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는 사성제의 첫 번째 가르침에서 ‘고성제(苦聖諦)’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괴로움이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진리를 깨닫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많은 이들이 오해합니다. 마치 괴로움 자체가 성스러운 것처럼 받아들이거나, 괴로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영적 성장을 위한 조건인 양 착각하는 것입니다.
괴로움은 성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괴로움은 나의 의식의 현재 상태가 본질에서 멀어졌을 때, 감정을 통해 스스로에게 보내는 신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본래의 자각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을 때 일어나는 내면의 울림입니다. 다시 말해, 괴로움은 나쁜 것도 좋지도 않은, 단지 의식의 방향을 점검하라는 경고이자 안내입니다.
우리는 이 괴로움을 정직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 나는 지금 내 진정한 마음과 연결되어 있는가?
- 나의 무의식의 믿음체계는 부정적이지 않은가?
- 나는 타인을 내 기준으로 평가하거나 통제하려 하지 않는가?
- 내 마음에는 아직도 분리의식, 비교의식, 피해의식이 깃들어 있지는 않은가?
- 나는 정말로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괴로움은, 우리 마음의 현재 상태가 의식의 본질에서 이탈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거울입니다. 그렇기에 괴로움을 무조건 성스럽다고 여기는 태도는 오히려 자기연민이나 ‘영적 회피’로 빠질 수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나는 특별하다”는 은근한 자아도취 속에서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진정한 성장은, 괴로움의 신호를 외면하지 않고 그 메시지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성찰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괴로움은 우리가 본질로부터 멀어졌다고 알려주는 정직한 울림이며, 그 울림을 듣고 길을 바꿀 때, 비로소 그것은 성스러운 괴로움이 되는 것입니다.
붓다는 괴로움이 ‘성스러운 진리’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지, 괴로움 그 자체가 성스럽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괴로움 그 자체가 성스럽다는 믿음체계가 있다면 우리의 현실은 그 믿음을 경험하게 해주는 방향으로 창조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주는 당신이 믿으면 그것에 힘을 보탭니다. 그것이 부정적인 믿음이든 긍정적인 믿음이든 우주는 따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주의 입장에서는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의 구분이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