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보관이사

회갑앓이, 반쪽이

by 바비정원

자취는 딸들이 학교를 멀리 가게 됐을 때나 생각해 봤던 단어다.

그런데 육십 즈음에 나는 한 달간 자취생활을 하게 되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했다.


계기는 딸아이가 대학 4학년이 되면서부터 세워온 이사 계획이 갑작스럽게 성사되면 서다.

10년간 살아온 동네를 떠날 때가 됐다.

강원도집까지 남편의 운전거리를 생각해 보고, 갓 낳은 큰딸의 아들도 돌봐줘야 하고, 작은딸 취업이나 진학이 어떻게 될까도 상상해 보고, 마지막으로 내가 평소 살고 싶었던 동네를 짚어보니 어디로 가야할 지 답이 나왔다.

큰딸집 바로 옆에 이사 갈만한 집이 나왔다.

그런데 세입자가 있어 이사 나고 들어가는데 한 달간의 공백이 생겼다.

머리 아픈 보관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는 속도감 있게 진행되었다.

짐을 이삿짐센터에 맡기고, 간단한 짐가방 몇 개를 들고 오피스텔로 향했다.


남편의 키르기스스탄 트래킹 스케줄이 정해진건 이사 날짜가 잡히기 전 일이었다.

작은딸도 있고, 이사는 이삿짐센터에서 해주니 별문제 없겠다 싶어 갔다 오라 했다.

오피스텔에 입주한 다음날 작은딸이 폭탄선언을 했다.

한 달간 울산으로 인턴을 가게 됐다는 거였다.

망설였지만 가기로 마음먹었단다.

본인 계획이 있었겠지만 황당했다.

결국 나는 딸 때문에 정했던 오피스텔에서 혼자 지내게 되었다.


내가 얻은 오피스텔은 역 가까이에 모여있는 아기자기한 오피스텔 타운 안에 있었다.

이곳은 젊은이들만의 자치구 같아 보였다.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거리엔 젊은이들만이 활보하고, 빨래방은 밤늦은 시간일수록 문전성시를 이뤘다.

편의점, 샐러드가게, 샌드위치가게, 햄버거가게, 카페, 식당들이 즐비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 달간 혼자 자취하며 뭘 해볼까?

작은딸은 막판에 엄마 혼자 두고 가는 게 걱정스러웠는지 소화제며 모기약이며 이것저것을 챙겨 주었다.

오랫동안 글쓰기가 멈춰 있었다.

우선 글쓰기.

다음은 그냥 즐기기.

걸어도, 앉아 쉬어도, 누워도, 혼밥해도, 유튜브를 봐도, 넷플릭스에 빠져도, 초록 검색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도 그냥 즐기기.

내 인생에 흔치 않은 자유.

한 달간의 짜릿한 자취생활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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