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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

by 하늘담

우리가 밥 한 숟가락을 먹을 수 있으려면, 쌀이 있어야 합니다.

쌀이 있으려면 물이 있어야 하고, 공기가 있어야 하고, 땅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일구는 농부가 있어야 하죠.

그리고 물과 공기와 땅이 있으려면 지구가 있어야 하고, 쌀이 자라기 위해서는 햇빛과 열을 공급하는 태양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찾아 들어가면 우리가 밥 한 숟가락을 먹기 위해 온 우주가 협력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어디 밥 한 숟가락만 그렇겠습니까? 모든 것이 존재하려면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이 도와야 가능한 일입니다.

이러한 것을 붓다는 ‘중중무진연기’라고 표현하였는데, 모든 것이 서로 의지하고, 끝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른말로 ‘둘이 아니다’라는 의미로 ‘불이법’이라고 합니다.


심리학자인 칼융은 인간의 무의식은 개인적인 것을 넘어 ‘집단 무의식’이라는 바다 아래에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집단 무의식’은 개인 한 사람과의 경험과는 상관없이, 인류 전체가 공유하는 무의식의 영역으로, 심층의식에서는 우리는 하나의 의식 안에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연결에 대한 의미는 ‘인과율’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인과율’은 중력과 같은 세상의 보편 법칙입니다.

그런데, A라는 존재의 삶의 희로애락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대부분 A가 컨트롤할 수 없는 A를 둘러싼 존재들, 환경들에 영향받은 결과입니다.

이러한 촘촘하고 광대한 관계망 안에서 ‘인과율’은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요?

이 모든 것을 조종하는 제 3자인 전지전능한 ‘신’을 대입해야만 설명이 가능할까요?

개인적으로 인격적인 ‘신’에 대한 개념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신’을 여기에 대입해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지는 않습니다. 위와 같이 다양한 관계망 안에서 ‘인과율’이 적용되려면, 근원적으로는 세상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변수, 무수한 존재, 끝없는 선택들, 이 모든 것이 조화롭게 연결되어 인과율이 작동하려면 세상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여야만 가능합니다.


이러한 연결에 대한 통찰은 우리는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하나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삶의 이해와 깊이도 달라지겠죠.


그러나 연결에 대한 또 다른 이해는 우리를 위태롭게 합니다.

러시아 학자인 ‘바딤 젤란드’는 ‘리얼리티 트랜서핑’이라는 책에서 ‘펜듈럼’이라고 명명한 사념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펜듈럼’은 개인의 에너지와 의식을 끌어당겨서 스스로를 유지하고 확장하려는 집단적 사념체를 말하는 것으로, 정치,종교,대중문화,회사,학교 등 이러한 모든 것이 ‘펜듈럼’을 형성하고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사람들의 관심과 감정을 먹고 더 커져간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펜듈럼’에 휘말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펜듈럼’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딤 젤란드’는 이러한 ‘펜듈럼’에 휘말리지 말고 의식적으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심층의식에서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결에 대한 통찰과,

구조적으로 연결된 사념체를 형성하여 개개의 에너지를 잠식하고 자유의지를 꺾어 버린다는 또 하나의 연결에 대한 관점을 통해,

‘연결’의 의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연결’의 의미를 집단주의, 전체주의로 바라봐서는 안된다는 명확한 통찰을 얻습니다.

개인 하나하나의 사고를 억압하고, 집단 이념이나 행동규범을 강제로 따르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펜듈럼처럼 거대한 집단 에너지가 개인을 집어삼키고 조종하는 상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연결’의 진정한 의미는 개인, 개인, 1인칭, 1인칭 들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나와 타인의 분별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에고의 마음이 아니라, 각자 각자가 다 소중한 존재들이라는 나와 타인의 경계가 허물어진 관점의 의미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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