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분별의식을 극복해야 한다고 흔히들 말합니다.
육체적인 몸을 가지고 분별의식을 가지지 않고 사는게 가능이나 할까요?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는 모든 오감의 작용들이 사실은 모두 분별해서 바라보기 때문에 느낄수 있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분별의식을 넘어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제로는 엄청난 분별의식을 바탕으로 한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장 극단적인 분별의식의 표현들을 예를 들어보면,
• “육체는 내가 아니다.”
• ”감정은 나와 무관하다.”
• “생각은 나의 것이 아니다.”
• ”나는 단지 관찰자일 뿐, 이 세상과는 상관없다.”
• “나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고통은 환상이다.”
• ”에고는 악이다. 나는 그것을 없애야 한다.”
• “현실은 환영이다. 진짜는 이 세상 너머에 있다.”
• ”나는 순수한 의식일 뿐, 인간적 경험은 중요하지 않다.”
육체, 감정, 생각, 고통, 인간적 삶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태도는 종종 영적인 것으로 포장하지만, 실상은 삶과의 깊은 분리를 낳는 분리의식의 극단적인 형태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몸이 아니라고 느끼고, 감정을 나와 무관한 것으로 여기며, 생각조차 나의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런 인식은 언뜻 보면 영적인 통찰처럼 보이지만, 자칫 잘못하면 삶과의 단절을 정당화하는 분리의식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분별의식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의식이 스스로를 다양한 방식으로 체험하고자 하는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입니다. ‘전체’였던 우리가 ‘부분’을 경험하고자 할 때, 우리는 의도적으로 자신을 제한합니다. 경계를 만들고, 나와 너를 나누고, 옳고 그름을 배우며, 외로움과 연결의 갈망을 통해 존재의 깊이를 느껴봅니다. 이 모든 과정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향한 생명의 의지입니다.
어둠과 빛, 고통과 기쁨, 두려움과 사랑—그 모든 양극단은 하나의 생이 얼마나 다채로운지를 보여주는 풍경입니다. 영성은 그 모든 풍경을 부정하거나 초월하려 들기보다, 그 안에 깊이 스며들어 ‘지금 여기’에서 진실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누군가가 “나는 내 몸이 아니다”라고 말하더라도,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다만 그 말 뒤에 어떤 경험을 추구하는 또다른 선택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