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없이, 반쪽이
마을에선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에 대한 토박이들의 은근한 거리 두기가 있었지만, 외지인들은 대부분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잘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유난스럽게도 나는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어색함을 아주 오래도록 느끼며 힘들어했다.
얼이 엄마가 일요일 오전만 잠시 와서 일 좀 도와달라고 했다.
말끝이 마무리가 되지 않는 걸 보니 미안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마을에서 일 잘한다는 사람들 제쳐두고 일 못하기로 소문난 나를 고른 걸 보니 사람이 없어 꽤나 다급했나 보다.
일 잘하고 손 빠른 대장부 얼이 엄마는 도시에서 이사온 믿음직한 이웃이다.
얼이는 몇 년 전까지 네팔 국제학교에 다니느라 얼이 엄마와 함께 네팔에 있었다.
마을에서 전무후무한 여자 이장이었던 얼이 엄마가 네팔에서 트래킹사업을 벌인 지는 꽤 됐다.
네팔에도 거처를 마련한 그녀는 강원도와 네팔을 바삐 오가며 지내고 있다.
남편과 얼이 아빠는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대학시절 그들은 각기 다른 등반팀에서 같은 시간대에 히말라야를 등반하고 있었다.
우리가 마을에 오고 나서야 서로를 알아보고 둘은 반가움에 흥분했었다.
일요일 오전 6시까지 와달라는 말에 늦을세라 서둘렀다.
나는 일은 못하면서 약속시간은 잘 지켰다.
얼이 엄마가 여러 차례 단체식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건 얼이네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았다.
그날 4인조는 마을 총무 아저씨, 얼이 엄마와 얼이 그리고 나였다.
서로 옛이야기 나누며 웃고 떠들다가도 사람들이 들이닥치면 아무 말없이 컨테이너가 돌아가듯 숨 가쁘게 움직였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일은 끝이 났다.
자타공인 나의 저질 체력은 오래전 바닥났고, 정신까지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얼이는 바쁜 와중에도 4인조를 위해서 차로 10분 거리 CU까지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었다.
얼이는 내심 4인조가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눈치였다.
서울과 강원도를 오가며 지내고 있는 나는 얼이에게 미안한 감정을 드러냈다.
"얼아, 아줌마는 반쪽이잖아."
순간 얼이 얼굴에 서운함이 스쳐갔다.
최근 도시에서 들어온 이주민들이 늘어나면서 마을에선 토박이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
오래도록 '산골 코스프레'에 힘들어했던 나는 요즘 서울과 강원도, 도시와 산촌의 변환에 익숙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