 기억과 같은 ‘정보’가 생에서 생으로 이어진다는 견해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견해는 다름 아닌 불교에서 말하는 이야기입니다.

흔히들 불교에서 영혼이 윤회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알고 계시겠지만, 불교에서는 고정불변의 영속적인 자아가 없다고 보는 ‘무아’ 사상을 말하기 때문에, 단지 인연에 의해 조건 지어진 의식의 흐름이 이어질 뿐이라고 말합니다.

유식불교 사상에서 좀 더 체계적인 설명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하는 생각, 말, 행동의 모든 기억들이 각자의 심층의식인 ‘아뢰야식’에 씨앗처럼 저장이 되었다가, 다음 생에 그 씨앗이 종자가 되어 삶을 이어간다고 봅니다. 즉 기억과 같은 ‘정보’가 생에서 생으로 이어진다고 말합니다.

이 정보들을 ‘카르마’ 또는 ‘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양자역학의 다세계 해석을 철학적으로 추론하여, 죽음과 함께 의식이 죽지 않는 다른 우주의 흐름 속으로 이어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죽음 이후의 삶이 존재한다고 믿는 모든 견해들은 각자 각자의 현생에서 한 행위들에 대해서 인과율이 적용되어 미래생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너무나 많은 전생 리딩 자료들, 임사체험 자료, 환생에 대한 증거들이 있기 때문에 죽음 이후의 삶은 당연히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한 믿음은 각자의 신념에 따라 다르겠지만,

죽음의 과정에 대해서는 불교에서 말하는 것을 가져와봤습니다.

불교와 현대의학은 죽음의 시점이 틀립니다.

현대의학에서는 호흡이 끊어지고 심장이 멈추고 뇌파가 정지되는 육체적인 죽음을 죽음으로 보지만, 불교에서는 육체의 죽음 이후 의식의 해체과정이 마무리된 상태를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티벳 밀교에서는 육체를 이루는 감각들이 먼저 무너지고, 의식의 해체과정을 통해서 가장 미세하고 순수한 의식인 ‘정광명’이 드러나는 것을 죽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유식불교에서는 죽음의 과정을 좀 더 체계적으로 설명합니다.

유식불교에서 우리의 의식은 다음과 같이 심층적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전 5식)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

(6식) 의식

(7식) 말나식

(8식) 아뢰야식

간단히 설명하면,

‘나’라는 자아의식(말나식)이 오감(눈,코,귀,혀,몸)과 그 대상인 형상,소리,냄새,맛,촉감과 상호작용하여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을 만들고(전 5식), 이러한 전 5식을 통섭하는 것이 6식인 의식입니다.

예를 들면 사과를 보면서 사과모양, 사과향기, 사과맛 등(전 5식)을 통섭하여 6식인 의식이 ‘사과’라는 분별의식을 만들어 낸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8식인 ‘아뢰야식’에 우리의 모든 경험(생각/말/행동)이 저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유식불교에서 말하는 죽음은 전5식(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 6식(의식), 7식(말나식)이 차례대로 해체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49재를 지내는 이유는 의식 별로 7일씩, 7개의 의식이 해체되는 기간이 49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7식인 말나식이 해체된 이후 아뢰야식을 바탕으로 다음 생이 이어진다고 합니다.

개인적인 짧은 견해를 바탕으로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현생에서 스스로 만든 업 밖에 없다고 합니다.

삶과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자기 삶은 자기 스스로 책임진다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귀결됩니다.

누구나 겪게 될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역설적으로 현재의 살아 있는 이 순간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상세히 설명드리겠지만,

우리는 결코 존재하는 것을 영원히 멈출수가 없습니다.

다만 죽음은 우리의 의식의 초점이 전환되는 포인터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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