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마음의 체계와 유식 사상

by 하늘담

유식사상은 불교의 주요 철학 중 하나로 4~5세기경 인도의 무착, 세친 등의 사상가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립된 불교 사상입니다.

‘오직 의식만이 존재한다(유식무경)’는 관점을 바탕으로 모든 경험과 세계는 마음의 작용, 즉 ‘의식’의 산물이라고 설명합니다.

유식사상은 붓다가 직접 설하신 것은 아니지만, 붓다의 근본 가르침이 그대로 녹아 있고, 마음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유식사상에서는 마음이 다음과 같이 체계화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마음의 구조가 유식사상에서 설명하는 것과 같다는 관념을 만들어서는 안 되고, 마음을 이해하는 하나의 합리적 설명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8식) 아뢰야식

(7식) 말나식

(6식) 의식

(전5식)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 ~ 색/성/향/미/촉

8식,7식,6식, 전5식은 특정 존재의 심층적 의식 구조를 말합니다.

전5식+6식은 앞에서 살펴보았던 18계의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을 말합니다.

8식인 ‘아뢰야식’에 우리의 모든 경험(생각/말/행동)이 ‘식’으로 저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훈습’ 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모든 ‘업’이 저장되어 있는 곳으로 ‘일체종자식’ 이라고도 합니다.

‘일체종자식’ 이라는 의미는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말/행동이 ‘아뢰야식’에 종자로 저장되어 우리 삶을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종자가 다음 해에 다시 작물로 자라듯이 ‘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 즉 ‘업’이 다음 생으로 윤회하는 조건을 만든다고도 합니다.

여기서는 ‘아뢰야식’을 생과 생이 이어지는 윤회로 풀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알수 없고 증명할 수도 없는 것에 몰입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망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은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뱀을 무서워한다거나 특정 대상에 대한 트라우마 등이 생기는 이유는 이전의 나의 경험이 ‘아뢰야식’에 저장이 되어 있어서, 그러한 것에 대해서 형성된 두려운 기억 때문에 뱀을 무서워하거나 특정한 대상에 대해서 트라우마가 작용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나의 경험들이 쌓인 아뢰야식을 바탕으로 ‘내가 존재한다’라는 자아의식이 생깁니다.

이러한 자아의식을 7식인 ‘말나식’이라고 합니다.

6식과 전5식은 같이 보면 될 것 같은데,

‘나’라는 자아의식(말나식)이 눈,귀,코,혀,몸(안.이.비.설.신)과 그 대상인 형상,소리,냄새,맛,촉감과(색.성.향.미.촉) 상호작용하여 인식을 만들고(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 전5식), 이러한 전5식을 통섭하는 것이 6식인 의식입니다.

예를 들면 사과를 보면서 사과모양, 사과향기, 사과맛 등(전5식)을 통섭하여 6식인 의식이 ‘사과’라는 분별의식을 만들어 낸다고 보면 됩니다.

아뢰야식, 말나식, 의식, 전5식의 활동은 삶을 살아가면서 무한히 반복됩니다. 그러면서 아뢰야식에는 계속 ‘식’이 쌓이게 되겠죠. 이것을 ‘업(카르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업(카르마)’이 계속 찰나 찰나의 삶을 창조한다고 합니다.

유식사상이 붓다의 가르침에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 붓다의 가르침인 12연기와 연관 지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2연기 : 무명 - 행 - 식 - 명.색 - 육입 - 촉 - 수 - 애 - 취 - 유 - 생 - 노.사)

​‘12연기’의 가르침을 보면 어떤 존재가 생각,말,행동을 하면서(행) 인식작용(식)이 이름/형상(명색)과 상호작용하여 분별의식이 생기고, 이러한 분별의식을 바탕으로 눈,귀,코,혀,몸,인식작용(육입)이 그 대상인 형상,소리,냄새,맛,촉감,인식의 대상과 상호작용을 하면(촉), 느낌과 감정이 생기고(수), 욕구와 욕망이 생기고(애), 집착이 생긴다(취) -> 유식사상의 6식과 전5식이 펼쳐지는 것과 같은 내용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나라는 허망한 망상이 만들어 진다’(유) -> 유식사상의 7식인 ‘말나식’, 8식인 ‘아뢰야식’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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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의식의 흐름이 반복되면서 형성된 ‘외부세계와 구별되는 객관적 내가 존재한다.(유)라는 허구의 관념이 내가 태어나고 늙고 죽는다(생.노.사)는 망상을 만들어내고 결국 괴로움을 만들어 냅니다. 왜냐하면 영원하거나 고정된 존재가 아닌 끝없이 생멸하기 때문에 지금 잠깐의 즐거움도 결국은 괴로움으로 변합니다.

‘유식사상’이나 ‘12연기‘에서 설명한 의식을 우리는 ‘자아’라는 연속적이고 고정된 존재라고 착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아뢰야식이 되었든 말나식이 되었든 이러한 자아가 진정한 우리의 본모습일까요?

이러한 자아가 순간순간 생멸하며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깨닫는 게 ’무아‘를 깨닫는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열리면 사랑과 평온이 깃들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것은 경험의 영역이지 지식의 영역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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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에크하르트 톨레’의 말로 이번 장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마음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게 점령당하고, 점령한 실체를 당신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자유를 향한 첫걸음은 점령한 실체인 ‘생각하는 자’가 진정한 당신이 아님을 깨닫는 데 있습니다.

’생각하는 자’를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하는 순간, 더 높은 차원의 의식이 활성화됩니다.

아름다움과 사랑, 창조력과 기쁨, 내면의 평화 같이 진정 중요한 것들은 마음 너머에서 온다는 것을, 그럼으로써 망각의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다음장에서는 붓다의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가르침인 ‘사성제(고.집.멸.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