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싸움 기싸움 몸싸움, 오빛나
빛나엄마는 서른일곱에 늦둥이 둘째 딸 빛나를 낳았다.
빛나를 낳기 2년 전, 늦깎이로 대학원에 입학할 때 지도교수가 한마디 했다.
"임신하면 어떡하니?"
큰 딸을 낳고 오랫동안 불임 상태여서 자신 있게 고개를 저었다.
대학원 입학 1년 후 임신테스트기에는 붉은 두 줄이 그어졌고,
빛나엄마는 거실 소파에 앉아 갓 태어난 빛나를 안은 채 석사모를 써야 했다.
빛나의 사춘기는 10년간 지속됐다.
초등학교 5학년, 가방 속에서 발견된 꼬깃꼬깃 쪽지에 적혀있던 담임선생님에 대한 욕설이 신호탄이었다.
빛나는 어디서 이런 날것의 욕을 배운 걸까.
언니가 다니던 대학 근처로 중학교를 배정받았다.
시골 학생이 서울 중학생이 되었으니 빛나의 머릿속은 문화충격으로 뒤죽박죽이었나 보다.
반항이 시작되었다.
엄마의 잔소리는 빛나를 자극했고,
'사랑의 매'는 모녀의 몸싸움으로 비화됐다.
초등학교 시절 교육청 영재교실에 다니며 선생님으로부터 '김변'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말 잘했던 빛나는 엄마에게 한마디도 지지 않고 따져 들었다.
그러다가도 빛나는 흥분한 엄마를 친절한 어조로 달래 가며
"엄마 내 말을 잘 들어봐~" 하며 자신의 상황을 조리 있게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게 엉망진창 중학교 3년이 지나갔다.
창의적이고 자유분방한 '자사고적 성향'을 보인 빛나는 집 근처 자사고에 입학했다.
빛나엄마의 착각이었다.
자사고는 그냥 외우기 공부를 잘해야 대접받는 곳이었다.
매우 자주 아침에 울려대는 빛나엄마의 핸드폰 벨소리는 그녀의 심장을 조여왔다.
"어머님, 빛나를 제시간에 등교시켜 주세요."
담임선생님의 한심해하는 어조가 느껴졌다.
얼굴이 화끈거려 쥐구멍이라도 찾을 판이었다.
빛나는 국어 시험 문제가 잘못 출제되었다며 교감선생님을 찾아가 따져 물었다.
'그런 건 공부 무지 잘하는 애들이나 하는 거잖아!'
빛나엄마는 아무도 없는 성당 구석에 앉아 성모님께 기도했다.
빛나가 고등학교만 제대로 졸업할 수 있게 해달라고.
고등학교 3년도 이렇게 흘러갔다.
그리고 대학입시 참사.
본인이 찾아 들어간 용인 재수기숙학원도 두 달 만에 내보내달라고 아우성치며 짐 싸들고 퇴소했다.
그해 말 빛나엄마는 빛나를 지방 간호대에 보냈다.
빛나엄마는 울고불고 창피해서 못 다닌다는 빛나를 데리고 전라도로 향했다.
축사 근처 기숙사에서 냄새가 난다며 구한 시내 자취방에서 한 학기를 울며 자책하며 보낸 빛나가 오랜만에 들른 엄마를 붙들고 통곡했다.
휴학하고 3 반수를 해보겠다고, 허락해 달라고.
빛나의 오른쪽 엄지손가락에는 굵은 검은색 밴드가 둘러져 있었다.
입시 공부하기엔 남은 한 학기가 짧게 느껴졌지만 빛나의 태도는 예전과 많이 달랐다.
그해 겨울, 빛나는 젊은이들의 거리에 있는 H대 전자공학과에 합격했다.
빛나는 기쁨에 벅차 비명을 지르며 엄마를 불렀고, 빛나엄마도 함께 소리쳤다.
"엄마, 아이스크림 가게 알바는 손가락이 너무 아파"
"엄만 서른한 가지 외우지도 못하겠다."
빛나의 사춘기는 종지부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