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퇴고 글쓰기

by 사월

결혼반지 안쪽엔 결혼 날짜가 새겨져 있다. '22.07.03' 언제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흘렀나 놀라며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봤다. 2022년 1월에는 대전에 신혼집을 마련해 내려가 살기 시작했다. 결혼식 전까지는 완전히 쉬면서 결혼 준비에만 몰두했고, 마침 출산 예정인 선배가 진료를 부탁해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3개월 정도 근무했다. 그 후로도 주 1회 정기적으로 진료를 보며 생활했던 것이 당시 경제활동의 전부다. 그리고는 2023년 8월경 천안에 올라왔고, 9월 지금의 자리에 개원했다. 따져보니 쉬엄쉬엄 보낸 기간이 총 1년 4개월 남짓, 그러니까 불과 16개월 정도였다.



지금껏 살며 가장 한가하고 여유로운 시기였다. 놀고, 먹고, 자면 마냥 좋을 줄만 알았는데 막상 그 시절을 떠올리면 '막막함'으로 가득 찬다. 매일 한정 없이 주어지는 시간을 마주한 채 '가야 할 곳', '찾아주는 곳'이 없다는 생각에 막막해 견디기 힘들었으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쉬어도 괜찮을까, 이렇게 놀기만 해도 되는 걸까 불안해서 노는 것도, 쉬는 것도 온전히 즐기기 어려웠으니 말이다. 역시 노는 것도 놀아봐야 '잘' 놀 줄 안다.


그런데 만약 그때의 내가 고작 16개월 후면 이런 시간도 다 끝난다는 걸 알고 있었다면, 불안한 마음 없이 온전히 그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일단은 독서 모임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보고 싶다. 내 취향이 아닌 책들도 읽어보고 몰랐던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며. 미술관, 음악회, 영화관, 전시회 등등 전국 어디에서라도 보고픈 볼거리가 열리면 가리지 않고 다녀보고 싶다. 전국의 책방 투어도 해보고 싶고, 바닷가 앞에 하염없이 앉아있어 보고 싶다. 넘치는 시간을 한껏 누리면서.




이제야 과거 그 시절이 막막하고 불안했던 이유를 알겠다.


일단 내가 진정으로 무얼 원하는지 고요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일을 쉬고 놀면 자동으로 행복해질 줄만 알았다. 뭘 해야 할지 모를 때 가장 손쉽게 찾는 게 바로 스마트폰이다. 손바닥만 한 화면 속에 온 세상이 다 들어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하니까. 그렇게 나는 늘어난 시간만큼 남들은 뭘 하고 사나 각종 sns를 섭렵하며 스스로를 괴롭혔던 것 같다. 다들 이렇게 커리어를 열심히 쌓아가는데 나만 여기 멈춰 서서 뭐 하고 있는 거지?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구직할 것도 아니었으면서 말이다. 스스로 모순을 끌어안고 지냈다.


또 하나는 두려운 마음을 떨쳐낼 '용기'가 없었다. 단지 과거를 돌아보며 상상해 볼 뿐인데도 다시 그때와 비슷한 두려운 마음이 차오른다. '내가? 계획이 있다 한들 정말 할 수 있었을까?' 하고. 지금도 이런데 그땐 오죽했을까. 그러니까 나는 나를 믿지 못했다. 그때도, 지금도. 삶이 나에게 좋은 것, 꼭 필요한 것들을 가져다줄 것이란 걸 전혀 믿지 못했다.


원하고 바라는 일들이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식으로 이루어질 줄을 알고 그저 매일에 충실히 살 수 있다면, 오늘 하루도 이런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바라는 것들을 마음속에 잘 품고 그저 믿고 맡기며 나아가는 삶 말이다. 이런 생각이 지금에야 든다는 건 어쩌면 바로 지금이 그런 삶의 태도를 연습하기 딱 좋은 때라서 아닐까. 아쉽고 후회되는 마음은 접어두고 오늘을 사는 내게 말을 건넨다.


"네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들이 이미 준비되어 있어. 그걸 꼭 믿고 주어진 오늘 하루에 감사하고 기뻐하자.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거리를 찾고, 기쁨으로 사는 연습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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