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대로

나에게 선물하기

by 사월

간장게장이 먹고 싶어서 무작정 서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 간장게장이 너무 먹고 싶었는데 먹지 못해서 그랬는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간장게장을 좋아했다. 서산 출신 외갓집 식구들 덕분에 매년 간장게장을 받아먹어 왔는데, 언제부턴가 그 번거로운 음식이 조금씩 뜸해지더니 성인이 된 후로는 먹어본 게 손에 꼽는다.


서산에 가면 해미읍성도 있고, 포구에 가 신선한 회도 맛볼 수 있다는 정보를 찾아보고 숙소만 정한 채 무작정 떠났다. 간장게장집 앞에서 맞은 서산의 첫 바람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찬 바람을 맞으니 어딜 구경하러 가보겠다는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게장을 정말 게눈 감추듯 해치우고 일단 숙소로 향했다.



남편이 피곤했는지 따뜻한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몸이 녹아 낮잠에 빠졌다. 곤히 자는 남편을 두고 무얼 할까 궁리하다가 호텔 투숙객은 사우나를 5000원에 이용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샴푸며 바디워시 등이 다 갖춰져 있다기에 칫솔을 챙기고 때타월 한 장을 사서 목욕탕에 들어갔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는 혼자 목욕탕에 가는 게 쓸쓸해서 다니지 않았다. 엄마가 가자고 할 땐 그렇게 귀찮더니... 오랜만에 따뜻한 탕에 몸을 담그고 씻고 나니 묵은 피로가 싹 풀리고 개운해 좋았다. 혼자도 갈만했다.


잠에서 깬 남편과 함께 시내에 있다는 돈가스 맛집을 찾아 나섰다. 바삭하고 두툼한 돈가스는 입에 들어가자마자 사르르 녹아 없어졌다. 소금에 한 번, 고추냉이에 한 번, 로즈마리 오일에 한 번, 돈가스 소스에 한 번. 각종 소스에 찍어먹는 재미가 남달랐다. 유명 맛집답게 대기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우리는 운 좋게 손님들이 빠지는 순간 들어와서 횡재한 기분도 들었다.


돈가스를 먹고 나오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배를 두둑이 채워 그런지 이번엔 추워도 좀 걸어볼 수 있겠단 용기가 들었다. 호수공원이 근처에 있다기에 슬슬 걸어 나갔는데, 눈이 소복이 쌓여 운치 있는 공원 주변으로 연말을 빛내며 반짝이는 전구들이 아름답게 수놓아져 있었다. 눈 맞으며 걷는 게 얼마만인지. 고새 쌓인 눈 위로 옷이나 머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뒹굴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공원을 한 바퀴, 두 바퀴 산책했다.


주전부리를 사서 숙소에 들어와 보니 연말이라고 tv에서 성시경 콘서트를 방영하고 있었다. 콘서트장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공연을 영상으로 볼 때면 항상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따뜻한 방 안에서 마치 콘서트장에 온 듯 노래를 따라 부르며 들썩였다. 우리만의 콘서트장도 꽤나 만족스러웠다. 연말의 서산 여행을 떠올리면 숙소에서 남편과 노래를 흥얼거리며 마음껏 흔들던 그 순간이 가장 반짝인다.





작년 12월부터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은 한의원을 닫고 온전히 주말을 쉬기로 했다. 웬만하면 집을 벗어나 어디로든 떠나보려 계획 중이다. 그 시작이 서산이라 참 좋았다. 엄마의 고향이라 그런지 정작 와본 적은 몇 번 안 되지만 괜히 푸근한 느낌이 들었던 걸까.


특히나 이번에는 예쁜 사진을 남겨야 한다는 이상한 집착도, 근사한 곳에 가서 대단히 특별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도 없이 정처없이 떠돌아다녔다. 그래서 온전히 편하고 자유로웠다. 어쩌면 이렇게 나다운 여행 스타일을 찾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한 달을 열심히 산 나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 온전한 주말을 마음껏 누리며 마음가는대로 해도 괜찮다는 믿음을 차곡차곡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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