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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Aug 06. 2024

취미가 뭐예요?

목 끝까지 올라온 '천문학'이라는 대답을 삼키고

취미 [취:미] 

1.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2.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
3. 감흥을 느끼어 마음이 당기는 멋. 


 누군가 나에게 취미가 뭐냐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목 끝까지 올라오는 대답은 천문학이다. 그런데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 어디 까지를 전문적이라 부를지는 모르겠으나, 천문학은 나의 생계다. 천문학 박사만큼의 지식을 가진 건 아니지만 알고 있는 우주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재밌게 알려주며 나는 돈을 벌고 있다. 나름 우리 학생들 눈엔 '전문적으로 한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럼 천문학은 사전적 정의 상 나의 취미가 될 수 없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취미가 천문학이라는 말은 끝내 삼키고 만다.


 그런데 컴퓨터 배경 화면도 우주, 집에 장식해 놓은 액자 속에도 우주, 벽에 붙어있는 엽서 속 캐릭터도 우주인 복장을 하고 있다. 책장에 꽂힌 책도 검은색 표지의 우주 SF 소설이 많고, 가사에 별과 우주가 들어가는 음악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관함에 저장한다. 넷플릭스는 끊임없이 '추천 영화'에 까만 하늘을 들이밀고 있고, 더 이상 새로 볼 게 없으면 '추천 다시 보기'에 이미 본 우주 영화를 띄워놓는다. 그러면 내가 또 본다는 걸 알고 있는 게 틀림없다. 심지어 포스터가 우주 배경이라 들어간 영화에서 우주는 5분밖에 나오지 않는 황당한 일도 있다.
  관심 없던 뮤지컬도 천문학자의 이야기라면 한 번쯤 볼 마음이 생기고, 선반 위엔 존재하지 않는 별자리가 엉망으로 그려진 예쁜 컵도 장식되어 있다. 전시도 우주를 주제로 한다면, 미술 작품도 밤하늘이 그려져 있다면 걸음을 멈춘다. 무엇보다 즐겁게 노는 자리에서 일 이야기 꺼내지 말라며 인상을 팍 쓰는 친구와는 달리 어떤 비과학적 질문이든지 눈이 커지며 장황한 설명을 시작하는 내가 있다. '야! 이과생인데 그것도 모르냐!'로 시작하지만 결국 '그건 말이야…'라며 듣는 사람이 질릴 정도로 설명해 댄다. 이 정도면 충분히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천문학이 나의 취미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 여기까지만 하자. 직업이 나름 '천문학 강사'니까 취미에선 천문학을 빼야 한다. 천문학이 들어있는 건 통과하지 못하는 채에다 나의 여가시간을 탈탈탈 걸러내 본다. 우주 이야기가 아니면 심드렁한 뮤지컬이나 전시회 따위는 이 채를 통과할 수 없다. 우주 이야기가 들어 있다면 정말 좋지만, 없어도 내 마음을 주는 것. 아니, 내 마음이 가는 것. 채를 통과해 떨어지는 건 겨우 서너 개뿐이다.

그중 제법 커다란 덩어리를 가진 취미는 '영화'다.


 3. 감흥을 느끼어 마음이 당기는 멋. 나에게 왜 영화가 취미인가 묻는다면 이보다 더 잘 표현할 문장은 없다. 영화는 날 쉽게 아프게 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하고, 사랑을 하며, 웃음을 주고, 긴장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감정은 내가 겪은 일이 아니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 하늘에서 진짜 떨어질 수는 없으니 안전하게 그 감각만을 취하는 놀이기구같이 스크린 너머로 그 세계를 훔쳐본다. 좀비가 있는 세상을 2시간만 안전하게 다녀오는 것이다. 딱 두 시간만 꿀 수 있는 꿈. 그것이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다.


언젠가는 햇살이 내리쬐는 그리스의 한 섬으로 2시간,
언젠가는 마법사와 집요정들이 있는 영국으로 2시간,
언젠가는 1962년대 홍콩으로 2시간,
언젠가는 구름 속, 잊힌 문명이 떠다니는 성으로 2시간,

또 언젠가는 저 먼 우주 깊은 곳으로 2시간.


 물론 우주를 주제로 한 영화는 어떻게 던져도 나의 취향 과녁 한가운데 꽂힌다. 갈 수 없는 세계를 좀 더 생생하게 보여주는 우주 영화라니. 어떻게 싫어할 수 있을까. 


 1961년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처음으로 지구를 내려다본 이후, 우주로 간 사람은 약 650명 밖에 없다. 대부분은 국제 우주 정거장(ISS)이 있는 지상 400km 수준에 머물렀다. 가장 깊은 우주를 경험한 사람들은 달에 간 우주인들이다. 겨우 21명이 달 궤도에 도달했고 그중 12명만이 달 표면에 닿을 수 있었다. 우주를 경험한 사람은 이리도 작다.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본 사람은 아닌 사람에 비해 어떻게 다른 삶을 살아갈까.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을 느꼈을까. 어찌 되었든 난 민간 우주여행이 영화값처럼 싸지지 않는다면 경험할 수 없는 세상이다.


하와이 마우나 케아의 쏟아질듯한 하늘

 사진과 망원경을 통해서나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나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세상인 우주. 화면 너머로만 볼 수 있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보여주는 영화. 어쩌면 둘은 그 성질이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비록 대기권과 스크린을 넘을 순 없어도, 상상력이 풍부한 N, 공감 능력이 좋은 F니까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받는 세계를 탐험하며, 이번 주말도 소파에 떨어지지 않고 즐기기 위하여 시간을 쓴다. 


 제 취미는 영화 보는 건데요, 그 중에서 우주 영화가 나오면 꼭 챙겨보는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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